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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비 Feb 15. 2024

그럼에도 여기에서

만화작가 실키의 카툰 에세이

연휴에 글밥이 많은 책보다는 그림이 있는 책을 읽고 싶어서 <그럼에도 여기에서>라는 책을 선택했다. 

<그럼에도 여기에서>는 ‘실키두들’이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는 작가가 만화의 도시 프랑스 앙굴렘에서 3년 동안 그린 단편 만화 모음집이다. 


첫 번째 스토리에는 인도 유학생 시절 고등학교 때 겪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나도 해외 교민으로 살고 있기 때문에 낯선 곳에서 이방인으로 적응하는 게 얼마나 외롭고 힘든 일인지 안다. 친구가 중요한 고등학교 나이 때는 그런 외로움이 아마 더 크게 느껴졌을 거다. 인도에서 외국인 친구들하고는 말이 안 통해서 어렵다가 시간이 갈수록 한국의 친구들하고도 떨어져 지냈던 시간만큼 거리감을 느끼면서 소통은 말로만 하는 게 아님을 섬세하게 잘 표현하고 있었다. 첫 번째 에피소드부터 시작해서 14개의 단편 만화를 단숨에 읽어 나갔다. 


만나는 에피소드마다 마음에 많이 와닿았다. 유럽에서 아시아계 여성으로 살아가면서 느꼈던 성차별, 인종차별을 담은 에피소드를 보면서는 동남아에서 사는 나는 상대적으로 그런 차별로부터 자유롭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유럽은 선진국이라 여기보다 살기 좋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도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삼 한류 열풍을 만들어 준 여러 사람들이 고맙다. 해외에서 살아보면 국가 브랜드라는 게 무시 못한다는 생각이 든다. 또, 작가가 프랑스에서 겪은 코로나 락다운에 관한 스토리는 내가 여기 베트남에서 경험했던 락다운도 떠오르면서 코로나도 지역마다 개인마다 느끼는 감정이 조금씩 달랐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그 밖에도 몸과 마음이 아픈 날 느끼는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감정을 담은 단편이나 가족 안에서의 갈등을 담은 에피소드도 많이 공감되었다. 앞쪽에는 실제 작가가 겪은 자전적인 스토리가 많았고 뒷부분에서는 시사성을 담았거나 SF적인 스토리, 허구적인 스릴러물 등 스토리가 다양해서 지루할 새 없이 페이지가 넘어갔다. 개인적으로 젠더 이슈를 다룬 에피소드가 꽤 강렬하게 기억에 남는다. 묵직한 이야기도 있고 중간중간에 요리 레시피 소개 같은 가벼운 내용도 섞여 있어서 흑백으로 채워진 책이지만 다채로운 느낌이다.


사람의 감정을 표현하고 스토리를 풀어내는 데 있어서 만화라는 매체가 가진 독특한 매력이 있다. 프랑스 앙굴렘에서 활동해서 그런지 앙굴렘 만화제에서 최우수상을 탔던 아트 슈피겔만의 <쥐>도 많이 연상된다. 그림체가 아주 비슷한 삽화도 있고 주인공을 사람이 아닌 동물로 표현했다는 점 때문에 그래픽노블의 명저 <쥐>가 떠올랐던 것 같다. 에피소드마다 캐릭터 동물이 다양하게 바뀌었는데 아마 캐릭터를 통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었을 거다. 주로 작가의 현재 모습은 두루미같이 부리가 긴 새로 표현하는 듯했고, 작은 새는 어린 시절의 작가인 듯싶다. 개구리, 고슴도치, 원숭이 등 작가가 선택한 다른 동물 캐릭터들의 의미도 궁금하다.


책머리에는 작가가 인도에서 8년, 프랑스에서 5년을 살았다고 나온다. 나는 몰랐지만 SNS에 많은 팬을 보유하고 있는 인기 작가이고 프랑스와 대만에 번역본도 출판된 꽤 유명한 작가인 것 같다. 작가가 쓴 다른 책들도 읽어보고 싶고 특히 가장 최근에 쓴 <김치바게트>는 프랑스에서 아시아계 여성으로 살아가는 작가가 직접 느낀 프랑스와 한국 문화의 차이에 대해 다루고 있다니 관심이 간다. 실키 작가의 성향상 아주 직설적이면서도 위트를 섞어 프랑스 문화를 재미있고도 섬세하게 소개를 해줄 것 같기 때문이다. 솔직하고 따뜻한 에피소드들을 읽고 나니 작가와 꽤 친해진 느낌이다. 향후 작가의 활동에도 관심이 가고 진심의 응원을 보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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