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크는 아이들을 위하여
최근 HD행복연구소의 최성애 박사님께서는 아동학대에 관한 연수를 여러 차례 진행해 주고 계시다. 아무래도 코로나 상황이 일상이 되다 보니 코로나 블루로 인해 마음이 힘든 부모가 아이와 집에 장시간 붙어 있게 되면서 약자인 아이들을 학대하는 경우가 많아져서 그런 것 같다. 최성애 박사님의 강의를 듣고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겉으로 보기에 아이를 방치하거나 학대하는 가해자 부모들도 속을 알고 보면 더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거나 여러 이유로 깊은 마음에 상처를 입은 또 다른 피해자이기도 하다는 사실이다.
물론 어떤 사연이 있다 하더라도 아이를 학대하는 행동은 합리화될 수 없다. 자신의 행동에 대한 합당한 책임은 져야 하겠지만 어떤 특정인을 무조건적인 악인이라고 낙인찍고 분노와 복수심으로 처벌에만 매진하는 것은 일차원적인 반응이라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의 잘못에 그저 감정적으로 화가 나서 혼을 내주겠다는 방식은 사실 아이를 학대하는 가해 부모의 모습과 다를 바가 없다. 최근 ‘정인이 사건’을 보고 그 사건에 대해 분노에 가득 차 험한 말로 도배를 하는 댓글들을 읽으며 여러 마음이 든다.
이 세상은 단순히 겉으로 보이는 한 두 가지의 모습만 보고 선악을 판단하거나 피해자와 가해자를 쉽게 구분할 수 있을 만큼 간단하지가 않다. 아이들을 키우다 보면 내 아이가 다른 아이에게 피해를 주는 경우도 겪게 되고 반대로 피해를 입는 경우도 겪게 된다. 우리 아이들이 어릴 때도 그런 일이 있었다. 동네에서 친하게 지내는 언니가 있었는데 그 언니 아들이 우리 아이들하고 많이 어울리다 보니 서로 싸우기도 하고 삐지기도 하면서 울며 불며 매일 같이 놀았다. 유치원에서 초등 저학년 남자아이 셋이 어울려 놀다 보면 조용히 지나가는 날이 없는 게 정상이다. 아무래도 언니네 아들이 우리 아이들보다 나이도 많고 덩치도 크다 보니 우리 아이들이 피해자처럼 되는 날이 많았다.
언니는 미안해했고 나는 난감했다. 언니가 아들에게 동생들을 때리라고 가르치지는 않았기 때문에 애들은 다 그렇게 싸우며 크는 거라고 이해하면서 넘어가기는 했지만 마음은 편치 않은 날도 많았다. 언니 아들도 우리 아이들도 언젠가는 자라서 좀 더 어른스럽게 구는 날도 오겠지 믿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는 사이 언니는 약간 떨어진 동네로 이사를 가게 되고 전보다 만나는 횟수가 줄어들면서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매일 만나 놀던 사이에서 가끔 만나 노는 사이가 되었다. 그러다가 하노이에 감정코칭 연수가 열리게 되고 언니도, 나도 같이 감정코칭을 공부했다.
감정코칭 연수가 다 끝나고 오랜만에 만난 언니가 나에게 이번 방학 때 아이와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 줬다. 감정코칭을 배우고 나서 배운 내용을 실천해 보려고 아이가 하는 말을 경청해 듣고 무슨 일이 있으면 아이의 행동보다는 마음을 먼저 보려고 부단히 노력을 했다고 한다. 언니 어린 시절을 더듬어보면서 엄마도 그런 적 있었다고 맞장구도 많이 쳐주고 아이를 마음을 들어주려고 노력하다 보니 몰랐던 아이의 속마음도 많이 알게 되고 아이하고 정서적으로 많이 가까워졌다고 한다. 그러다가 어느 날 문득 옛날이야기가 나오면서 아이가 엄마는 나보다 이모 아이들을 더 사랑하지 않느냐면서 통곡을 하더라는 거다.
나도 놀랐고 언니는 아마 더 놀랐을 거다. 언니가 어떻게 엄마가 너를 두고 다른 집 아이를 더 사랑하겠냐, 엄마는 언제나 너를 최고 사랑하지, 다른 집 아이는 남이니까 이쁘다, 귀엽다 말만 그러는 거지 엄마 마음은 늘 네가 일 번이고 너를 제일 많이 사랑한다고 반복해서 많이 얘기를 해줬다고 한다. 아이가 옛날 일 다 들춰가며 자기가 얼마나 많이 서러웠는지, 얼마나 많이 슬펐는지 털어놓으니 언니는 미안하다고 손이 발이 되도록 빌 수밖에 없었다는 거다.
