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을 물어보는 질문

감각, 욕구, 바램 등도 감정이다

by 제비

아이를 키우다보면 아이한테 뭘 물어보게 되는 때가 참 많다. 나가서 놀던 아이가 울면서 들어오면 “왜 그래? 누가 그랬어? 어쩌다 그랬어?” 하면서 속사포처럼 질문을 쏟아내게 된다. 엄마는 있었던 사실을 있는 그대로 듣고 싶고 공정하게 판단해서 합리적인 해결책을 제시해주고 싶다. 그래야 아이가 앞으로 세상을 살아가면서 만나게 되는 문제들에 대해서도 똑똑하게 처리할 수 있을 것 같아서이다.


왜 그래?
누가 그랬어?
어쩌다 그랬어??


그런데 그렇게 사실 관계에 집중해서 아이에게 질문하는 것이 엄마의 의도와는 다른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는 게 함정이다. 육하원칙에 의거해서 묻는, 사실에 관한 질문은 잘못하면 아이한테 취조당하는 기분을 줄 수가 있다. 특히 ‘왜?’라는 질문은 자칫하면 ‘나는 네가 왜 그렇게 했는지 정말 이해를 못하겠어’라는 비난의 느낌이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엄마는 그냥 궁금해서 물어보는 거일 수도 있지만 아이는 왠지 야단맞는 기분이 들고 엄마가 내 편이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 오히려 사실대로 전달을 못해 줄 가능성이 있다.

왜 울어?
왜 싸웠어?
왜 그래?
왜 이렇게 시끄러워?
왜 이렇게 어질러졌지?


‖감각도 감정이다‖


아이에게 한 편이라는 인상을 주려면 사실보다는 아이의 감정에 대해 질문하는 것이 좋다. 감정은 여러 차원이 있다. 아이에게 느껴지는 감각에 대해 물어보는 것도 감정을 물어보는 좋은 방법이다. 얼마나 아프니? 어떻게 느껴지니? 어떻게 보였니? 뭘 들었니? 이런 감각에 대한 질문은 아이에게 엄마한테 정말 중요한 것은 객관적인 사실보다 '나'라는 메세지를 준다. 그래서 한 편이라는 느낌이 들고 존중받는 기분이 들어 어느새 마음이 가라앉는다. 그러면 오히려 상황을 차분하게 잘 전달해줄 수가 있다.

얼마나 아프니?
어떻게 느껴지니?
어떻게 보였니?
뭘 들었니?

우리 아이가 어릴 때 여러 가족이 함께 여행을 가서 수영을 하고 놀았던 적이 있다. 다른 아이들은 수영복을 입은 채로 나와서 밥도 먹고 산책도 하고 잘만 노는데 우리 아이만 유난스레 젖은 수영복이 차갑다며 새 옷으로 갈아입고 싶다고 했다. 숙소는 수영장에서 한참 떨어진 곳이었는데 아이를 설득하다 실패해서 오토바이를 잡아 타고 숙소에 돌아가 새 옷으로 갈아 입혀 돌아왔다. 주변에서는 내가 아이를 너무 다 맞춰준다고 살짝 핀잔을 했다. 이럴 때 아이한테 좀 맞춰주는 것이 맞는지 아니면 불편한 것을 참는 것도 가르쳐주기위해 모르는 척 놔두는 것이 맞는지 헷갈리기만 했다.


