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태도(attitude)
퍼스널 트레이너는 좋은 태도(마음자세)를 지녀야 한다.
요즘 신병주 역사학자가 강의한 ‘이야기 한국사’에 빠졌다. 그런데 역사적 인물들을 보면 하나같이 어제의 막역한 관계가 오늘의 견원지간으로 돌변하는 사례들을 종종 볼 수 있었다.
그만큼 자신이 추구하는 사상적 체계가 흔들리는 것은 자신의 전부가 사라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여겼던 것 같다.
정몽주와 정도전, 성삼문과 신숙주, 퇴계 이황과 남명 조식, 중종과 조광조의 관계가 그 좋은 예라 할 수 있겠는데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첫째, 역성혁명과 기존체제를 유지하는 과정에서 끝끝내 갈라서게 된 정몽주와 정도전은 한때는 ‘이색 스쿨’이라는 곳에서 호형호제 하면서 가깝게 지내던 관계였다.
둘째, 세종대왕시절 집현전에서 한글 창제와 서적을 편찬하는데 함께 공을 들였던 성삼문과 신숙주는 단종 폐위에 관한 문제에서 사육신과 세조의 브레인으로 갈라서게 되었다.
셋째, 같은 동인 출신이었지만 뜻하는 정치체계가 달라서 남인의 이황과 북인의 조식으로 분열되어 결국은 남북붕당의 체계가 형성되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연산군의 폭정으로 쿠데타를 일으켜 왕위에 오른 중종은 사림학파인 조광조를 등용해 입지가 약한 자신의 세력 기반을 견고히 하고자 했지만 끝내는 조광조의 지나친 간섭으로 인해 유배를 보내고 사약을 받게 한 왕과 신하의 불편한 관계를 들 수 있다.
내게도 한때는 허울 없이 지내던 관계에서 얼굴을 같이 대하면 왠지 불편해 지는 사이로 전락돼버린 경우가 종종 있다. 성격상 웬만해선 사람들에게 싫은 소리를 못하지만 삶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원칙을 허물고 들어오는 모든 외부적 자극에 대해서 철저히 저항하는 편이다. 이러한 원칙에선 친척이든 나이가 많은 선배든 나이 어린 후배든 예외가 없다.
그렇다면 다 털어버리면 남게 되는 내 삶의 원칙은 무엇인가?
그것은 인간에 대한 예의다. 시쳇말로 ‘싸가지’다. 특히 나를 하대하는 말투를 함부로 짓거릴 때 내안의 헐크가 튀어나온다. 분명 그렇게 말한 상대방 또한 원인제공을 받았기에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 방어적 기전이 발동했으리라 여겨지지만, 느낌상 상대방의 의도를 알 수 있기에 ‘이것은 분명 싸가지 없는 행동이다’라고 판단이 되면 여지없이 싸움닭으로 돌변한다.
(프리랜서처럼 일하라, 이근미, 쌤앤파커스)라는 책에서는 사람을 평가하는 세 가지 기준으로써 3A가 있다고 하는데,
그것은 appearance(외모), ability(능력), attitude(태도)이다.
외모는 꼬라지, 능력은 싹수, 태도는 싸가지라고 말할 수 있는데 꼬라지와 싹수를 바꾸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는다. 하지만 싸가지는 그 사람의 인격이기 때문에 쉽게 바꿀 수가 없다.
외모와 능력 그리고 태도가 있을진대 그중에 태도가 제일 바꾸기 힘들다는 말은 참으로 무릎을 치지 않을 수 없는 후련한 표현이다.
생업으로 일하고 있는 퍼스널 트레이너의 삶속에서도 종종 태도(싸가지)가 부족한 경우를 볼 수 있다. 가령 트레이닝 시간을 상습적으로 늦는 다거나, 독고다이처럼 자신의 트레이닝이 최고인양 남의 트레이닝을 하수로 여기거나, 또는 회원과의 수업시간을 자신의 스케줄에 맞춰 시시각각으로 변경 하는 경우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들 대부분은 외모와 능력은 출중하다. 한마디로 인격이 덜 됐다. 나는 외모와 싸가지는 좀 있는 편이다. 능력은 보통이다. 그래도 능력이 좀 모자라도 한 곳에서 10년 동안 트레이너로서 일을 해 오고 있다. 만약 싸가지가 없었다면 벌써 이곳저곳으로 전전긍긍했을 것이다.
