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동반자, 영원한 친구
2016년 3월 5일 토요일, 새벽 3시에 일어났다.
글을 쓰고 싶어서 출근시간을 1시간 반 남기고 책상에 앉았다. 생각보다 머리가 상쾌했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라는 책을 읽고 정신이 번쩍 든 것인가.
12시간의 육체노동가운데 정해진 시간에 앉아서 글을 썼다는 그의 삶 속에서 진정한 열정을 배우게 되었다. 아니 그건 열정이 아니라 생활의 일부분 이었다. 써야만 사는 사람이다.
쓰지 못하면 금세 죽을 것 같다. 내게도 그 정도는 아니지만 삶의 한 부분을 차지한지 4년이 넘었다. 읽다가 쓰고, 생각하다가 또 쓰고...
그런데 나는 왜 이리도 글쓰기에 집착을 하는 것일까?
어쩌면 이런 내 모습은 자연스러운 것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해 봤다. 그 이유는 1995년도를 거슬러 기억을 되새겨 보면 알 수 있다. 빛바랜 회사용 수첩에 빼곡이 적어 놓은 글들을 만나는 순간, 예전부터 나는 무엇인가 쓰는 것에 목말라 하고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그런데 취업과 결혼이라는 인생의 파고를 넘기 위해 잠시 잊고 있었던 것뿐이다.
그 수첩 안에는 일기부터 교회 청년들의 특징들을 세밀하게 묘사를 했다. 그리고 9월 24일 이후엔 그 수첩 란은 백지로 남게 되었다. 군대에 들어가게 되었기 때문이다.
군대에서도 나는 줄곧 편지를 썼다. 교회 청년들에게, 부모님께, 그리고 마음속으로 좋아만 했던 그녀에게... 다시 읽었더니 손발이 오그라드는 표현에 얼굴이 붉어져 온다. 글도 오래되면 낡고 빛이 바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대학시절엔 교양국어 과목을 듣다가 소설에 흠뻑 빠져서 한학기가 끝날 때 까지 소설책을 끼고 살았으며 매주 내주는 독후감을 쓰게 되었다. 긴 문장들은 아니었지만 몰입하여 행간 행간을 채워 나갔다. 그 당시 기억나는 소설은 신경숙의 ‘풍금이 있던 자리’와 은희경의 ‘새의 선물’이다.
그 이후로 틈틈이 소설을 읽으면서 독후활동을 즐겼다. 그러다가 신문 읽기로 관심이 흘러서 도서실에 비치된 세 종류(조선, 동아, 경향)의 신문을 꼼꼼이 읽어 나갔다. 그 당시 알게 된 사자성어가 아직도 기억이 난다. 특히 정치면에서는 ‘읍참마속(泣斬馬謖)’이라는 단어가 자주 나왔었다. 신문 중에 사설과 오피니언스 부분을 더 집중해서 읽었는데 그 이유는 글 쓰는 사람들을 동경했기 때문이고 나도 언젠간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 않았나 싶다.
이렇게 지난날을 돌이켜보니 현재 내 모습은 갑작스런 마음에서가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다.
글쓰기는 항상 나와 함께 했었다. 인생의 동반자처럼...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한 친구로 가까이 지낼 듯하다.
정말 글을 쓰고 있으면 현재의 나에게 오롯이 집중하는 시간으로 채워진다. 밥 먹을 때나 똥쌀 때와 같은 그런 집중이 아니라 모든 사물들은 정지해 있고 오로지 우주 속에 나 혼자 살아 움직이는 그 희열감이라고 표현해야 할까. 아무튼 기분 묘하고 야릇하다.
언젠가 지인이 내게 물었다. “글쓰는 게 그렇게 좋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데 글을 쓰고 싶어”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응 그냥 좋아, 글이 막 써져”
그는 혀들 내두른다. “그럼 써야겠네, 안 쓰면 안 되겠어”
아내 또한 현실적인 글쓰기를 원한다. 전공에 관한 글을 써서, 전문성과 인지도를 높이는 것을 원한다. 시시콜콜한 집 얘기, 야한 얘기, 마누라 얘기 같은 거 쓰지 말라고 하면서...
요새는 아내의 말을 일부분 받아드리고 전공에 관한 내용과 생활 글을 3대 1의 비율로 쓰고 있다.
글은 온전히 깨어있는 나와 만나는 순간이다. 숨겨진 내가 세상 밖으로 자유롭게 활보하면서 말이다.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혼자만의 글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으면 한다. 나는 내가 쓴 글이 그저 불쏘시개로 사용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지금까지 미스토리를 썼지만 이제는 대중적인 글을 쓰고 싶다. 그 안에서 나를 만나고, 치유하고, 그리고 세상을 더 알고 싶다.
김성운 작가의 책 소개입니다.
http://m.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blio.bid=124854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