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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트니스 큐레이터 Nov 28. 2018

어쩌다 하는 일은 오래간다

불현듯/ 힘 빼기/ 슬로 스타터/대기만성

불현듯 운동을 다시 시작한다. 나는 매사에 일을 시작하는 것이 이렇다. 그런데 일뿐만 아니라 사람 만나는 것도 그렇다. 갑자기 생각나면 바로 만나러 간다. 때론 허탕 치는 경우도 있다. 가만 보면 여행 가는 것도 그렇다.

무슨 일을 해야겠다고 굳게 다짐하고 그 일을 하게 되면 얼마 가지 않아서 싫증을 내고 흐지부지 끝이 좋지 않다. 의욕만 앞서게 된다. 그런데 하고 싶은 마음이 들면 잘해야겠다는 경직됨 없이 자연스럽게 일을 추진해 간다. 이번 연도부터 새벽에 일어나 기도하는 시간을 갖고 있다. 이 또한 불현듯 시작했다. 예전부터 마음은 있었지만, 실천을 하지 않고 있다가 그냥 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새벽에 일어났다. 그런데 지금까지 새벽에 일어나 기도하는 시간을 갖고 있다.

운동은 하루에 30분만 하려고 한다. 그러다가 조금씩 시간을 늘릴 것이 뻔하다. 뭐든지 부담 없이 시작하는 것이 중도에 포기하는 확률을 줄일 수 있다.


글을 쓰는 행위도 가만 보면 어쩌다 시작했다. 책만 주야장천 읽다가 왠지 머리에 남지 않고 휘발되는 느낌이 들어 글로 남겨봐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냥 주저리주저리 글을 썼다. 그런데 잘 쓰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글쓰기 관련 책을 여러 권 읽고 도움을 얻었다. 그렇게 해 온 글쓰기는 언 9년이 흘렀다. 지금은 출간 작가가 되었고, 두 군데의 출판사와 출판 계약을 맺고 편집을 진행 중이다. 이렇듯 어쩌다 시작한 글쓰기는 큰 시너지를 만들어 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인류문명을 살펴보아도 큰 의미 없이 시도한 결과가 엄청난 결과를 낳은 경우를 확인할 수 있다.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만유인력 법칙을 만들어 낸 것도 열 번째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도 알지 못했다가 어쩌다 열한 번째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영감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일 수 있다.

황금의 밀도를 알아낸 것에 흥분하여 “유레카”라는 말을 하면서 알몸을 한 채 거리로 달려 나갔던 아르키메데스도 열한 번째 목욕탕에 들어갔다가 어쩌다 알게 된 것일 거다.

그러나 ‘어쩌다’에는 숨은 의미가 있다. 어쩌다 알게 되거나 일을 하게 되는 경우에도 예전부터 마음먹고 준비한 시간이 녹아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세렌디피티(serendipity)라고 한다. 세렌디피티(serendipity)는 열심히 준비하여 온 자에게 찾아오는 행운이라는 뜻인데, 나는 이것을 ‘신의 선물’이라고 부르고 싶다.


무슨 일이든 힘 빼기를 해야 한다. 무거운 아령을 들었다가 놓을 때도 힘 빼기를 잘해야 한다. 서서히 힘 빼기가 근육을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한다.

나는 일 년 계획을 세울 때 느슨하게 잡는다. 두루뭉술하게 적는다. 한계선을 정하지 않고 그냥 해야 할 일만 적어 놓고 언제 시작할지도 적지 않는다. 그렇게 갑자기 시작했다가 탄력 받아서 반드시 끝을 본다.

야구에서 슬로 스타터가 있다. 투수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처음 1, 2회에는 불안하다가 3회부터 안정권에 돌입하여 8회 이상까지 무사히 던져 낸다.

어쩌다 하는 일도 처음엔 흐지부지하는 듯 하지만 탄력을 받게 되면 오래오래 이어가면서 시간이 지나면 주목할 만한 일을 만들어 낸다. 어쩌다 하는 일은 슬로 스타터와 닮았다.  


나는 슬로 스타터 형 인 듯하다. 그리고 큰 그릇은 늦게 만들어지는 대기만성 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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