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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에 대처하는 나의 자세

나는 아직 어른이 되려면 멀었다.

by 피트니스 큐레이터

오늘따라 리브가는 일찍 쌔근쌔근 깊은 잠에 빠졌다. 놀란 마음이 몸의 피로로 이어졌나보다. 나또한 리브가 옆에서 오늘 있었던 일을 다시 생각하며 놀란 가슴을 쓸어 내렸다. 그리곤 이내 리브가의 얼굴에다 내 얼굴을 비비면서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사람의 진면목을 알려면 위기에 처했을 때 어떤 행동을 취하는가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나는 아직도 어린 아이처럼 대처능력이 너무도 부족한 수준에 머문 듯하다. 평소에 그렇게 잘 굴러가던 머릿속 생각 시스템이 위기에 봉착하면 작동을 멈춰 버려서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다. 그래서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다.

어제 리브가가 머리를 다쳤을 때도 나는 다급한 나머지 어쩔 줄 몰라서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리브가를 들쳐 업고 병원으로 갈 생각은 안 하고 아내에게 먼저 전화를 걸었던 것이다. 아내와의 전화를 마치고 나는 그제야 가까운 병원을 알아본 후 황급히 자리를 옮겼다. 다행이도 머리의 상처는 꿰맬 정도는 아니어서 응급 처치 후 처방전을 들고 약국으로 향했다. 그 당시는 머리에서 흐른 피가 등까지 이어져서 심하게 다친 줄 알았다.

아내 또한 숨넘어가는 남편의 목소리를 듣고 큰 사고가 났는지 알고 하던 집안일을 제쳐둔 채 민낯과 슬리퍼를 끌고 부랴부랴 병원으로 왔다. 자초지종과 의사의 말을 들은 아내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한심한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그러면서 하는 말은,


“ 아니, 애가 다쳤으면 나한테 전화 하지 말고 병원부터 가야지 거기서 시간 지체하면 어뜩하냐!”


사실 이런 일이 오늘만이 아니다. 나는 매번 스스로 해결 할 생각은 안하고 무슨 일만 있으면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해결책을 달라고 조른다. 특히 아이들에 관한 일이면 무조건 전화를 건다. 하기 싫어서 그럴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내 능력 밖의 일들이 많았다.


어렸을 때도 막내라는 이유로 늘 나는 형의 도움을 많이 받고 자랐다. 그 당시 형은 내가 저지른 일들을 많이 수습해 줬다. 특히 위급하고 어려운 상황에서는 형의 발군의 실력은 빛이 났었다. 그러한 과거력이 습관이 되어 마흔이 다 된 지금에도 남의 도움을 받는 것에 관대한 것 같다. 특히 가까이 있는 아내에게서는 의지하는 성향이 심할 정도로 크다.


어른이 된다는 것에 대한 정여울 작가가 내린 글귀를 들여다보면 나는 아직 어른이 되려면 먼 듯하다.

“돈을 벌 수 있다고 어른이 되는 것일까. 내 한 몸의 의식주를 잘 챙길 수 있다고 어른이 되는 그것만은 아닐 것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자기 고민에 책임을 진다는 것,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은 아무리 힘들어도 책임을 진다는 것이 아닐까.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도움을 요청하는 것과 도움에 의존하는 것은 다르다. 어쩌면 어른이 된다는 것은 ‘도움을 청하는 능력’과 동시에 ‘도움에 의존하지 않는 능력’을 길러야 하는 모순을 견디는 일인지도 모른다.”

주말을 맞아서 리브가의 두발 자전거 타기를 돕다가 벌어진 돌발 상황에 세 명의 자식들은 깜짝 놀랐을 텐데도 차분하게 아빠의 지시에 잘 따라줘서 너무 고맙고 대견했다.


나는 언제쯤 영화 테이큰의 ‘리암 리슨’과 복수의 ‘스티븐 시걸’처럼 강심장이 되어 현실적 대응을 잘 하는 어른의 모습을 갖출 수 있을지 아련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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