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코칭을 도구로 사용하면 안된다
이 세상은 눈에 보이는 행동의 세계 안에 감정의 세계가 따로 있다는 새로운 사실을 배우고 그 날부터 아이의 감정을 읽어주는 데 최선을 다 했던 것 같다. 아이가 울면 '슬프구나' 했고, 물건을 던지면 '화가 났구나' 했고, 밤이 되도 자지 않고 놀고 있으면 '재미가 있구나' 그랬다. 그런데 책에서는 분명 이렇게 하면 아이가 자기 감정을 진정시켜서 울던 눈물을 뚝 그치고, 더 이상 물건을 던지지 않고, 이제 잘 준비를 시작하는 등 바람직한 행동을 스스로 할 것이라고 되어 있었는데 우리 아이는 그러지 않았다. 영상 속에서도 최성애 박사님이 아이한테 '슬프구나' 그러면 그 아이가 눈물을 뚝 그치고 말을 듣기 시작했는데 왜 우리 아이는 그런 방법으로 잘 달래지지 않는지 답답하고 힘들었다. 책을 처음 읽었을 때는 아, 이렇게 하면 되겠네 하면서 희망적인 기분이었는데 실생활에 적용이 잘 안되니까 아예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을 때보다 오히려 더 답답하고 괴로워졌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혼란스러웠고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렇게 참담함에 잠겨있을 때 최성애 박사님께서 조벽 교수님과 함께 내가 사는 하노이한국국제학교에 초청 강연을 오셨다.
그날 맨 앞줄에 앉아 강의를 듣고 질문을 했던게 기억난다. 박사님 책도 읽고 영상도 봤고 열심히 따라해봤지만 우리 아이는 여전히 떼를 많이 쓰고 잘 달래지지가 않고 동생하고 매일 싸우며 산다고 하소연했다. 그때 비슷한 질문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박사님께서는 학교와 연계해 학부모 교육의 일환으로 전문가 과정을 개설해주셨다.
책도 읽고
영상도 봤고
열심히 따라해 봤지만
잘 되지 않아요
전문가 과정을 통해 내가 새롭게 알게 된 내용은 '감정에는 옳고 그름이 없다'는 사실이다. 정말 놀라운 내용이었다. 나는 부정적인 감정은 당연히 나쁜 거고 틀린 거고, 긍정적인 감정은 당연히 좋은 거고 옳은 것인 줄 알았다. 애가 짜증내면 당연히 바로 잡아 주어야 하고, 울고 불고 떼쓰면 인성이 나쁜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화나는 감정, 불쾌한 감정, 미운 감정 등등 모든 안 좋은 감정에도 다 이유가 있고 생존을 위해서는 유익한 면이 있기 때문에 부정적인 감정도 존중해주고 인정해 주어야 아이의 바람직한 성장에 도움이 된다는 내용은 굉장히 새롭고 신선했다.
사람은 사실 자연상태에서 피식자에 속한다. 사자, 호랑이 같은 포식자가 아니라 피식자이기 때문에 사람은 기본적으로 위험으로부터 도망가거나 숨는 전략을 사용하는 것이 더 보편적이다. 도망가거나 숨게 해주는 감정은 두려움이다. 그래서 두려움은 생존을 위해 꼭 필요한 감정이다. 피식자인 사람이 도망가거나 숨을 수 없을 때 공격을 한다. 분노는 공격적인 형태로 표현되는 두려움이다. 아니면 싸워서 충분히 이길만 하다고 판단할 때도 공격을 한다. 분노는 싸울 수 있는 에너지를 만들어준다. 어떤 일을 해서 성과를 내기 위해서 공격적으로 행동해야 될 때도 있다. 분노도 생존을 위해 꼭 필요한 감정이다. 나에게 해를 끼치는 사람을 미워하는 감정도, 남에게 해를 끼쳤을 때 부끄러워하는 감정도, 상한 음식을 보고 불쾌해지고 역한 기분이 느껴지는 감정도 모두 생존에 꼭 필요한 감정들이다.
