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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트니스 큐레이터 Feb 14. 2019

개똥 영화평

뺑반/알리타/더벙커

영화, 뺑반


서로 다른 입장


영화 ‘뺑반’에서 공효진, 조정석, 류준열, 염정아 이들은 서로 다른 목적을 위해 살아가고 있다.

공효진은 광역수사대로서 살인범인 조정석을 잡기 위해 노력하고 류준열은 뺑소니 전문 형사로써 조정석을 쫓다가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조정석을 죽이려 하고,

염정아는 경찰청장의 비리와 그 윗선의 비리를 폭로하고자 조정석을 이용하여 승진한다.

또한 자신의 비밀을 감추기 위해 조정석을 옹호하려고 사력을 다한다.

그리고 마지막 인물인 조정석은 그냥 똘아이다. 스피드광에 정서가 매우 불안한 미친놈이다.

돈과 권력으로 정계의 힘을 등에 업고 각종 추잡한 짓을 다 하고 다닌다.

특히 그는 스피드광으로서 자신이 타고 다니는 차가 다른 사람이 타고 다니는 것을 용납하지 못하고 또한 자신보다 운전 실력이 좋은 자에게 극도로 관심을 두는 범상치 않는 캐릭터다.

그렇게 그들은 각자의 삶을 자신의 방식대로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스스로가 규정한 정의와 진리를 위해 최선을 다한다.


류준열의 과거가 참 구구하다.

그는 예전에 조정석과 같은 스피드광에 무법을 자행하는 망나니였다. 그렇다가 그를 쫓는 형사의 차와 충돌하여 끝끝내 체포당하고 그 형사는 사고의 충격으로 한쪽 다리를 잃게 된다.

그런데 그 형사는 류준열을 용서하고 함께 살 것을 제안한다. 류준열도 그 제안을 받아들이고 그들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로 피보다 진한 사이로 거듭나게 된다. 그리고 유준열은 경찰이 된다.

그런 아버지가 조정석이 모는 차에 치여 죽게 되었고 그 조정석은 법망을 피해 무죄 판결을 받게 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누가 봐도 류준열은 복수를 위해 이를 갈 것이고 시원하게 그를 응징하리라 생각할 것이다.

류준열도 그렇게 하기로 마음먹었고 거의 복수를 완성하는 순간까지 몰고 왔지만, 같은 동료인 공효진에 의해 조정석을 죽이지 못하게 된다.

조정석을 죽이게 되면 공효진뿐만 아니라 경찰 내부에 피해를 보는 사람이 엄청 많아질 것이기에 공효진은 반드시 체포해야 했다. 그리고 류준열에게도 그를 죽이지 않아야 할 이유를 공효진이 알려 준다.


“그를 죽이면 서민재가 아니라 김민재가 되는 거야”


만약 그가 아버지를 죽인 조정석을 복수하고자 그를 죽였다면, 예전의 범죄자인 김민재로 돌아가는 것이고,

패배자가 되는 것이다.

때로는 궁지에 몰렸을 때 해답은 다른 곳에서 올 수 있는 것이다.

타인의 말을 듣는 것을 마냥 나쁘다고 할 수 없다. 스스로 결정할 수 없는 문제에 봉착할 때 많은 사람의 의견을 듣고 그 안에서 해답을 찾는 것은 현명한 판단인 것이다.


영화는 조정석인 서민재를 잡고야 막을 내린다.

내심 나도 류준열이 조정석을 죽이기를 바랐는지 다소 아쉬움이 남는 것은 왜일까?



영화, 알리타


눈물을 흘릴 줄 아는 알리타


알리타는 위쪽 나라에서 고철로 치부되어 땅으로 버려진다.

그러나 극적으로 의사의 손에 의해 새 생명을 얻게 된다.

알리타가 발견된 모습은 몸통은 없고 머리와 목만 있었다.

의사는 생사를 확인할 수 있는 기계 장치를 통해 점검한 후 생명이 있음을 감지하고 집으로 옮긴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건, 생명의 중심은 심장이 아니라 두뇌이다.

