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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트니스 큐레이터 Feb 21. 2020

정도전과 그의 시대(이 덕일)

정도전의 인생은 크게 네 시기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시기는 그가 벼슬에 나왔다가 유배형에 처해지던 시기입니다. 우왕 1년(1375)의 일로, 그의 나이 만 서른세 살 때의 일입니다. 두 번째 시기는 유배 시기입니다. 유배형에 처해진 지 만 8년 후인 우왕 9년(1383), 정도전은 이성계의 막료가 되어서 함주로 가게 됩니다. 이때 이성계와 정도전 두 사람이 혁명을 꿈꾸게 됩니다. 세 번째 시기는 이때부터 조선이 개창되던 1392년까지입니다. 정도전이 이성계를 만난 것은 만으로 마흔한 살 때였고, 조선을 개창한 것은 만 쉰 살 때입니다. 정도전이 이성계를 만난 지 햇수로 정확히 10년 만에 고려 474년의 역사가 목동들의 피리 소리 속으로 사라지고 새 나라의 역사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마지막 네 번째 시기는 조선 개국 후 정도전이 북벌을 꿈꾸다 이방원에게 살해되는 태조 7년(1398)입니다. 그의 나이 만 쉰여섯 살 때의 일이었죠. 그야말로 파란만장하다고 밖에는 할 수 없는 생애였습니다. p55


조선을 개창한 사건을 ‘역성혁명’이라고 한다. 즉 ‘전주 이 씨(李)’로 성이 바뀐 것이다.

하지만 그 저변에 정 씨 성을 가진 정도전이라는 참모가 있었다.



정도전이 이성계와 손잡고 고려를 엎으려고 했던 한 가지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그 당시 대세인 권문세가들이 소유하고 있던 토지였다. 그들은 일명 ‘대토’로 불리면서 고려의 모든 토지를 장악하여 농민들의 고혈을 빨아먹는 금수만도 못한 세력이었다.



얼마나 심한 상황이었냐면 권문세족들은 나라의 공신이라는 이유로 토지세에서 면제가 되었고 가난한 농민들만이 그 세금을 대신 갚는 실정이었다. 그래서 농민들은 빚을 져서 세금을 내다가 그 빚이 빚을 낳고 끝내는 목숨을 끊거나 노비가 되거나 아니면 도망가는 일이 허다했다.



이러한 참담한 실정을 정도전은 8년간의 유배생활을 통해서 알게 되었고 그 이후 실무조사를 통해 자료를 모은 뒤 큰 뜻을 세우게 되었다.

시간이 흘러 정도전은 나라가 망할 징조라는 사실을 깨닫고 함양으로 이성계를 만나서 그의 혁명에 대한 명분을 브리핑하며 이성계에게 천군만마의 힘을 실어주었다.



정도전은 실권을 장악한 뒤 공약대로 거국적인 토지제도를 감행한다. 그 토지제도를 ‘과전법’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모든 토지를 국가가 몰수해서 균등하게 나눠주는 방법이다. 그러므로 백성들의 숨통이 트이게 되었다. 물론 그 당시도 불한당처럼 놀고먹는 백성들도 있었겠지만 아무튼 다시금 몰수당한 토지를 되찾을 수 있었다는 것은 엄청나게 기쁜 일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책의 내용도 토지제도를 포커스로 잡고 즐비하게 과거 고려시대부터 시작하여 토지에 대한 내용이 적혀 있다.


아무튼 예나 지금이나 자신의 땅에 대한 소유권은 뜨거운 이슈다.


21세기가 지나도 빈익빈 부익부 현상은 가시질 않는다. 오히려 양극화 현상은 더욱더 심각해지고 있다. 정말 이러다 제2의 정도전이 불현듯 나타나 지금의 토지 제도를 갈아 업을지도 모를 실정이다.


아무튼 땀 흘린 만큼 그 대가를 받는 정직한 사회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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