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룡이 나르샤

by 피트니스 큐레이터

정도전을 재조명하다.


조선을 개창한 사건을 ‘역성혁명’이라고 한다. 즉 ‘전주 이씨(李)’로 성이 바뀐 것이다.

하지만 그 저변에 정씨 성을 가진 정도전이라는 참모가 있었다.

큰일을 위해선 뜻을 같이 하는 사람이 반드시 필요하다. 혼자의 힘으로 그 어떤 것도 이룰 수 없다. 역사의 흐름을 보더라도 이 말은 만고의 진리다. 즉 태조 이성계의 싱크탱크로 정도전이 있었듯이 태종 이방원의 쿠데타를 도운 사람은 변중량과 이숙번이었다. 그리고 세종대왕의 참모로는 황희정승이 있었고 세조 수양대군의 반란에는 신숙주라는 총명한 지략가가 있었다.


정도전이 이성계와 손잡고 고려를 엎으려고 했던 한 가지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그 당시 대세인 권문세가들이 소유하고 있던 토지였다. 그들은 일명 ‘대토’로 불리면서 고려의 모든 토지를 장악하여 농민들의 고혈을 빨아먹는 금수만도 못한 세력이었다.

얼마나 심한 상황이었냐면 권문세족들은 나라의 공신이라는 이유로 토지세에서 면제가 되었고 가난한 농민들만이 그 세금을 대신 갚는 실정이었다. 그래서 농민들은 빚을 져서 세금을 내다가 그 빚이 빚을 낳고 끝내는 목숨을 끊거나 노비가 되거나 아니면 도망가는 일이 허다했다.


이러한 참담한 실정을 정도전은 8년간의 유배생활을 통해서 알게 되었고 그 이후 실무조사를 통해 자료를 모은 뒤 큰 뜻을 세우게 되는데... 시간이 흘러 정도전은 나라가 망할 징조라는 사실을 깨닫고 함양으로 이성계를 만나서 그의 혁명에 대한 명분을 브리핑하며 이성계에게 천군만마의 힘을 실어주었다.


정도전은 실권을 장악한 뒤 공약대로 거국적인 토지제도를 감행한다. 그 토지제도를 ‘과전법’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모든 토지를 국가가 몰수해서 균등하게 나눠주는 방법이다. 그러므로 백성들의 숨통이 트이게 되었다. 물론 그 당시도 불한당처럼 놀고먹는 백성들도 있었겠지만 아무튼 다시금 몰수당한 토지를 되찾을 수 있었다는 것은 엄청나게 기쁜 일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자신의 땅에 대한 소유권은 뜨거운 이슈다.

21세기가 지나도 ‘빈익빈부익부’ 현상은 가시질 않는다. 오히려 양극화 현상은 더욱더 심각해지고 있다. 정말 이러다 제 2의 정도전이 불현듯 나타나 지금의 토지 제도를 갈아 업을지도 모를 실정이다.(그러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1인)


인생이 ‘새옹지마’이듯이 정도전의 삶도 새옹지마의 연속이었다.

정도전은 고려시대 왕인 우왕의 친원정책에 반기를 들고 자신의 소리를 내다가 괴심 죄로 유배되어 10년 동안의 정치낭인의 처지로 농민들과 함께 직접 농사를 지으며 살게 되었고 그 이후 이성계와 도모하여 역성혁명의 선봉장으로써 세기의 뛰어난 리더십을 발휘하게 된다. 그러나 이방원의 세력에 의해 처참하게 목이 잘리는 참수를 당하며 파란만장한 삶을 마감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역사는 현재를 지배하는 자가 과거를 지배하듯이 정도전이 죽고 태종 이방원이 살았기 때문에 정도전의 과거 행적은 파렴치한으로 몰려 흥선 대원군의 「정도전 복권」이전까지 무참히 역적 론으로 점철되고 말았다.




그래서 정도전을 위한 변명을 하고자한다.

정도전은 국가의 발전을 위해 청백리의 삶을 살았으며 한 치도 흐트러짐 없는 정도의 길을 걸었다. 유배생활에 몸소 느꼈던 백성들의 애환을 토대로 새로운 왕조는 무엇보다도 백성을 사랑하고 아끼는 정책이 되어야 한다는 뜻을 품게 되었다. 그리하여 집권당시에는 경세애민의 전제개혁을 단행했으며 조선의 첫 헌법인 조선경국전을 완성하여 객관적이며 합법적인 정치를 위해 노력하였다.


4.13 총선을 앞두고 있다. 여, 야를 통틀어 정도전과 같은 위인이 한 명이라도 나오기를 바라는 마음은 허황된 꿈인가.


#참고문헌 :

정도전을 위한 변명(조유식) / 정도전과 그시대(덕일)

매거진의 이전글여우같은 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