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성에 편향되어 있는 뇌
아이들이 둘 다 십 대에 접어들면서 이제 내가 졸졸 따라다니면서 챙겨줘야 하는 시기는 지난 것 같다. 내가 챙겨줄 나이는 지났는데 바라보고 있으려니 부족한 부분만 자꾸 눈에 들어와 그냥 내버려 두기가 정말 힘들다. 어차피 내가 다 해 줄 수도 없는데 내버려 두자니 불안해서 자꾸 잔소리만 나온다. 하지만 아이들이 크니까 어릴 때보다도 더 잔소리를 듣기 싫어한다. 자기들은 다 컸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감정코칭에서는 아이의 단점보다는 장점을 바라봐 주라고 하지만 십 대 남자아이 두 명하고 같이 살아보면 장점은 정말 잘 안 보이고 단점만 눈에 들어온다. 그런데 이렇게 상대의 단점만 눈에 띄는 것에도 과학적인 이유가 있다고 한다.
연구 결과, 사람은 하루에 50,000개의 생각을 한다고 한다. 어떻게 그 숫자를 세었는지 모르겠지만 내 머릿속에 수없이 오가는 생각들의 가짓수를 헤아려 본 연구자가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또 우리 옛말에 ‘오만 가지 생각’이라고 했던 표현이 과학적으로도 맞다는 것도 재밌다. 그런데 이 50,000개의 생각 중에 70%가 부정적인 내용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부정적인 70%의 생각 중 절반은 그동안 했던 생각의 반복이라고 한다. 우리는 매일 어제도 그제도 했던 부정적인 생각들을 반복하느라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쓰고 있는 셈이다.
그 이유는 이렇다. 단기적으로는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것이 긍정적인 생각을 하는 것보다 생존에 유리하다. 풀숲이 흔들릴 때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일단 사나운 짐승이 있다고 생각하고 도망부터 가는 것이 생존에 유리하다. 나쁜 일이 일어날 거라는 걱정과 두려움은 나를 지켜주는 감정이다. 지난 일을 생각할 때도 좋은 일을 기억하기보다 안 좋은 일을 기억하는 것이 다음에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것을 방지해 준다. 그래서 우리는 지난 일에 대해서도 나쁜 일을 더 잘 기억하며 우울해하고 창피해하고, 앞으로 올 일에 대해서도 나쁘게 될 시나리오를 더 자세히 상상하면서 불안해하고 두려워한다.
어쩐지 우리 아이들도 내가 잘해준 것은 하나도 기억을 못 하더라. 어쩌다 한 번 야단치고 잔소리한 것은 내가 잊어버린 것까지 세세하게 기억하면서 내가 수천번 밥 해주고 재워주고 잘해준 것은 생각을 안 한다. 나도 부모님이 나에게 해 준 것은 별로 생각 안 나고 서운했던 기억만 오래 남는 것을 보면 우리 뇌가 부정성에 편향되어 있다는 말에 납득이 간다.
하지만 이런 부정적인 생각이 지나치면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생존에 해가 된다는 게 함정이다. 과거의 잘못을 곱씹다 보면 후회와 실망, 우울감으로 마음이 닳는다. 미래를 비관적으로 그리는 것은 걱정과 불안, 염려로 마음이 지친다. 부정적인 생각은 자동으로 떠오르고 계속 반복된다는 특징이 있기 때문에 가만히 있으면 머릿속은 금방 부정적인 생각으로 가득 차게 된다. 평상시에 쉬어야 할 때도 계속 걱정하고 불안해 하면 신체 건강에도 안 좋고 정신 건강에도 안 좋다. 생존을 위해 시작한 부정적인 생각이 생존에 해가 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엄마는 아이의 생존에 도움이 되라고 여러 좋은 말을 해주는 거지만 그게 지나치면 오히려 아이의 생존에 해가 될 수도 있다.
긍정심리학을 연구한 바바라 프레드릭슨이 쓴 책에는 긍정성이 부정성보다 3배 더 많아야 사고가 확장되고 창의적이 된다는 내용이 있다. 뿐만 아니라 회복탄력성이 길러져서 역경도 잘 이겨내고, 면역력이 좋아지는 등 긍정적인 감정의 좋은 효과는 정말 많다. 과학적인 연구 자료를 봐도 그렇고, 나의 경험을 돌아봐도 정말 아이를 키우는데 긍정성이 중요하고, 그러려면 내 잔소리를 확 줄여야 한다는 건 알겠는데 막상 내 눈에는 아이의 단점만 자꾸 보이니 그게 참 어렵다.
