킴 투이의 '루' Ru

슬프고도 찬란한 보트피블 이야기

by 제비

오랜만에 한국에 다녀갔다가 지인이 베트남에서 사니 공감할 것 같다며 선물해 준 책이다. 정말 그랬다. 분홍색 책 표지부터 Ru라고 한 음절로 이루어진 책 제목까지 뭔가 대단한 비밀이라도 간직한 양 나를 매료시켰다. 책 소개에는 킴 투이라는 베트남 작가의 장편 소설이라고 되어 있었지만 손 안에 쏙 들어오는 작은 크기의 책에는 짧게는 반 페이지부터 길어야 2장 남짓되는 단편적인 장면 묘사와 감상들이 나열되어 있어서 시와 소설의 중간쯤 되는 장르가 좀 모호하고 신비스러운 분위기의 책이다.


이 책의 저자 킴 투이는 1968년생으로 열 살까지 남베트남에서 부르주아로 살다가 공산당인 북베트남이 베트남 전역을 장악하게 되자 목숨을 걸고 보트에 몸을 던져 말레이시아 난민 캠프로 탈출한다. 그리고 다시 생을 걸고 더 큰 바다를 건너 캐나다에 정착해 살게 된다. 책의 주인공 Nguyễn An Tịnh의 삶 역시 킴 투이의 삶과 오버랩 되지만 완전히 똑같지는 않은 변주가 숨어 있어서 이것이 킴 투이의 실제 이야기인지 킴 투이의 상상력이 가미되어 지어낸 이야기인지 궁금해하는 것도 이 책을 읽는 재미 중 하나이다. 왜냐하면 실제 겪은 일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아프고도 아름다운 스토리이기에 지어낸 이야기라고 하는 편이 낫겠다 싶을 만큼 작가의 서사가 절절하기 때문이다.


이 처연한 스토리의 일부는 작가가 직접 겪은 일이라는 것이, 적어도 감정에 대한 묘사만큼은 작가가 정말 느꼈던 감정이라는 것 때문에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저렸다. 하지만 찾아본 인텨뷰 영상 속의 실제 작가는 놀라우리만치 밝고 발랄해서 안심이 되었다. 사람은 엄청난 고통을 통과하고 난 후에도 저렇게 꺽이지 않고 활짝 피어날 수 있구나 하는 희망이다. 높은 지위와 많은 메이드를 거느리고 살다가 오물과 토사물에 더 이상 고개를 돌리지 않는 사람이 될 때까지 작가는 얼마나 많은 고통의 순간을 지났겠나 생각해보면 가슴이 아프다.


발이 미끄러져 죽은 이웃의 신발이 떠 있는 화장실을 곁에 두고 살았던 여자 아이는 훗날 베트남 사람과 프랑스 사람을 연결해주는 통역을 해주기도 하고 번역학과 법학을 공부해 변호사가 되기도 하였다. 또한 캐나다에서 베트남 전통 음식을 소개하는 식당을 운영하기도 하는 세계적인 작가가 되었다. 5년마다 직업을 바꿨다는 작가는 삶이 주는 변화에 익숙하다.


책 제목인 Ru는 프랑스어로 ‘실개천’을 뜻하고 ‘돈, 눈물, 피의 흐름’을 비유할 때 사용하며 베트남어로는 ‘자장가’라는 뜻이라고 한다. 책 마지막에 번역을 한 윤진의 글이 실려 있는데 제목이 <루ru, 흘러내리는 ‘눈물과 피’에 바치는 ‘자장가’>이다. 이 책의 훌륭함의 절반은 결단코 번역가 윤진의 몫이라고 말하고 싶다. 2009년에 프랑스어로 출판된 이 책을 한국어로 유려하게 옮겨낸 번역가의 성과가 감동적이다. 원래 문장도 좋았겠지만 그것을 한국어로 이만큼 잘 옮겨낼 수 있을까 싶을 만큼 훌륭한 문장들이다. 우리나라 한강 작가의 작품을 번역해 노벨문학상을 받게 한 영국인 번역가 데보라가 생각난다. 동서양을 오가며 천당과 지옥을 모두 경험한 작가의 문장을 또 다른 언어로 옮겨낸 성과가 성스럽게까지 느껴진다.


이 책은 문장도 아름답지만 내용 또한 우리 한국인에게 더 울림이 있다. 우리 역시 이념 때문에 갈라져 동족간에 전쟁을 치룬 아픔의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킴 투이 작가는 2009년 ‘루ru’의 출간에 이어 2013년에는 ‘만mãn’이라는 소설을 발표하고 2020년에는 ‘엠em’을 출간했다. 작가의 다른 책들도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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킴 투이 작가의 작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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킴 투이 작가


킴 투이 작가의 인터뷰: 베트남 보트피플에서 북미 베스트셀러 작가로...킴 투이의 여정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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