외모와 능력이 부족해도 태도만 좋으면 그래도 희망적이다. 왜냐면 외모는 돈을 투자하면 되고 능력은 노력을 쏟으면 된다. 그렇게 되면 3년 후엔 외모와 능력은 어느 정도 비슷한 수준에 오르게 된다. 그런데 태도는 좀처럼 요지부동이다.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도 길은 있다. 태도가 인격의 범주라면 인격을 담은 학문을 공부하면 된다. 바로 책을 읽는 것이다. 전공 책에는 몸의 기능을 회복시킬 수 있는 방법들이 담겨져 있다. 하지만 마음을 다스리는 내용은 없다. 그래서 전공도 중요하지만 교양도 필요한 것이다. 전공필수가 있듯이 교양필수 과목도 이수해야만 한다. 인격에 관련된 책이면 모두 좋다. 성인의 말씀도 괜찮고, 문학과 고전도 훌륭하다. 다만 자기 자랑만 늘어놓는 책은 삼가야 한다.
책 예기가 나왔으니 태도에 관한 도서를 소개하고자 한다. 제목은 ‘레 미제라블(빅토르 위고)’이다. 한 사람의 관용과 자비가 또 다른 한 사람의 삶의 태도를 완전히 변화시키는 내용이다.
예전에 써 놓은 독후 노트를 옮겨 적어본다.
『이 책을 접하기 전에는 ‘레 미제라블’이 장발장의 다른 표현인줄 알았고 빵 한 조각을 훔쳐서 감옥에 간 엄청 재수 없는 사람으로만 생각한 것이 내가 갖고 있는 정보의 전부였다.
책을 읽게 된 동기는 뮤지컬 식으로 구성된 영화를 보고 감동을 받고서 작품속 등장인물의 내면화된 느낌을 구체적으로 알고 싶어서이다.
책의 주된 키워드는 양심과 자유 그리고 사랑과 구원과 선행이다.
책의 내용 중 가장 나를 감화시켰던 부분은 미리엘 주교의 대사였다. 19년의 감옥살이를 하고 나온 장발장은 그 시절동안 악인의 모습으로 변화되었다. 출옥하고 나와도 유형수라는 신분증이 있기 때문에 어느 곳에서도 그를 받아주지 않았다. 돈을 지불하고 여관에 투숙하려고 해도 받아주지 않았다. 하지만 미리엘 주교만이 장발장을 죄수가 아닌 한 길 잃은 어린 양을 대하듯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그러나 장발장은 인간에 대한 증오와 불신으로 인해 야밤에 돈이 될 수 있는 은 식기를 가지고 도망을 쳤다. 그리고 얼마못가서 경찰에게 붙잡혔고 장발장은 주교가 주었다라고 거짓말을 하게 된다. 그 일이 사실인지 알아보기 위해 주교를 대면하게 되었다. 하지만 주교는 거짓말을 한다. 그리고 은촛대도 가지고 가라고 했는데 안 가져갔다고 장발장의 가방에 은촛대를 넣는다. 그러면서 주교는 "이 은촛대로 당신의 영혼을 샀으니 이제부터는 주님의 아들로써 늘 선행을 하면서 사시오"라고 의미심장한 말을 건넨다.
절체절명의 순간에서 장발장은 주교의 은혜로 자유를 얻게 된 것이다. 그리고 가슴 깊은 곳에 큰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이제 나의 삶은 비천함이 아니라 축복이고 은혜의 삶이라는 것을 그리고 죽을 때 까지 불쌍하고 가난한 이웃을 돌보며 살겠노라고 다짐을 한다. 그리고 그는 죽기 전까지 그렇게 살다간다. 자신의 비석도 초라하게 만들어 달라고까지 하면서...』
책에서와 비슷한 상황을 겪었다. 회원의 말 한마디가 내겐 미리엘 주교의 자비와 같았다. 정말 그 이후로 트레이닝에 대한 태도와 삶의 자세가 많이 변했다.
지면을 통해서 잠시 나눠보고자 한다.
『프리랜서로서 근무하기에 수업이 없는 시간에는 잠깐 개인 일을 볼 수 있다. 최근에 나는 당구에 빠져서 공강 시간 만 되면 당구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사건이 일어난 날도 나는 당구를 쳤다. 그런데 오후 6시에 수업이 있는데 5시 40분이 지나도 게임이 끝나지 않았다. 당구는 최종 한명이 게임비를 내게 되어있다. 시간은 5시 50분을 향해 가고 있었다. 결정적으로 51분 만에 게임이 끝났다. 나는 눈썹이 휘날리도록 센터를 향해 뛰었다. 센터와 당구장의 거리는 걸어서 10분정도 이었기에 전력으로 뛰면 5분 안에는 다다를 수 있다. 탈의실에서 빠른 속도로 옷을 갈아입고 수업을 하러 계단을 올라가는데 카톡 문자가 왔다.
“저 30분정도 늦을 것 같아요”
나는 수업을 하려고 똥줄 타면서 뛰었던 행동이 생각나서 허무함이 몰려왔다. 그리고 수업이 없어서 천천히 걸어오고 있는 동료에게 문자를 남겼다.
