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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꽃psy Jan 08. 2022

남편에게 외박을 주문하는 아내

가끔 남편에게 외박을 주문한다.

남편은 다고 하면서도 한 번도 나의 주문을 외면한 적은 없다. 싫다고 하는 건 뻔한 거짓말이다. 그 뻔한 거짓말에 속는 척하는 아내  싫어도 그냥 하루만 외박하고 오라 한번 더 간곡한 척 이야기한다.

 

아이들의 친구들이 놀러 와서 종종 자고 가는 경우가 있다. 아들의 친구들은 3~4명의 엄마가 거의 품앗이하다시피 아들들을 한 달에 한번 정도 돌보게 되는 상황이 된다. 돌본다기 보더는 밥과 간식을 챙겨주고 한두 번 "게임 그만하고 나가  놀아~!" 정도 이야기를 하면 된다.  그 엄마들과는 친한 사이는 아니지만 그냥 서로 믿는 마음이 있는지라 편하게 아이들을 보내고, 또 놀러 와도 나도 편하게 대해준다.


딸아이는 전학 오기 전 학교의 몇몇 각별했던 친구들을 가끔 만나고, 더 아주 가끔은 친구들과 함께 자기를 원한다. 다행스럽게 딸아이 친구 엄마들도 잘모르지만 믿고 우리 집에 보내 주시기에 오면 아이들끼리 편하게 놀 수 있도록 주고 나는 밥만 챙겨준다. 간식도 저희끼리 알아서 해 먹고 밤새 수다 떠는 소리가 들리다 어느새 잠을 자는 것 같다.


아이 친구들이 우리 집에 오기로 하는 날이면 미리 남편에게 이야기한다.

"오늘 00형 집에서 자고 와~!"

"싫어. 나 형 집에서 자는 건 불편해."

말로는 싫다고 하지만, 그 형의 집이 유부남들의 아지트인 것을 알고 있다. 00형은 솔로인지라 선후배들이 자주 모여 술자리를 가지며 노는 곳이고, 우리 집과 가깝기에 난 가끔 김치를 챙겨주고 음식을 보내주기도 한다. 그 집에서 유부남들이 모여 술을 마시고 넷플릭스를 보며  또 다른 놀이들을 하는 것을 다 알고 있다.


어제도 딸아이 친구들 2명이 놀러 와 자고 간다고 다.

그 시절은 친구들과 함께 자는 것만으로도 너무 즐겁고 행복한 추억이 될 수 있음을 알기에 친구들과 놀고 싶다고 말하면 기꺼이 허락을 해 주곤 한다. 아빠가 계시면 아무래도 아이들이 더 불편할 수 있어 퇴근 전에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00형네서 자고 와 달라고 미안해하며 이야기를 하면, 남편은 내심 좋으면서도 마지못해 알겠다고 하는 것이 수화기 넘어에서도 표정이 보인다.


중학교 시절, 시골에 살 때 엄마는 나의 외박을 잘 허락하지 않으셨다. 친구들과 놀다가 혼자 집으로 오는 게 너무 아쉬웠다. 아주 가끔 허락을 받기도 했는데, 그러면 허락을 받기까지 꽤나 오랜 밑 작업을 해야 했다. 하지만 엄마는 친구들이 우리 집에 와서 자는 것은 쉽게 허락해 주셔서 친한 친구 몇몇과 사랑방에서 수다 떨고 깔깔거리고 라디오를 듣고, 사진첩을 들춰보며 관심 가는 남자아이들 이야기도 했던 그때가 아득하면서도 즐거운 추억이 되었다.


딸과 친구들은 모여 각자 좋아하는 유튜브를 보거나 함께 게임을 하거나, 보드게임을 잠깐 하고 또 각자 휴대폰을 하는 것 같다. 그리고 또 뭐가 재미있는지 깔깔 거리는 소리가 나다가 조용해진다. 나는 무심한 척하지만 귀는 아이방에   쏠려 다. 


집이 아닌 곳에서 잠을 자는 것은 불편함도 있지만 때로는 일상에서 벗어난 기분이 들기에 설레기도 하고 즐겁기도 하다. 아이들 친구들이 우리 집에 와서 놀고 자고 가는 기억이 좋은 기억으로 남았으면 좋겠다. 내가 친구들과 밤새 이야기하고 놀던 기억이 소중한 추억이 된 것처럼...

그리고 남편에게도 이런 이벤트가 자유의 시간이 되길 바라며 지금처럼 외박을 주문할 것이다.

출처: 핀터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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