심장은 충분히 만들 수 있지만, 뇌가 손상되면 사이보그로도 만들 수 없는 것이다.

즉 몸통은 재건이 되지만 머리인 두뇌는 복구 불능이다. 완전한 사망으로 분류한다.

다행히 알리타는 두뇌 손상은 없었다. 그래서 몸통은 완전 사이보그로 복구할 수 있게 되었고 예전 전사의 모습을 갖출 수 있게 된다.


영화를 보면서 성경 말씀이 생각났다. 골로새서 2장 19절 말씀이다.

‘온몸은 머리이신 그리스도로부터 각 마디와 힘줄을 통하여 영양을 공급받고, 서로 연결되어서 하나님께서 자라게 하시는 대로 자라나는 것입니다.’(새 번역 성경)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자신의 형상대로 만드시고 마지막으로 그 코에다 생기를 불어넣어 주셔서 생명을 얻게 되어 이렇게 숨을 쉬면서 살 수 있게 된 것이다.

하나님께서도 생명의 작업을 심장이 아닌 두뇌가 있는 얼굴에 하셨다.


영화는 300년이 지난 지구의 모습을 그린다.

완전한 인간의 몸을 가진 사람도 있고, 부분적으로 기계의 힘을 빌린 사람도 있다.

그리고 알리타처럼 얼굴을 제외한 몸 전체를 기계화한 사이보그도 있다.

앞으로 까마득히 먼 300년 후의 인간의 모습은 어떨까?

나노기술의 발전으로 아이언맨은 물론이고 알리타와 같은 바디를 가진 인간이 분명 존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런데 심장을 사람의 것이 아닌 나노 기술의 힘으로 대체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을 듯하다.

생리학적으로 심장에서 뇌의 연료를 공급해야 뇌가 살 수 있는데 말이다.


영화를 보면서 생각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척수를 다쳐 반신 및 전신 마비로 고생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에게는 알리타와 같은 기술이 하루속히 현실화하길 바랄 것이다.


알리타는 완벽한 사이보그 베틀 전사이지만 누구보다도 인간적인 면모를 가지고 있었다.

생명을 소중함을 알았고 특히 눈물을 흘릴 줄 알았다.

어쩌면 알리타가 더 강한 사이보그로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은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인간적인 마음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인간 존중, 생명 존중의 사상이 퇴색된 요즘 세상에

비록 육신은 기계의 모습이지만 마음만은 따뜻한 알리타가 자꾸만 눈에 어른거린다.




영화, 더 벙커


멀티태스킹의 진수


제한된 공간 안에서 엄청난 일이 벌어진다. 손에 땀을 쥐게 할 정도로 박진감이 넘친다.

배우 하정우는 현실감이 살아 있다.

예전 그가 찍은 영화인 더 테러 라이브란 영화에서도 혼자서 참 잘 논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영화도 혼자 보내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영화 속에서 하정우는 생고생한다.

혼자서 의사 역할과 전투를 지휘하면서 윗선과 교신을 한다.

한 가지 일도 해내기가 어려운 상황에서 하정우는 멀티태스킹의 진수를 보여 준다.

그중 가장 절정의 장면은 긴박한 상황에서 허벅지에 박힌 총탄을 제거하는 장면이다.


영화의 반전은 하정우의 의족이다. 한쪽 다리를 잃게 된 사연이 영화 속에서 소개된다.

동료의 낙하산이 펴지지 않자 함께 껴안고 자신의 낙하산을 펴고 지상으로 착륙을 시도한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다. 동료는 즉사하고 자신의 한쪽 다리가 심하게 부러져 버렸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비슷한 장면이 연출된다.

북한 의사인 이선균을 구하기 위해서 함께 낙하산을 펴고 땅에 떨어진다.

다행히도 둘 다 큰 상처를 입지 않고 살아남는다. 이번엔 똑같은 상황이 재현되지 않는다.

어쩔 수 없는 두 상황에서 결과는 완전 다른 경우가 만들어졌다.

하정우는 트라우마를 극복했을 것이다.


트라우마는 다른 사람이 해결해 줄 수 없다.

결자해지란 말처럼 스스로 극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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