내가 그동안 우리 아이에게 '슬프구나' 해도 아이가 눈물을 그치지 않았던 이유는 내가 감정코칭을 아이를 '내가 원하는대로 만들기 위한 도구'로 사용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원하는 아이란 바로 항상 긍정적인 아이였던 것 같다. 어른들 말 잘 듣고, 잘 웃고, 정서적으로 편안하고, 너그럽고, 동생도 잘 배려하고, 말도 부드럽게 하고, 친구들하고도 사이가 좋고,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자기 주장도 할 줄 알고, 리더십이 있어서 친구들한테 인정받고, 뭐든 앞장서서 잘 하고, 공부든 예체능이든 외국어든 빠지는 데가 없는 완벽한 아이를 원하고 있었고 그런 아이로 만드는 강력한 도구로 감정코칭을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부정적인 감정의 쓰임을 알고 보니 항상 긍정적인 아이로 만들고 싶었던 내 고정관념이 어쩌면 굉장히 위험한 생각일 수 있겠다는 깨달음이 왔다.
지금 이대로도 충분히 괜찮은 진짜 내 아이를 내 상상 속에만 있는 완벽하고 이상적인 어떤 아이로 바꾸려는 태도는 내 아이를 아주 부족하고 못된 아이로 만든다. 아이가 보이는 행동에만 초점을 맞춰 이래라, 저래라 지적하는 행동코칭은 아이의 존재 자체를 자꾸 부정해서 아이를 슬프고 화나게 만드는 양육 태도이다. 아이의 행동보다는 감정에 초점을 맞춰 공감해주는 감정코칭은 아이를 있는 그대로 존중해주고 사랑해주는 양육법이다. 감정코칭을 아이를 내가 원하는 아이로 만드는 도구로 사용하는 것은 아주 위험하다. 조벽 교수님은 이것은 감정코칭이 아닌 '감정코팅'이라고 하셨다
감정은 신의 섭리처럼 자연스러운 것이다. 슬플 때 울 수 있고, 기쁠 때 웃을 수 있어야 사람이다. 생명이 자라기 위해서는 햇볕도 필요하고 비바람도 필요하고 더운 날씨, 추운 날씨 모두 있는 그대로 쓸모가 있다. 아이 역시 바람직한 어른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햇볕같은 긍정적인 감정도 필요하고 비바람같은 부정적인 감정도 필요하다. 그래야 인생의 행복과 불행을 모두 이해하는 성숙한 어른으로 자랄 수 있다. 인생의 행복을 아는 사람은 타인의 행복을 질투없이 함께 기뻐해줄 수 있고, 인생의 불행을 아는 사람은 타인의 불행에 진심으로 함께 아파해줄 수 있다. 그래서 아이는 긍정적인 감정과 부정적인 감정을 모두 많이 느끼고 경험해보고 이해하며 자랄 수 있게 도움을 받아야 한다.
이 내용을 알고 나서도 실제로 아이가 화를 낼 때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면서 이해해주고 받아주기까지는 시간이 많이 필요했다. 하지만 일단 '감정에는 옳고 그른 것이 없다'라는 것과 '감정코칭은 아이를 내가 원하는 아이로 만들기 위한 도구가 아니다'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어떻게 해야할지 헤메고 있던 나의 육아에 있어서 바람직한 쪽으로 방향을 잡고 첫 발을 내딛는 결정적 지식이었다.
감정코칭 전문가 과정을 시작하고부터의 나의 여정은 내 머릿속에 있는 너무 완벽한 내 아이에 대한 환상을 버리고 진짜 내 아이가 누구인지를 찾아가는 시간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머릿속에 있는 너무 완벽한 엄마에 대한 모습 역시 버리는 것이 필요했다. 엄마가 아이에게 아주 중요한 존재인 것은 맞지만 엄마 한 명이 아이의 모든 인격과 인생 전체를 다 결정짓는 것은 아니다. 웃는 날도 있고 우는 날도 있고,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혼란스럽고, 난 왜 이렇게 모르는 게 많은지 자책하고 후회하는 모든 순간이 다 아이에게 나름의 자양분이라는 사실을 믿고 그다지 잘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는 불완전한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는 것이 필요했다. 너무 완벽한 엄마에 대한 환상 역시 버리고 부족한 채로도 행복한 진짜 나를 찾아가는 것. 이것은 어쩌면 진짜 내 아이를 찾아가는 길보다 더 어려운 길이었던 것 같다. 나는 감정코칭 전문가 과정이 끝나고 회복탄력성 과정도 공부하기 시작했다. 아이를 감정코칭 하기 위해서는 엄마의 에너지 관리가 꼭 필요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