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적 감정을 나누는 법

by 제비

개구쟁이 아이들과 하루를 보내다 보면 늘 기분 좋은 일만 있지는 않다. 엄마기 때문에 잔소리할 일도 많고 아이들이 나에게 항의를 하거나 불평불만을 쏟아내는 순간도 많다. 아니면 자기들끼리 시비가 붙거나 다투는 일도 일상이다. 서로 긍정적인 감정을 나누는 것은 비교적 부담이 적지만 부정적인 감정을 나누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괜찮은 척 숨기거나 모른 척 피하게 되는 경우도 많은 것 같다. 아니면 나이가 많거나 힘이 있는 사람이 일방적으로 자기보다 약한 사람에게 자신의 부정적인 감정을 쏟아내는 형식이 되기가 쉽다. 어떻게 하면 부정적인 감정도 바람직하게 서로 나눌 수 있을까가 요즘 나의 이슈이다


사춘기 큰 아이와의 대화

요즘 만사에 예민하게 구는 큰 아이를 방으로 데리고 와서 조곤조곤 이야기를 나눴다. ‘네가 요즘 아이에서 어른이 되어가는 중이라 예전보다 더 피곤하고 짜증도 많이 나고 감정 조절이 안 되는 건 엄마가 이해를 한다. 하지만 사춘기가 내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쿠폰 같은 거는 아니다. 사춘기 때 몸도 마음도 뇌도 리모델링이 되는 시기라는데 이때야말로 건강하고 건전한 생활 태도를 잘 쌓아나가야 하지 않겠냐.’


처음에는 아이 이야기를 많이 들어주려고 생각했었는데 어느새 내 잔소리가 더 길어지고 있다. 아이가 ‘엄마, 또 그 벽돌 얘기!’ 하면서 머리를 흔든다. 내가 사춘기는 뇌가 리모델링하는 시기라면서 집을 리모델링할 때 벽돌을 잘 쌓아야 하는 것처럼 매일 좋은 습관을 잘 쌓아 나가야 한다고 잔소리를 자주 했더니 지겨운가 보다. 실패다. 멈출 때가 된 거 같아 아이를 놓아줬다.


억울한 작은 아이와의 대화

요즘 늘 억울한 작은 아이도 방으로 따로 불렀다. 형이 자기를 따돌리고 친구들하고만 어울리면서 느껴지는 소외감, 내쳐지는 기분, 자기는 별 말 안 했는데 형이 예민하게 굴어서 서운하고 서러운 감정들, 화나고 불쾌한 기분을 많이 들어줬다. '너로서는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형이 알아주지 않아서 정말 많이 속상했겠다'라고 아이의 마음을 공감해 주었다.


형이 요즘 감정 조절이 어려운 것은 발달 과정상 우리가 이해해주어야 하는 면도 있다고 설득하면서 '너 사춘기가 뭔지 알아?' 하고 물었다. 아이가 자신 있게 답했다. '응, 알아. 착했던 아이가 나빠지고 나빴던 아이가 착해지는 거잖아!' 아이의 나름 통찰력 있으면서 재미있는 답변에 웃었다. 아이 말도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비교적 온순한 편이었던 큰 아이가 한껏 예민해져서 작은 일로도 짜증을 많이 내고 동생한테도 너그럽지 않은 모습이다. 대신 마냥 장난꾸러기였던 작은 아이가 약간 철이 들었는지 오히려 형보다 어른스럽게 굴기도 한다. 눈치 빠르고 마음이 넓은 네가 형 비위를 좀 맞춰주라고 부탁하니 아이가 수긍한다. 아이의 이야기를 먼저 충분히 들어준 뒤 엄마의 이야기를 덧붙이되 아이가 가진 장점에 대해 알아주고 지지해 주면서 말하는 게 일종의 요령이다. 아이가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이며 나갔다. 작은 아이는 성공이다.


작은 아이는 요즘 아빠한테도 불만이다. 아빠가 무조건 자기만 야단친다는 거다. 애들 아빠는 아무래도 바쁘다 보니까 아이들이 매일 달라진다는 사실을 놓칠 때가 많다. 큰 애는 유순한 편이고 작은 아이는 까불이라는 고정관념이 있다 보니 자세히 살펴보지 않고 잔소리를 했나 보다. 나도 장녀고 남편도 장남이라 아무래도 우리 집은 알게 모르게 첫째인 큰 아이 마음을 좀 더 이해하는 편인지도 모르겠다. 남편과 나의 경험이 형과 언니로서의 경험이 더 많기 때문에 작은 아이가 형한테 좀 숙여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다. 작은 아이의 항변에도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 남편에게 말해 주었다.