동생을 해코지하는 아이 마음속에 그런 억하심정이 있었는지 나도 정말 몰랐다. 나나 언니나 아이의 마음을 보는 눈이 있는 어른이었다면 그 마음을 좀 더 빨리 알아주고 아이들 사이를 잘 조율해 줄 수 있었을 텐데 그때는 그러지 못했다는 게 안타깝다. 언니도, 나도 몰랐기 때문에 매일 아이한테 동생 때리지 마라, 형답게 굴어라, 잔소리만 늘어놨었다. 그때는 그게 행동코칭이고 행동코칭은 엄마와 아이의 관계를 멀어지게 만드는 양육법이라는 사실을 몰랐다.
집에서 막내로 태어났고 한국에서 자랄 때는 동네에서도 제일 어려 귀여움을 많이 받았다는 언니 아들은 베트남으로 이사 오고 정말 힘들었던 것 같다. 해외 이주라는 게 어른한테도 어려운 일이지만 한창 자라는 아이한테는 정말 큰 도전이었을 거다. 아이 입장에서 공기며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을 거고 그것만으로도 힘들었을 텐데 하필이면 아랫집에 동생들이 둘이나 있는 집하고 친해져서 갑자기 형노릇을 해야 했으니 그 변화가 아이에게 얼마나 벅찼을지 그때는 정말 아이 마음을 몰랐다. 덩치가 하도 좋고 키도 컸기 때문에 실제 나이보다 더 큰 아이로 보인다는 게 그 아이 입장에서는 불리한 부분이었다.
나는 터울이 적게 나는 형제를 키우다 보니 아이들 사이에서 어느 쪽 아이에게도 서러움을 주지 않으려고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도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었다. 그런데 어른의 관심과 사랑을 빼앗긴다는 건 꼭 한 집에서 자라는 형제 사이가 아니어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란 건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아이가 그렇게 맺힌 게 있었다니 다 지난 일이지만 나도 아이 마음을 너무 몰랐다는 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과를 하니 언니는 엄마인 내가 잘했어야 했는데 너무 부족했다며 서로 옛날을 돌아보았다.
좀 늦은 감이 있었지만 이제라도 아이의 속마음을 알게 되고 그랬구나 이해가 되니 새삼 그 아이도 안쓰럽고 우리 아이들도 이유 없는 미움을 좀 받았겠구나 싶어서 짠하면서도 한편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 당시 아이들이 무엇 때문에 그렇게 행동했는지 이제라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서로가 서로의 내면세계를 이해하는 일은 사건이 다 지나간 뒤에도 서로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의미 있는 일이다.
세상 일이 다 그런 것 같다. 겉으로 보기에 가해를 한 사람이 나쁜 사람이고 피해를 입은 사람은 불쌍한 사람인 것 같지만 내면세계에서는 가해자가 사실 이미 무엇 때문에 심사가 뒤틀린 어쩌면 더 불쌍한 피해자인지도 모른다. 상처 입은 마음으로 자기를 방어할 목적으로 혹은 자기의 불편한 마음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하는 행동들이 자신을 심성 고약한 가해자로 보이게 만들어 이중 피해를 입는다. 주변에서 누구 한 사람만이라도 그 마음을 알아주고 꼬인 심사를 풀어주면 누구든 더 착한 아이로 자랄 수 있는데 그럴 때 무조건 야단만 치면 정말 삐뚤어지는 게 사람인 것 같다. 단지 아이들 사례지만 이런 일들은 더 큰 아이들의 학교 폭력에서도 일어나는 일이고 어른들 세계의 갑질 사건에서도 종종 볼 수 있는 심리구조이다.
어떤 사건이든 겉으로 보이는 가해자의 삐뚤어진 행동만 보고 판단하기보다 그 안에 숨겨진 상처 입은 마음을 알아줄 때 사건의 실타래를 풀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물론 그 행동에 대한 책임은 져야 한다. 바람직하지 못한 행동이 책임지지 못할 만큼 커지기 전에 주변에 누군가는 그 상처 입은 마음을 알아봐 주는 것이 사건이 나쁜 방향으로 커지지 않도록 예방하는 가장 효과적인 길이다. 일이 다 벌어지고 나서 응분의 대가를 치르는 형식의 처벌을 가지고는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 도움이 안 되는 것 같다. 멀리 돌아가는 것처럼 보여도 결국 서로의 마음을 알아주는 방법이 제일 빠른 길이고 어쩌면 유일한 해결책이다.
어쨌든 지금은 우리 아이들이나 언니네 아들이나 다 십 대가 되었다. 여전히 가끔 만나면 형제처럼 잘 어울려 지낸다. 어린 시절 추억을 공유하고 있는 이웃사촌이 있다는 건 큰 복이다. 언니나 나나 미숙했지만 그래도 그 당시 너무 단정적으로 아이들을 대하지 않았던 것은 잘했던 것 같다. 감정코칭을 더 일찍 만났더라면 아이들이 더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있지만 지금이라도 나의 이런 경험이 다른 어린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들에게 도움이 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