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9시 30분에 수업을 마치고 다음 수업은 오후 3시에 있어서 센터 근처 카페에서 짐을 풀었다. 늘 하던 대로 신문을 읽고 중요한 부분 스크랩했다. 신문을 읽는 것은 하루 의식을 치르는 것과 같다. 물론 한 달 에 만 오천 원 내고 정기 구독하는 종이 신문이다.
신문을 읽게 된 동기는 글을 쓰기 위함이다. 그런데 신문을 읽게 되니 글쓰기가 귀찮아진다. 너무 많은 글을 읽게 되니 머리에 과부하가 걸리는 모양이다. 신문도 적당히 집중해야겠다. 내가 읽고 있는 신문은 조선일보다. 조선일보의 기사는 대부분 정부 정책을 견제하는 내용으로 구성된다. 특히 오피니언스와 사설은 대놓고 정부 정책에 반기를 든다. 요즘은 시기가 시기인 만큼 더 심한 듯하다.
신문을 읽다 보면 나 또한 조선일보 편에서 사고하게 된다. 그런데 조선일보와 같은 글이 있어야 균형 있는 언론 문화가 형성됨을 알 수 있다.
이번 연도부터 신문을 거의 매일 읽고 있다. 처음엔 첫 면부터 끝 면까지 긴 호흡으로 읽었다. 지금은 조금 속도가 붙었다. 뭐든지 적응이 중요하다. 적응을 위해선 환경에 맞는 특징을 잘 파악해야 한다. 신문을 읽을 때는 정치, 경제면에 자주 사용하는 단어를 먼저 알아 두어야 한다.
신문을 읽는 절차가 시간이 흐를수록 간편해진다. 처음 읽을 땐 정독해서 읽는다. 그다음엔 중요한 부만 발췌해서 읽는다. 그다음엔 제목을 읽고, 눈에 들어오는 주요 단어만 엄선하여 읽는다. 제목과 단어만 읽어도 내용을 알 수 있는 이유는 신문을 매일 읽다 보니 비슷한 기사가 계속 나오기 때문이다. 요즘은 신문 읽는 속도가 2시간 내외로 단축했다. 그러나 다른 면은 몰라도 오피니언과 논설, 사설 부분은 토시 하나 안 빼고 천천히 읽으려고 한다. 이 부분은 글쓰기에 도움이 많이 될 듯해서다. 각기 다른 분야의 전문가가 매일 순번을 정해서 올리기 때문에 컬리티도 훌륭하다. 내 글쓰기 목표도 신문에 연재하는 것으로 해야겠다.
신문은 문학과는 다른 매력이 있다. 신문은 삶의 기록을 요약하여 나타내고 있다. 실용적이라고 할 수 있다. 문학이 주는 삶의 안식과 통찰을 주지는 않지만 타산지석과 반면교사 그리고 처세까지 배울 수 있는 응용학문과 같다. 하지만 지나친 비평은 희석해서 받아들이면 좋을 듯싶다. 최근에는 문학적인 글도 싣고 있다. 박학다식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나는 무엇보다도 30면 안팎의 신문을 다 읽고 나면 성취감을 느낄 수 있어서 좋다. 글을 촘촘히 읽으면 대략 2시간 반 정도 걸린다. 이 정도 글 밥과 시간 투자면 250페이지 분량의 자기계발서 한 권 읽는 분량과 맞먹는다. 한 권의 책 읽기를 신문 읽기와 맞바꾼 셈이다. 신문은 한 권의 책을 읽는 기회비용으로 충분하다.
신문을 읽다 보면 무릎이 꺾일 만큼의 뛰어난 문장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면 준비해 둔 메모장에 그대로 옮겨 적는다. 나중에 글쓰기에 써먹기 위함과 사색을 위한 재료로 최고다. 어떤 것은 글 통째로 나를 사로잡게 되는데 그럴 땐 필사를 통해 행간, 행간에 쉬어 가며 그 의미를 곱씹곤 한다.
앞으로 종이 신문의 존폐는 요연(窈然) 하기만 하다. 신문 구독을 하면 다양한 패키지 상품까지 추가해 준다. 그래도 신문을 잘 읽지 않는다. 디지털 시대에 편승하여 바쁜 일상에서 빠르게 정보를 습득하려면 기동력이 우선시 돼야 한다. 그래서 종이 신문은 외면당하는 듯하다.
언제 사라질지 모를 신문이기에 앞으로도 계속 정기 구독하려 한다. 책에서 스며 나오는 종이 냄새와 신문을 인쇄할 때 나오는 야릇한 냄새는 읽기 구미? 를 당기는 요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