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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비 Mar 10. 2024

공정하다는 착각

능력주의의 실상을 고발하고 불공정의 문제를 분석하다

<정의란 무엇인가>로 유명한 마이클 샌델 교수가 2020년, 8년만에 신작을 냈다. 이 책은 ‘노력하면 누구나 자신의 능력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능력주의가 의외로 민주주의와 공동선을 위협한다는 내용이다. 나도 그 동안 막연히 혈통이나 인종, 성별이 기준이 되어 사회 계층이 나눠지는 것은 큰 불평등이지만 개인의 능력에 따라 노력하면 성공하는 사회는 그래도 더 평등하고 진보적인 사회라고 믿어왔다. 그런데 이 책을 읽어보니 능력주의에 내가 생각지 못했던 의외의 폐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신선했다.


샌델 교수가 능력주의에 의문을 갖게 된 계기는 영국의 ‘브렉시트’와 미국의 ‘트럼프 당선’이었다. 브렉시트란 영국이 유럽 연합에서 탈퇴해 독자적인 길을 가겠다는 선언인데 깊이 생각해보면 영국에게 불리한 어리석은 결정임에도 불구하고 영국 사람들은 투표를 통해 브렉시트를 결정했다. 트럼프의 당선도 노동계급의 보건 서비스를 삭감하고 부자들의 세금을 줄여주는 세제 개혁안을 내 놓는 트럼프가 막상 노동계급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 대통령 자리에까지 올라갔으니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샌델 교수는 이 두 가지 사건이 일어난 이유를 사람들의 성공에 대한 태도그에 따른 감정에서 찾았다. 누구나 노력하면 이룰 수 있다는 능력주의가 승자들에게 오만함을, 패자들에게는 굴욕감을 가져다 주었다는 것이다. 굴욕감을 느낀 패자들은 오만한 승자들에게 분노하게 되었고 그러한 분노가 논리적으로는 이해가 안되는 어리석은 선택을 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납득이 되는 설명이다. 솔직히 어릴 때는 똑똑해서 공부잘하고 좋은 대학 가면 다 교양있고 훌륭한 사람인 줄 알았다. 학창 시절 내내 그런 친구들이 인정받고 칭찬받고 좋은 결과를 얻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이 더 많은 돈을 벌고 더 높은 지위에 오르는 것은 나름 정당하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세상을 살아보니 꼭 학력이 높다고 교양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학교에서 시험 문제 푸는 능력이 특별히 똑똑함을 다 대변해주는 것도 아니었다. 사회적으로 낮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 중에도 충분히 위트있고 지적이고 훌륭한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계층, 인종, 성별과 같은 조건으로 편견을 갖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는데에는 대다수가 동의를 하면서도 학력이 낮은 사람에 대해서는 편견을 가질만 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학력은 개인의 능력으로 결정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당사자조차도 만약 어릴 때 공부를 많이 안 해서 더 높은 학력을 쌓치 못했다면 그것은 자신의 탓이라고 쉽게 스스로를 폄하한다. 우리가 능력주의에 너무 물들어 있는 까닭이다. 

샌델 교수는 해법으로 기회의 평등이 아닌 조건의 평등을 언급했다. 우리는 기회의 평등을 편견, 인종주의, 불평등과 같은 부정의에 대한 해법이라고 믿어왔지만 사실 이것은 단지 이러한 부정의를 약간 교정하는데 필요한 도덕일 뿐이었다고 지적한다. 기회의 평등보다는 조건의 평등이 중요하다. 조건의 평등이란 돈이나 지위가 없어도 고상하고 존엄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보장해주는 평등으로 일례로 공공도서관 같은 공간을  꼽았다. 공공도서관은 어떤 조건에 있는 사람인지 판단하지 않고 누구나 들어와서 책을 읽을 수 있고 공공서비스를 즐길 수 있다. 이런 조건의 평등이 기회의 평등보다 더 중요하다는 게 샌델 교수의 생각이다. 


또한 자유 시장 경쟁 체제에서 능력에 따라 보수와 사회계급이 정해지는데 쉽게 굴복하지 말고 공동체 의식, 연대 주의와 같은 시민의식을 키우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노동의 가치를 시장에서 정하는 보수로만 정하지 말고 모든 직업에 대해 존중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교육을 덜 받았고 보수가 적고 사회계급이 낮아도 공동체에 기여하고 있다면 당연히 인정받고 존엄한 삶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샌델 교수는 이러한 의식이 키워지는 방편으로 대학 합격을 제비 뽑기로 결정하면 어떻겠느냐는 도발적인 제안도 한다. 그렇게 하면 성공한 사람도 성공의 이유에는 행운도 있었다는 것을 생각해 겸손해지고 실패한 사람도 실패의 이유에 역시 운이 작용했다는 점을 생각해 덜 자책한다는 것이다. 마이클 샌델 교수의 진단과 해결 방안이 참신하다는 생각이 든다. 샌델 교수 말대로 인생은 어차피 랜덤이던데 이러한 사실을 그냥 받아들이는 것이 어쩌면 더 공정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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