감정코칭을 가르쳐주는 강사님한테 질문을 했는데 강사님은 이럴 때 정답은 없지만 아이의 연령을 고려하는 것이 좋다는 답변을 하셨다. 아이가 아직 어리다면 아이에게 느껴지는 감각을 인정해주고 어느 정도 존중해줄 필요도 있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감각도 감정이라는 말을 하셨다. '다른 아이들은 다 잘만 노는데 너는 왜 그러니?'하고 남과 비교하면서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아이의 감각을 잘못된 것으로 판단해 버리면 아이는 자기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 없어질 것이다. 남에게 해가 되지 않는 범위라면 엄마가 좀 불편하고 번거로워도 아이의 연령을 보면서 아이의 감각을 존중해주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지금은 우리 아이가 주변 사람들이 수용해주지 못할 정도로 유별나다는 느낌은 더 이상 없다. 아이가 그저 철이 든건지 아니면 어릴 때 수용받아본 경험이 아이의 조절 능력을 높인 건지는 알 수 없지만 그런 작은 존중들이 아이와 나 사이에 관계의 질을 높여 주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아이와 함께 오토바이를 타고 숙소에 다녀오는 동안 아이와 함께 맞았던 바람의 감촉을 아직도 기억한다. 보송보송한 새 옷을 갈아 입고 아이가 보여준 환한 미소는 아직도 내 마음에 환한 등불이 되어 준다. 아이한테 참고 견디는 법을 가르쳐주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세상에 옳고 그른 것이 따로 있다기 보다 네가 느끼는 너의 감각, 너의 느낌도 그 자체로 정말 의미있고 중요한 거라는 메세지는 아이의 삶에 정말 중요할 것이다.


‖욕구나 바램도 감정이다‖


감정에는 감각뿐 아니라 욕구나 바램도 있다. ‘네가 지금 원하는게 뭐야?’ ‘어떻게 하고 싶어?’와 같은 질문이 욕구나 바램을 묻는 질문이다. 같이 공부하는 선생님 중에 한 분이 어제 있었던 일이라며 나눠주었다. 막내 학교 과제물이 수박 화채를 해 먹을 수박이었단다. 아이가 수박을 으깨고 뭉개는 게 싫어서 선생님은 자기도 모르게 짜증을 내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2학년 된 아이가 짜증을 내고 있는 엄마한테 다정하게 “엄마, 그런데 엄마가 지금 원하는 게 뭐야?”라고 물었다는 거다.

지금 원하는 게 뭐야?
어떻게 하고 싶어?


그 때 정신이 번쩍 든 선생님은 그러고 보니 내가 아이한테 짜증을 내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고 한다. 그래서 '응, 엄마는 수박이 뭉게지는게 싫어서 엄마가 잘라 주고 싶었어. 너는 어떻게 하고 싶니?'하면서 '여기까지는 엄마가 도와줄테니 너는 이 부분을 맡으렴'하고 자연스럽게 서로 조율를 할 수가 있었다고 한다. 누군가 다정하게 내 욕구를 물어봐주는 것의 효과를 직접 체험한 거다.


이유없이 짜증이 나는 것은 내가 내 마음을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이들은 엄마 마음을 알아차리는 데 귀신이다. 엄마가 짜증을 낼 때 아이는 자기가 아는 방법으로 엄마 마음을 풀어주려고 노력을 한다. 다른 아이 같았으면 이럴 때 어떻게 해야 엄마 기분이 풀릴지 몰랐겠지만 이 아이는 감정코칭으로 자란 아이였다. 그래서 엄마한테 좋은 질문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엄마,
엄마가 지금 원하는 게 뭐야?


마찬가지로 아이가 이유없이 무턱대고 짜증을 낼 때 그런 아이한테 예의범절이나 성질머리에 관해 일장연설을 늘어놓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 그럴 때 다정하게 “네가 지금 원하는 게 뭐니? 엄마가 어떻게 도와줄까?”하고 물어봐주는 것이 사랑의 기술, 감정코칭이다.


‖질문의 중요성‖


그러자 다른 선생님이 연관된 심리학적인 실험이 있다면서 사진을 한 장 보여주었다. 그리고 질문했다. “사진 속에 도형이 몇 개나 있는 것 같아요?”

ㅍ.png 사진 속 도형의 갯수를 세어보자

그리고 사진을 가린 후 사진 속에 버스가 있었는데 그 안에 아이가 몇 명 타고 있었는지 기억하느냐고 다시 물었다. 당연히 기억나지 않는다. 내가 주목한 것은 도형이었지 버스 속 아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질문은 초점을 맞추는 역할을 한다. 우리는 질문을 받으면 질문 밖의 것에는 생각하지 않고 질문 받은 내용 안에서 생각하게 된다.


