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 모를 코로나 19의 창궐로 인해 손과 발이 묶여 집에 머물러야만 했다. 거실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다가 우연히 책장으로 눈길이 갔다. 그리고 내게 선택받은 책이 ‘누구를 위한 검사인가’ 이다.
전공도 아닌 검사에 관한 책이 왜 내 책장에 꽂혀 있는지 그 사연이 궁금할 것으로 생각되어 잠시 설명해 보자면 책의 저자는 내가 8년간 개인 운동을 지도한 클라이언트다. 어느 날 책을 내었다고 선물로 주셨다. 책을 좋아하는 나는 기쁘기도 했지만, 장장 600페이지 되는 책의 깊이에 숨이 턱 막혀왔다.
책 제목에서 그가 검사이거나 검사였을 거라는 생각을 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저자는 28년간의 검사 생활을 마치고 현재는 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1974년 박정희 정권 시절 사법시험에 합격한 후 사법연수원 2년, 군법무관 3년, 검사 28년, 그리고 현재 변호사 13년 차다.
저자는 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검찰의 꽃이라 불리는 서울지검장으로 발탁되었다. 나는 검찰의 지휘체계가 어떻게 되는지 잘 몰랐지만, 드라마 ‘비밀의 숲 1’에서 이창준(유재명) 검사가 부장 검사에서 서울지검장으로 그리고 청와대 수석 비서실장으로 발탁되면서, 서울지검장이 요직임을 알 수 있었다.
책의 두께만큼 다양한 수사 에피소드를 소개하고 있으며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 이르는 검사 생활이 한눈에 환희 알아 볼 수 있도록 정리돼 있다.
이 책은 조선일보 인터넷 신문에서 2013년 11월 6일부터 2014년 7월 21일까지 매주 월요일 연재되었던 ‘서영제의 노무현 시절 수사 비화’를 토대로 편찬 한 것이다.
수사에 대한 비화이기 때문에 이 책을 읽는 부류들은 정해져 있을 것이라 짐작해 본다. 가장 많이 읽은 계층은 언론사들일 것이다. 뭐든지 많이 알고 있어야 경찰청 출입 가자는 기사를 작성할 때 펜을 꾹꾹 눌러 쓸 수 있을 것이다. 그다음으로 많이 읽는 독자는 현장에 몸담은 검찰청 관계자들일 것이다. 솔직히 책에 대한 반응은 검사 내부에서는 호불호가 갈릴 듯하다. 검찰의 비화를 통해 대중에게 검사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알게 해 준 부분에 대해서는 좋은 평판을 받을 수 있겠지만, 반대로 검사의 밑 낯을 공개했다는 불편함도 느꼈을 것이다. 이처럼 이 책은 저자의 개인적인 얘기와 그 당시 검찰에 대한 수사 기록물로써 철저히 객관성을 유지하고자 노력했다.
이 책은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다. 중국 음식점의 샥스핀 사건, 가짜 산삼 수사, 남편이 바람을 피우고는 자신을 기도원으로 감금시킨 사건, 가족 꽃뱀 사건을 포함한 간통 사건 등 다양하게 등장한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내용은 큰 이슈였던 조양은과 김태촌 조직폭력배 두목을 검거한 부분과 함정 수사를 통해 거대 마약사범을 검거한 사실이다. 특히 조직원의 일원을 검거한 후 설득(성공 시 감면을 약속)하여 역정보 원으로 활용한 함정 수사는 영화에서 본 내용과 오버랩이 되어 더욱 생동감 있게 다가왔다.
물론 기소유예 제도의 폐지, 기소 배심제 도입, 특별검사제도, 특임검사제도 등과 같은 전문 용어가 나오긴 하지만 뉴스에서 자주 등장하는 말이기에 대략 짐작은 할 수 있다. 특히 최근 이재용 부회장 경영권 불법 승계를 놓고 배심원 제도(기소 배심제)가 시행된 것이 좋은 예일 것이다.
또한 특별검사제도나 특임검사제도와 같은 용어는 의미는 조금 다르지만, 드라마 ‘비밀의 숲 1’에서도 다룬 바가 있다. 즉 이창준(유재명) 서울지검장은 검찰 내부의 비리를 조사할 목적으로 검찰총장의 승인을 받고 황시목(조승우) 검사를 특별수사본부 수사팀장으로 임명하게 된다.
책에서 저자의 성격을 자타는 돈키호테, 결벽증, 독불장군, 수도승, 똥고집, 철딱서니, 외로운 늑대 등으로 묘사했다. 내가 8년간 운동을 지도하면서 느낀 바는 수도승과 같다. 묵묵히 8년을 일주일에 세 번 퍼스널 트레이닝을 받고 계신다. 숨이 턱까지 오르는 힘든 운동도 아랑곳하지 않고 꾸준히 나오신다. 근육 운동을 통해 몸의 좋은 신호가 그를 이끈 듯하다. 이처럼 책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일을 대하는 마음가짐도 동일한 듯하다. 자기가 옳다고 믿는 일은 절대 타협하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끝까지 밀고 나가는 스타일이라고나 할까.
저자는 책을 통해서 깊은 울림의 말을 건넨다. 소신에 대한 말이다.
“사람을 수사하는 것이 아니라 사건을 수사하는 것이다”, “살아있는 권력에 칼을 들 수 있어야 한다.”
그는 이러한 소신을 바탕으로 검사로서의 반지를 끼고 28년을 지내왔다. 그리고 다시 자연인으로 돌아온 그는 또다시 인생의 반지를 찾고자 여행을 떠나고 있다.
저자는 종교인은 아니다. 그러나 성경(good news Bible)을 여덟 번이나 독파했을 정도로 성경에 탐독했다. 그중 신약 인물인 사도 바울을 존경한다. 특히 신을 향한 변하지 않은 믿음과 그로 기인한 흔들리지 않는 사명감이 좋다고 한다.
자기 소신이 확고한 사람은 종교를 떠나서 통하는 면이 있는 것 같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사도행전 20장 24절.’
소신을 잃은 자는 밥을 굶은 자 보다 더 불쌍하다.
코로나 19가 평생을 일 거 온 일터를 갈아엎어 밥벌이가 막막한 요즘이지만, 끝까지 버텨야만 할 확고한 소신이 있기에 희망을 품어 본다. 그리고 소신에 대한 책으로 일독을 권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