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수와 삼수

시간의 시련

by 피트니스 큐레이터


응답하라(1993 ~ 1994)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는 재수하기로 마음먹고 영등포에 위치한 ‘대학 학원’ 종합 반을 등록했다.


첫 마음은 정말 1년간 열심히 공부해서 원하는 대학에 입학할 것을 굳게 다짐했었다. 그러나 작심 3일이라는 말은 누가 만들었는지 너무도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것 같다. 같은 반으로 배정받은 동병상련의 재수생들은 시련의 아픔을 갖고 있어서 하나같이 건드리기만 하면 툭 하고 터져 나올듯한 봇물과 같았다.

나는 정규 수업을 다 마치고 학원에 남아서 자율학습까지 끝나고 집에 돌아왔다. 수업은 나름대로 열심히 들었는데 자율학습시간이 비행의 시초가 되었다. 처음은 초심자의 자세로 열심히 공부했다. 그런데 서로의 친목을 위한 자리로 담임선생님과 함께 회식자리를 마련하게 되었다. 그날 참석한 학생들은 3차까지 가면서 끈끈한 동지애를 나눴다. 그곳엔 재수생이 대부분 이었지만 삼수하는 형들도 몇몇 있었다. 그날 이후로 우리는 빠르게 친해졌다. 그래서 수업이 끝나고 야간 자율학습시간에 머리도 식힐 겸 해서 학원 근처에 있는 당구장으로 향했다. 한두 시간만 있다가 가려고 했던 당구는 자율학습이 다 끝나갈 시간까지 전투적으로 게임에 몰입했다. 처음엔 접대형 당구로써 이기려는 욕심 없이 사교를 위한 시간이었다. 그러나 남자들이 버려야 할 것이 있다면 괜한 승부욕인데 그 자존심이 발동하여 돌아오지 못하는 강을 건너고야 말았다. 그래서 재수하고 남은 것은 수능 점수가 아니라 당구 점수였다. 모의 수능 고사의 점수와 당구 점수는 반비례를 이룰 정도였다.

당구 게임은 처음엔 승부욕으로 게임을 이기려는 것이 목적이었는데 차츰 시간이 지나고 판이 커졌다. 돈이 걸린 것이다. 모든 스포츠 게임에는 돈이 걸려야 스릴이 생기고 중독된다. 특히나 골프는 그 폐해가 심하다. 골프 같은 약간의 머리를 쓰는 경기는 중독증 심해서 팔목이 다치고 엘보에 염증이 생기고 어깨 통증이 와도 그 짜릿함을 멈추지 못한다고 한다. 그 당시 학생의 신분으로써 자금을 조달하는 루트가 없었기 때문에 나는 당구 비를 마련하기 위해서 부모님에게 갖은 거짓말을 하면서 돈을 얻어내기 시작했다. 제일 많이 하는 사유는 책값이었다. 그리고 영등포에는 미용 학원이 있었는데 공짜로 머리를 깎아주는 곳을 우연히 알게 되어 보름에 한 번씩 엄마에게 이발 비를 타서 그 돈으로 당구를 쳤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 당시 미용 학원은 우리를 마루타 삼아 현장 실습을 하러 나온 미용 수습생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머리의 좌우가 조금씩 틀렸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감지덕지 아닌가?

그렇게 쳤던 당구는 수능이 끝날 때 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그해 대학은 또 떨어졌다.


함께 어울렸던 무리들도 원하는 대학과는 많이 낮게 지원하여 간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 시험에 떨어졌다. 그래도 그 당시 고등학교 다니면서 억눌렸던 해방감을 마음껏 발산하면서 성인으로써의 신고식을 치렀던 한 해를 보냈기에 후회감과 함께 뿌듯함이 동시에 몰려왔다.


이러한 경험은 나중에 늦게 대학에 입학했을 때 더욱 학업에 정진할 수 있도록 이끌어준 힘이 되었다. 왜냐하면 대학을 입학하면 겪게 될 일들을 미리 선행 학습으로 마쳤기 때문에 크게 흥미와 재미를 못 느꼈기 때문이다.


이렇게 나의 대학 가기 프로젝트는 허망하게 끝이 나고 다시금 삼수로 이어졌다.

삼수는 고독과의 싸움이었다. 재수하면서 보냈던 허송세월을 후회하고 ‘공부는 혼자서 하는 것이다’라는 교훈을 얻고 다시금 종합 반에 등록했다. 그리고 일체 친구들을 만들지 않겠노라 다짐했다. 그리고 그 반에는 삼수를 하는 사람은 몇 명 되지 않았고 거의 재수생들이 대부분 이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아웃사이더가 되긴 했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수업에 임했다. 그런데 정말 수학은 하나도 모르겠다. 영어는 단어 암기만 죽도록 하고 패턴만 알면 그래도 수월했다. 그러나 수학은 집합부터 꼬이기 시작했다. 모르면 물어봐야 했는데 나는 자존심에 금이 갈까 봐 아는 척하고 그냥 넘겨버렸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수학은 일단 접기로 했다. 그리고 남은 과목에 전념을 다했다. 그래도 모든 과목이 수월한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혼자서 모든 것을 해결하면서 하루에 소비하는 담배의 양은 계속 늘어갔다. 그 당시 피웠던 담배는 근심을 뿜어버리는 유일한 배출구가 되었다.


그러나 삼수를 했지만 나는 또 수능 시험에 떨어졌다.


남들이 알면 얼마나 좋은 대학을 가려고 삼수까지 했냐고 묻지만 실상은 내 점수 가지고는 전문대조차도 갈 수 없었다. 지금은 우후죽순처럼 대학이 많이 생겨서 웬만하면 갈 수 있었겠지만 그때는 대학이 많이 없었다.


돌이켜보면 삼수를 하면서 대학에 떨어진 가장 큰 원인은 외로움이었다. 그리고 막연한 대학에 대한 동경심이 그다음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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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 스타일’이라는 책에서도 가장 힘든 것이 'home‘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두 단어라고 했다. 하나는 ’homework'고 또 하나는 ‘homesick'이다. 이 두 단어를 잘 견디면 당당히 빛나는 졸업장을 가슴에 안을 것이라고......,


정말 혼자의 힘으로 무엇을 이루는 가운데 가장 힘든 것이 외로움인 것 같다. 그 고독을 얼마큼 다스리느냐가 모든 성공의 핵심 요소임을 절실히 깨달았다.


또한 그 당시 나는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알지 못하는 방황하는 칼날이었다.


맹목적인 대학에 대한 동경심만으로 수능을 준비했지 대학에서 공부하고 싶은 과목은 전혀 없었다. 하긴 그 당시 대학에 들어간 사람들도 점수에 맞춰서 학과와 대학을 선택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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