아이들한테 사실을 물어보는 것과 감정을 물어보는 것도 같은 효과가 있을 것이다. 사실을 주로 질문받은 아이는 자기 마음은 주목하지 못한다. 하지만 사람은 모두 주관적이기 때문에 100% 객관적인 사실이란 어쩌면 존재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나는 사실이라고 주장하지만 결국 내 감정으로 채색되거나 변형된 사실을 객관적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감정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 사람은 자기 감정에 주목하게 된다. 내 마음에 기초해서 세상을 보면 오히려 내가 채색하고 싶거나 변형하고 싶은 부분이 명료해진다. 말하는 사람도 말을 듣는 사람도 이제야 비로소 오히려 상황이 있는 그대로 정확하게 보인다. 언제나 내 마음을 먼저 들여다 보는 것이 오히려 객관적인 상황 인식이나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심오한 인간 마음 작용의 역설이다.

그래서 감정코칭에서는 아이에게 감정을 물어봐주는 것이 아이에게 인생길에 대한 네비게이션을 깔아주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요즘은 네비없이 운전하는 건 상상도 못할만큼 복잡한 세상이다. 나도 내 아이에 마음에 성능 좋은 네비게이션을 깔아주는 좋은 엄마가 되고 싶다. 작은 질문 하나도 섬세하게 잘 골라서 해봐야겠다고 다짐해본다.


여기서 잠깐!!!

감정에 관한 용어는 비슷한 게 많아서 헷갈린다. 나도 감정과 마음을 혼용해서 쓸 때가 많다. 감정, 정서, 마음, 느낌, 기분, 욕구, 바램, 감각 등 여러 용어의 의미가 약간씩 겹치기도 하고 비슷한 부분도 많아서 뚜렷하게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감정코칭에서 아이에게 감정을 물어보는 질문을 할 때 "지금 감정이 뭐야?"라는 질문보다는 "지금 기분이 어때?"라는 질문을 한다. 아이에게 감정이라는 용어보다 기분이라는 용어가 더 쉽고 친근하게 여겨질 것 같다.

느낌은 감각과 연결된 용어이다. 보고 듣고 촉감이 느껴지고 냄새 맡아지고 맛이 느껴지는 등 오감을 통해 들어오는 감각이 느낌이다. 어떻게 느껴지니? 어떻게 보이니? 어떻게 들리니? 맛이 어때? 냄새가 어때?같은 질문이 감각에 대한 질문이고 이것이 곧 느낌을 물어보는 말이다.

정서는 좀 더 포괄적인 느낌이고 학술적인 상황에서 쓰이는 것 같다. EQ를 '감정지능'이라고 안하고 '정서지능'이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 그렇다.

욕구나 바램은 '원하는 것'에 해당한다. 나의 감정에 나의 의도와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이 조금 더 섞이면 욕구나 바램이 된다. 뭐 하고 싶어? 뭐 먹고 싶어? 어떻게 도와줄까? 와 같은 질문이 욕구나 바램을 물어보는 질문이다.

조벽 교수님의 용어 정리에 따르면 마음은 감정과 생각이 연결된 상태이다. 감정은 느끼는 것이고 생각은 따지는 것에 해당될 것 같다. 감정과 생각이 잘 연결되야 합리적이고 바람직한 판단을 내릴 수 있다. 실제로 신체적으로도 뇌(생각)과 심장(감정)은 아주 긴밀하게 연결이 되어 있다고 한다. 뇌와 심장이 조화롭게 연결되고 잘 조율된 상태가 마음이 건강한 상태이다.

약간씩 겹치고 헷갈리는 감정에 대한 용어를 정리하다 보면 모호했던 감정이 보다 명료하게 이해가 되고 그러면 곧 감정이 편안해진다. 감정에 대한 용어를 정리하는 일 자체가 감정과 생각을 잘 연결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감정에 대한 용어 정리로 모호하지만 느낌이 풍부한 감정과 명료하지만 뚜렷하게 구분하는 생각을 잘 연결해서 마음을 키우는 연습을 해보면 어떨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