우리의 뇌뿐만 아니라 우리의 감각 기관도 부정성에 편향되어 있다고 한다. 시각, 청각, 미각, 촉각, 후각과 같이 오감을 느끼는 우리의 감각 기관도 좋은 감각보다는 나쁜 감각을 더 잘 느낀다는 말이다. 우리가 음식을 소화시키려면 위장이 있어야 하고 음식을 먹으면 위장이 작동을 하지만 우리는 평소에 위장의 감각을 잘 느끼며 살지는 않는다. 하지만 배가 아프거나 배가 고프면 비로소 불편감을 느끼면서 위장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게 된다. 이처럼 우리의 감각 기관은 뭔가 이상이 생겼을 때 즉, 부정적인 때에 더 예민하게 반응한다.
아이의 장점을 보라지만 아무 문제없는 평범한 상태는 나의 주의를 끌지 못한다. 하지만 아이가 뭔가 실수하거나 잘못했을 때는 내 주의가 확 집중이 된다. 그래서 아이의 단점이 엄청 크게 느껴지는 것이다. 부정성에 편향되어 있는 내 감각 기관은 아이의 단점을 잘 잡아내고 부정성에 편향되어 있는 내 뇌는 이 문제를 반복해서 확장시키면서 '저거 저러다 나중에 어떻게 살겠냐'하는 쪽으로 부정성을 키워 나간다. 내가 아이의 장점보다는 단점을 더 잘 찾고 끊임없이 걱정하면서 잔소리하고 싶은데에 이런 과학적인 원리가 숨어 있었다니 나도 이해가 되고 아이에 대해서도 조금 덜 걱정하게 되는 것 같다.
아이의 장점을 보라는 말은 아이에게 없는 장점을 억지로 찾으라는 말이 아니었다. 우리는 다 위장을 가지고 있지만 평소에 나에게 위장이 있다는 사실을 잘 못 느끼는 것처럼 아이에게도 이미 많은 장점이 있지만 내가 그것을 주목해 보고 있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으라는 말이었다.
사실 우리는 억지로 세상을 긍정적으로 볼 필요가 없다. 세상은 이미 수많은 기적과 고마운 인연으로 가득 차 있지만 나에게 그것을 보는 눈이 없을 뿐이다. 우리가 행복해지기 위해 필요한 것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시각을 갖는 것이다. 아이는 단점도 있지만 장점도 많은 평범한 아이다. 내가 걱정하는 아이의 단점은 어느 상황에서는 장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고 마찬가지로 내가 좋다고 생각하는 장점이 늘 언제나 장점인 것만도 아니다. 내가 보기에는 아이가 좀 더 부지런하게 살아야 할 것 같고 미래를 더 단단하게 대비해야 될 것 같지만 사실 사람은 쉬어갈 줄도 알아야 하고 어떻게 하는 게 정말 미래를 잘 대비하는 것인지 정답은 없다.
아이들한테 이런저런 걱정스러운 면은 있지만 잘하는 것도 있으니까 그럭저럭 잘 살아갈 거다. 쓸데없는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질 때는 나의 뇌와 감각기관이 심각하게 부정성으로 편향되어 있다는 사실을 떠올려 본다. 그러면 또 내 뇌가 과장해서 미래를 걱정하고 있구나, 내 뇌가 과도하게 과거를 곱씹고 있구나 하고 알아차릴 수 있다. 그럴 때일수록 지금 이 순간 내가 이미 누리고 있는 고마운 일들을 떠올려야 한다. 과거와 미래의 부정적인 일에 초점을 맞추고 불편한 것만 알아차리는 것은 생존에 유리하기 위해서인데 그런 부정성에 빠져 버리면 오히려 생존에 불리해진다는 역설을 잘 깨우쳐야 한다. 아이들 덕분에 이런 뇌과학과 철학을 넘나드는 통섭적인 사고를 다 해보는 것 같다. 아이들에게 늘 고마운 마음 잊지 말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