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자동 온도 조절 장치
이사와 짐 정리, 그리고 수업과 강의로 정신없이 바쁜 한 주가 지났다.
책 읽기와 글쓰기도 하지 못한 채...
예전(약 5년 전 즈음)엔 조급하고 갈급함 없이 물 흐르는 대로 잘 살았다. 그런데 책과 글쓰기가 내 가슴속에 찾아 온 이후로는 매일의 삶이 부담감으로 채워졌다. 그 부담감을 조정래 소설가는 ‘황홀한 글 감옥’이라고 표현했다.
‘작가’가 되고자 마음먹었다. 거창한 작가만 작가의 호칭을 쓰는 것이 아니라 소박한 글을 매일 쓰는 사람도 작가인 것이다. 글쓰기의 거장 ‘나탈리 골드버그’는 작가를 ‘아침에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일축했다.
작가는 글을 쓰기 위해서 늘 글감에 대해서 고민한다. ‘무엇을 쓸 것인가?’
이러한 고뇌를 해결하기 위해 책을 읽고, 경험을 하고, 사물을 들여다보는 일을 행한다.
그러한 자극 뒤에 얻어지는 사색들을 원료로 하여 글감을 선정하게 된다.
그런데 이러한 과정이 하루를 건너뛰고 이틀을 보내다 보면 두려워진다. 혹시나 ‘현재 가지고 있는 사색에 대한 더듬이가 무뎌지면 어쩌나’하고 말이다.
이것이 글쓰는 사람들이 갖고 있는 딜레마다.
비단 이 문제는 글쓰는 것에만 국한 되는 건 아닌 것 같다. 운동에 심취해 있을 때에도 같은 마음이 생긴다.
조금씩 변화되는 몸의 현상을 보면서 ‘오늘 운동 쉬면 근육이 빠지는 건 아닌가’하는 심적 불안이 엄습하게 된다.
‘운동 중독증’에 걸리면 이보다 더 심각하다. 무릎이 아파도 참고 운동을 한다. 그러다가 연골이 찢어진다. 그래도 운동을 한다. 도저히 통증 때문에 운동을 못하게 되면 수술을 하는데, 재활을 마치고 또 다시 예전에 했던 운동을 하게 된다. 내게 찾아온 에어로빅 회원이 그런 모습을 보였다.
‘활자 중독’과 ‘운동 중독’은 특정 호르몬의 과다 분비로 인함인 것인데 ‘글쓰기 중독’ 또한 호르몬의 영향인 것인가?
아무튼 모든 ‘중독증’은 과유불급(過猶不及)이다. 넘침은 모자람만 못한 것이다.
정신이 큰 피해자가 된다.
‘멈출 때 비로소 보이는 것’이란 말은 그래서 참 달다.
‘다이어트 휴식’이란 말이 있다.
한 달 정도 계획된 식단을 잘 수행했다면 하루 정도는 망가져도 괜찮다는 것이다.
이 말은 생리학적으로 일리가 있다.
‘세트 포인트(set point)'라는 이론이 있다. 여기엔 ‘렙틴’이라는 일꾼이 필요하다.
핵심은 항상성(恒常性, homeostasis) 원리가 우리 몸을 원래의 체중으로 유지케 해 주는데, 렙틴이라는 호르몬이 그 역할을 담당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에어컨의 자동 온도 조절 시스템과 같다.
‘신인류 다이어트’라는 책을 쓴 박용우 가정학과 교수는 ‘세트포인트’를 이렇게 표현 했다.
『어떤 기준점이 정해져서 늘 그 기준점을 유지하려는 경향을 말한다. 에어컨 온도를 28도에 맞춰 놓으면 실내 온도를 늘 28도로 유지한다. 실내온도가 올라가면 에어컨이 작동하면서 온도를 낮추고, 온도가 지나치게 떨어지면 작동을 멈추면서 온도가 올라가도록 한다. 이 28도가 바로 ‘세트포인트’다. 』
이와 같은 세트포인트 시스템에 의해서 한 달 중 하루 정도 과식을 해도 성능 좋은 청소부인 렙틴이라는 호르몬이 그 많은 양의 칼로리를 잘 정리해 줌으로써 몸속의 지방량은 큰 폭의 변화 없이 일정한 체중을 유지할 있게 되는 것이다.
다이어트 휴식과 같이 글쓰기 휴식도 같은 원리로 작동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래서 며칠을 중단해도 글쓰기 항상성 원리에 입각하여 생각의 촉수가 그대로 유지되었으면 한다.
그래야 정신병인 글쓰기 중독에 걸리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휴식 없이 일만 하는 사람을 브레이크가 고장 난 자동차와 같다는 표현은 나에겐 구세주와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