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이 요구하는 삶’에서 ‘내가 원하는 삶’으로
모처럼 신간이 아닌 책을 읽었다. <수치심 권하는 사회>라는 제목으로 2019년도에 번역된 책인데 원서는 2007년에 출간된 책이다. 어디에선가 이 책에 대한 호평을 들어본 적 있었는데 마침 한인회도서실에 비치되어 있는 걸 발견하고 반갑게 책을 들었다. 이 책은 처음 출간된 이후 13년째 미국 아마존 심리분야에서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키고 있다고 한다.
이 책의 저자 브레네 브라운은 당당하고 자신 있어 보이는 미국 백인 여성으로 휴스턴 대학 사회복지대학원의 교수이자 연구원이고 작가이다. 저명인사들의 강연 사이트인 테드(TED)에서 수천만명이 조회한 인기 강연으로 명성을 날리고 있기도 하고 책도 14권이나 썼다. 이렇게 수치심하고는 상관없어 보이는 조건의 저자가 어떻게 해서 수치심이라는 감정에 대해 이렇게 깊이 연구하게 되었을까? 저자는 책의 말머리에 자신이 수치심에 관해 연구하게 된 이유는 수치심을 자극해서는 자신도, 타인도 변화시킬 수 없기 때문이라고 밝힌다.
나도 이 말에 깊이 공감한다. 저자는 수치심과 죄책감을 구분하고 있다. 죄책감은 내 행동에 대한 후회와 반성이기 때문에 내 잘못된 행동을 변화시킬 강력한 동기가 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수치심은 내 존재에 결함이 있다는 느낌이기 때문에 가리거나 숨기기 급급하고 낙오되거나 배제될 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오히려 자기 파괴적이거나 타인을 잔인하게 공격할 수 있는 감정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이렇게 경계가 애매한 감정에 대한 용어를 명료하게 구분하고 정의내리는 한 편 수많은 사람들과 인터뷰하고 대화를 나눈 사례를 적절하게 삽입해서 자칫 딱딱한 학술보고서가 될 법한 책에 스토리텔링의 깊은 생명감을 불어넣었다. 저자가 왜 명강연가이자 인기 많은 저자가 되었는지 이해가 된다.
저자는 또한, 수치심에 관해서는 전문가와 일반인의 구분이 무의미하다고 밝히며 전문가도 내담자들을 괴롭히는 수치심에 대해 그들을 도와주겠다며 여유를 부릴 처지가 아니라고 말한다. 수치심은 인류 보편적인 감정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자신 역시 수치심을 느껴봤던 여러 경험들을 밝히며 사회는 여성에게 매우 상반된 각종 기대와 암시에 준다고 말한다. 이를테면 날씬하고 예뻐야 하지만 외모에 너무 집착하는 태도에 대해서는 경멸한다. 남자들에게 인기가 많아야 하지만 남자들에게 노골적으로 어필하는 건 천박하다. 저자는 그것이 너무 복잡하게 얽혀 있고 한번 걸려들면 빠져나가기 어렵다는 의미에서 ‘수치심 거미줄’이라고 명명했다. 금발의 서양 여자, 많은 학위와 명성을 다 가진 저자 역시 수많은 사회적 기대와 압력으로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뭔가 위로가 되고 저자와 동질감이 느껴졌다.
책은 대부분 여성들이 느끼는 수치심 다루고 있다 하지만 책의 말미에 남성들 역시 사회적 기대와 압력으로부터 고통받고 있으며 남성들도 당연히 수치심에서 벗어나 ‘진짜 나’로 살아가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이렇게 남녀 모두가 수치심에서 벗어나려면 가정에서부터 수치심을 자극하기보다 유대감을 키워가는 방식으로 육아가 이루어져야 한다. 나도 여자이자 엄마이기 때문에 저자가 말하는 모든 내용에 깊이 공감했고, 저자의 말대로 우리 모두가 ‘사회가 요구하는 삶’에서 벗어나 ‘내가 원하는 삶’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오래 전에 출간한 책이지만 여전히 울림을 주는 책, 브레네 브라운의 “수치심 권하는 사회”의 일독을 권한다.
https://www.ted.com/talks/brene_brown_listening_to_sha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