“**야! 30분 늦겠단다. 어이없다.”
앗! 그런데 사단이 나고 말았다. 카톡 문자는 내가 보내려고 했던 **에게 전달되지 않고 회원의 카톡으로 보내졌다. 정신없어서 카톡 창을 둘 다 열어놓았던 것이다. 하늘이 노래졌다. 그리고 머리가 하얘졌다.
“이런,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야!”
나는 회원한테 곧바로 카톡을 보냈다.
“죄송합니다! 문자를 잘못 보냈습니다.”
문자를 보내자마자 회원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다. 반사적으로 통화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전화기 건너에서 쏟아지는 질책성 발언이 수십 개의 파편이 되어 귀를 통과하여 측두골에 꽂혀버렸다. 오금이 휘청거렸다. 엄연한 내 잘못이다. 회원은 프런트에 가서 내가 보낸 문자를 문제화하겠다고 했다. 나는 프런트 앞에서 회원을 기다렸다. 오만가지 생각들이 스쳐갔다.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사람의 진면목을 알 수 있으려면 위기상황을 어떻게 대처하는가를 보면 된다고 하던데 나는 어찌할 바를 몰라 회원에게 비굴한 말을 꺼내 버렸다.
“제발 프런트로 가지 마시고 저와 대화를 하시면 안 될까요?”
닥쳐올 후폭풍에 겁이 났었다.
드디어 회원이 정문을 향해 들어왔다. 앞에 서 있는 나와는 눈도 마주치지 않고 프런트로 향했다. 그런데 회원은 프런트를 그냥 지나치더니 수업 받는 곳인 3층으로 올라갔다. 따라오라는 무언의 말을 하는 듯 했다. 나는 황급히 뒤따라갔다. 3층 사무실엔 매니저가 있었다. 다행이었다. 그래도 그분은 트레이너 출신으로 내겐 유일한 비빌 언덕이었다.
시간이 지나고 회원은 얼굴에 화장이 번진 채 잰 걸음으로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곧이어 매니저의 호령이 떨어졌다.
“김 트레이너, 사무실로 오세요!”
상기된 얼굴로 나는 매니저의 입을 쳐다봤다.
“너 정말 사람 복이 있다! 이 사건은 정말 트레이너로써 범하지 말아야 할 중대 사건이었다. 그런데 회원님께서 간곡히 부탁했다.”
회원님의 말이다.
“그냥 하소연을 하고 싶었어요. 제가 지금껏 살면서 이런 문자를 받을 만큼 잘못 살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나로 인해 김 트레이너에게 추호도 불이익을 받지 않았으면 합니다.”
“자식이 세 명이고 저와 나이도 동갑이고 열심히 사시는데......”』
그날 이후 나는 어떠한 징계도 받지 않았다. 나는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런 일이 있고 난후 나는 당구를 끊었다. 그리고 트레이너로서의 마음가짐(태도)을 다잡고 수업 준비를 위해 더욱 집중했다.
시간이 지나고 나는 그날 하지 못했던 말들을 회원에게 카톡으로 문자를 보냈다. 하지만 확인만 하고 답글은 보내지 않았다. 충분히 이해한다. 그리고 정말 감사하고 미안했다.
문자를 잘못 보내는 것은 누구나 범할 수 있는 실수다. 그러나 수업에 임하는 태도에 문제가 있었다. 수업을 앞두고 그런 일(당구장)을 했다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트레이닝을 위해서 회원은 수업을 위한 한 시간과 수업을 위해서 소모하는 시간까지 어림잡아 세 시간은 투자해야 한다.
모든 일은 태도가 정말 중요함을 다시금 깨닫게 된 사건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상황에서 관용과 자비를 보여준 회원의 마음 또한 트레이너가 갖춰야할 모습이라 생각했다.
건강과 운동에 관련한 강의와 세미나가 넘쳐난다. 최근에 코엑스에서도 운동 박람회가 열렸다. 많은 사람들이 찾았고 각자의 관심과 성향에 맞는 프로그램을 듣느라 인산인해를 이뤘다. 다 좋았다. 하지만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트레이너의 자질과 인격에 관한 교양필수 강의는 없었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태도에 대해선 시간이 지나면 채워지는 줄로만 생각해서일까? 그러나 이것 또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영역인 것이다. 물론 오랜 기간이 걸리겠지만 말이다.
공자의 제자들 중에도 싸가지가 없는 이가 있었나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지식은 많아도 인격이 없는 자는 문서를 관리하는 사람에 지나지 않고, 또한 인격은 있지만 지식이 없는 자는 야인에 지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