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해방일지

빨치산의 딸이 쓴 다큐 같은 소설

by 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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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나온 책 중 가장 강력하고 재미있다는 호평을 읽고 관심을 가지고 있던 정지아 작가의 <아버지의 해방일지>가 한인도서실에도 들어왔다. 정지아 작가는 32년 전에 <빨치산의 딸>이라는 책을 쓴 후 판매 금지와 기소 등 사건을 겪은 화제의 작가라고 한다. 이 작가가 32년 만에 펜을 들어 써 내려간 책이어서 특별하기도 하지만 사실 그런 배경보다는 책 자체의 내용이 참 재미있어서 푹 빠져 읽었다. 유쾌함과 먹먹함이라는 서로 완전히 상반된 감정을 동시에 느끼게 해주는 굉장히 매력적인 소설이었다.


정지아 작가의 부모님은 실제로 빨치산이었다고 한다. 빨치산은 해방 직후인 1945년부터 1955년까지 남한에서 활동했던 공산주의 비정규군을 칭한다. 공산주의 북한과 자본주의 남한이 3년간 치열하게 싸우고 원수가 된 채로 벌써 70년째 휴전 중인 대한민국에서 빨치산의 딸로 남한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인생이었을 거다. 실제로 32년 전에 관련된 내용의 책을 써서 기소까지 당했었다니 작가의 험난했던 세월이 조금은 짐작이 된다.


소설 속 주인공은 실제 정지아 작가처럼 빨치산의 딸이기에 이 책의 내용인 실제 작가의 이야기인가 하는 호기심이 생긴다. 하지만 정 작가는 이 책의 내용은 어디까지나 소설이라고 웃으며 말한다. 아버지가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죽었다는 웃픈 장면으로 시작하는 이 책은 아버지의 죽음 이후 3일간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담고 있다. 아버지의 장례식장에는 아버지의 동지들도 오고, 아버지의 원수들도 오고, 아버지와 사연이 있는 수많은 인연들이 온다.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와서 주인공도 모르고 있던 아버지와의 단편들을 이야기해 주면서 아버지가 살았던 세월을 각자 다른 시각으로 조망해 준다. 그 이야기는 고스란히 우리나라 현대사이기도 하다.


한편으로는 심각한 이야기라 웃을 수 없는 내용들인데 등장인물들이 뱉어 내는 진한 전라도 사투리가 우습고 작가가 묘사하는 그 상황들이 너무나 코믹해서 뜬금없는 웃음이 터지는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런데 그러다가 문득 그 안에 담긴 사연이 너무 아파서 왈칵 눈물이 쏟아지기도 하다. 강력하고 충격적이라는 서평에 수긍이 간다.


아버지 때문에 인생을 망쳤다는 작은 아버지, 마찬가지로 연좌제 피해를 입은 사촌 오빠, 아버지와 총부리를 맞서고 싸웠다는 친구, 감옥에 가기 전 그래서 고문을 당하기 전 그래서 사시가 되기 전 아버지의 어린 시절 사진을 가지고 있는 친구, 아버지와 담배 친구였다는 노란 머리의 다문화 소녀 등 다양한 사람들 속에는 아버지는 파란만장한 시대를 파란만장하게 살다 가셨다. 사상적으로 서로 원수지만 모두 아버지의 지인으로 만나 아버지를 추억하는 사람들 이야기 속에 작가가 하고 싶었던 말은 결국 사람은 빨갛지도 않고, 파랗지도 않고 모두 그냥 그저 사람일 뿐이라는 내용일 것 같았다.


주인공은 처음에는 아버지의 삶에 대해 약간은 냉소하며 한두 발자국쯤 떨어져서 비판하는 관찰자로 나오지만 아버지의 장례식장을 찾는 다양한 사람들을 통해 아버지의 삶과 한국 현대사의 복잡한 단면들을 통찰하며 어느새 잔잔히 감동하는 순간을 맞이한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이 <아버지의 해방일지>인 것 같다. 작가의 역량과 스토리텔링 능력에 내내 감탄하며 읽게 되는 정말 재미있고 의미 있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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