남편과의 대화

사람은 매일 변한다. 실제로 우리 몸의 세포들이 1년에 70~80% 정도 새로운 세포로 바뀐다고 한다. 어제의 나하고 오늘의 나는 다른 사람일 수 있다. 더군다나 성장 중인 아이들은 더 많이 바뀔 것이다. 어제까지의 모습을 가지고 오늘 아이들을 판단하면 안 된다. 지금 이 순간 아이가 느끼는 감정과 아이가 정말 하고자 하는 얘기를 열린 마음으로 편견 없이 잘 들어줘야 한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런 내용이었는데 너무 길어지면 남편이 싫어할 것 같아서 마음 속으로 짧고 굵게 요약을 했다.


남편에게 우선 요즘 아이들한테 관심을 가지고 이것저것 잘 알려주려고 해 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그리고 요즘 아이들이 많이 컸다고 말했다. 아이들은 매일 달라지기 때문에 내 생각을 가지고 아이들을 대하기보다는 아이의 진짜 모습을 보고 조심스럽게 대해 달라고 부탁했다. 남편이 알겠다고 수긍을 했다. 요즘 남편이 내 말을 잘 들어주는 편이다. 감정코칭에서 배운 대화법을 남편한테도 적용했는데 효과가 있다. 듣기 싫게 지적하듯 말하지 말고 너무 길게 가르치듯이 말하지 말고 이해와 공감을 바탕에 두고 가볍고 편안하게 내 마음을 전달하는 것이다. 감정코칭형 대화법을 알면 아이하고의 관계만이 아니라 다른 어른들하고의 관계에도 도움이 된다.

지적하듯 말하지 말고
가르치듯 말하지 말고
이해와 공감을 바탕으로
가볍고 편안하게

아이들과의 대화

어느 날 나도 에너지가 달린다는 마음이 들어서 아이들로부터 이해를 받아보고자 말을 꺼냈다. “얘들아, 너네는 사춘기만 알고 있지? 근데 갱년기라는 게 있어. 가끔 어른들도 감정조절도 안 되고 괜히 짜증이 나는 날도 있거든. 엄마가 가끔 짜증을 내도 너네가 좀 이해해 줘" 그러자 두 아이가 다 반발이다. 큰 아이는 '엄마가 나 보고는 사춘기라고 안 봐준다고 하지 않았어?' 이러고, 작은 아이는 ‘엄마는 나보고 형은 사춘기니까 배려하라고 그러더니 엄마는 갱년기니까 배려하라고 그러고 나는 둘 다 배려만 해야 해?’ 이런다.


그러자 큰 아이는 또 작은 아이보고 ‘네가 언제 나를 배려했어?’ 그러고 작은 애는 작은 애대로 ‘엄마가 부탁해서 내가 요즘 얼마나 형을 많이 배려하고 있는 줄 알아?!’ 이러면서 난리다. 내가 괜히 시작했다. 엄마가 갱년기 진상 안 부릴 테니까 우리 모두 잘 지내보자는 말로 겨우 마무리했다. 섣불리 아이들로부터 이해받으려고 하지 말고 그냥 내가 아이들을 더 많이 이해해 주며 사는 게 속 편할 것 같다.


마음을 나누는 법

나도 크면서 엄마 잔소리를 지겨워했으면서 막상 엄마가 되고 보니 아이들한테 가르쳐주고 싶은 것도 많고 당부하고 싶은 것도 많다. 만약에 가르쳐주고 싶은 것들 중에 딱 하나만 고르라고 하면 다른 사람과 마음 나누는 법에 대해 가르쳐주고 싶다. 누군가와 함께 기뻐할 줄 알고 누군가와 함께 슬퍼할 줄 아는 사람이 되면 그 어떤 세상이 와도 다른 사람들과 마음 맞춰 잘 살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부정적인 마음을 나누는 지혜를 꼭 가르쳐주고 싶다. 사람이 서로 늘 마음이 맞을 수는 없기 때문에 살다 보면 나와 가까운 사람들에게도 불만이 생기고 불편한 마음이 생기는 때가 많다. 그런 마음이 생길 때 지혜롭게 잘 나누고 다시 관계를 풀어내는 지혜가 있다면 사는 일이 한결 수월할 거다.


나는 얼마나 잘하고 있는지 돌아본다. 아이들은 엄마의 말보다 엄마의 모습을 보고 배워 나가기 때문이다. 나는 아이들한테 또 남편한테 나의 불만을, 나의 속상함을, 나의 슬픔을 얼마나 적절하게 잘 나눠왔던가 돌아본다. 좋은 게 좋다고 불편한 내 마음을 숨기거나 피하고 적당히 넘어가며 살다 보면 나도 내 마음을 잘 모를 수도 있고 관계는 피상적이 된다. 괜히 참다가 엉뚱한 곳에서 엉뚱한 사람에게 내 부정적인 감정을 터뜨릴 수도 있다. 앞으로 좀 더 노력해서 아이들 앞에서 솔직하고 간결하게 내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엄마가 되면 좋을 것 같다. 좋은 마음은 물론이고 좀 불편한 마음까지도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말이다. 잘 깨어서 나를 살피고 많이 연습해보자고 각오를 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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