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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꽃psy Jan 04. 2022

딸아이의 교복을 맞추며...

교복에 대한 기억을 꺼내보다

난 중학교, 고등학교 교복세대이다.

어른들은 말했다. 교복 입을 때가 제일 좋은 때라고, 교복 입은 모습이 제일 쁜 때라고.. 하지만 나는 교복을 입던 그때나 어른이 된 지금이나 그 말에 동의하지않는다.


인생에서 제일 좋은 때는 사람마다 다른 것이고, 교복 입은 나의 모습도 제일 예쁘지 않았다. 중학교 때는 좋은 기억이  있지교복 입은 과거 고등학교 시절 사진은 최악 흑역사에 가깝다.

나의 00 여고 교복은 상하의 모두 회색이었다. 교하는 내게 언니는 자주

"스님~ 학교 가십니까~?"

하며 놀려대곤 했다.  교복이 싫었다. 교복이 싫었던 이유는 비구니 같아서도 니고 예쁘지 않아서도 니다. 나의 교복은 결정적으로 내 몸에 너무너무 컸다.




난 시골중학교에서 청주 시내로 유학 온 촌뜨기였다. 시내 대부분의 아이들은 '다리가 길어보는 학생복'같은 곳에서 교복을 맞추었다. 우리 엄마는 그런 메이커 교복집이 아닌 동향인이 청주에 나오셔서 운영하던 버스 정류장 앞에 위치한 ○○라사에서 나의 교복을 맞춰주었고, 혹시라도 나의 키 더 크길 기대하셨던 건지 사장님에게 내 몸보다 큰 치수로 만들어 달라고 "특별 주문"을 했다.


만들어진 교복을 입어보곤 난 우울해졌다. 가뜩이나 조그마한 나는 마치 어른의 옷을 얻어 입은 아이 꼴 같았다. 사장님은 내가 20센티쯤은 더 클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셨까?  재킷은 어깨가 너무 커서 얼굴은 더 작아 보였고, 플레어 치마는 너무 크고 길어마치 월남치마 같았다. 게다가 교복의 색상도 다른 친구들의 것과 확연히 달랐다. 당시의 나는 엄마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커다란 교복을 입고 학교에 다녔다.


그나마 치마는 위를 동동 걷어 길이라도 짧게 했음에도 큰 옷을 입었음한눈에 알 수 있었다. 나도 모르게 나의 눈길은 다른 애들의 교복에 자주 가게 되었다. 어느 날 어떤 아이가 내게 와서 말했다.

"소영아, 니 교복이 우리 학교에서 제일 큰 거 같아"

....나만 그 비밀을 알고 있는 줄 알았더니, 다들 내 교복을 보고 우스꽝스럽다고 생각했구나 싶어 뭔가 슬퍼졌다.


주말, 난 교복을 들고 세탁소로 갔다.

치마도 엄청 줄였고, 재킷도 조끼도 다 줄였다. 의 새로 만든 것이나 다름없었다. 블라우스도 헐렁하게 컸으나 그건 수선보다 새로 사는게 나았다. 그래서 교복 블라우스 대신 색 남방을 입었다. 색상이 더 진한 것은 어떨 수 없었으나 그나마 꼭 맞게 입으니 나아졌다. 친구들은 왜 진작에 줄여 입지 않았냐고 친하지 않았던 친구마저 내게 다가와 한마디 하고 지나갔다. 친구들은 커다란 교복을 입은 내가 불쌍해 보였다고 말했다.




그래서인가 보다. 성인이 되어서도 난 커다란 옷을 사 입지 않았다. 어깨도 꼭 맞고 허리선도 타이트한 옷을 주로 입었다. 최근엔 오버핏이 유행했던거 같은데 난 오버핏에는 눈길도 관심도 없었다. 불편함을 감수하더라도 헐렁한 옷보다 딱 맞는 옷을 찾았다.  얼마 전 옷에 관한 글을 쓰면서는 이 기억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나 교복집에 와서 가지런한 교복들을 보니 우스꽝스럽게 커다란 교복을 입었던 초라한 내 모습이 떠오른다.


https://brunch.co.kr/@swamee/84


딸아이의 교복은 딱 맞는 것으로 했다. 요즘 아이들은 커다란  교복을 입지 않는다. 그나마 1학년은 적당히 맞는 옷을 입고 학년이 높아갈수록 키가 크는 것과 별개로 아주 불편하게 더 작은 교복으로 만들어 입는 것을 많이 보았다. 아서 허벅지가 어쩌고저쩌고 그런 잔소리는 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추운 겨울날 스타킹도 신지 않은 채 맨다리로 다니는 아이들을 보면 안쓰러운 마음은 든다.


나에게 교복은 여전히 별로다. 예전 내가 입을 때보다 디자인은 훨씬 이쁘다. 하지만 돌아서면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편하지도 않고 세탁도, 관리도 버거운 교복을 입혀야 하는지, 차라리 예쁜 체육복을 교복으로 하는 게 더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자켓과 치마, 바지 정장 세트도 입지만 다행스럽게 아이의 학교가 올해부터 블라우스도 없고 후드와 간단한 생활복도 자주 입어도 된다고 한다.교복에 블라우스가 없는 것은 너무 감사하고 다행이다.




바쁜 와중에 엄마는 매번 블라우스를 손세탁하고 말려서 다림질을 해 주었다. 고등학교 때는 비록 커다란 교복으로 나를 우울하게 만들었지만 엄마는 늘 반듯하고 날 선 다림질을 해 주셨다. 내가 홀로 세탁소에 가서 교복을 줄여왔을 때야 비로소 엄마는 교복이 지나치게 커서 내가 많이 속상해했다는 것을 아주셨다. 엄마는 예쁜 메이커 교복을 사주지 않아서 미안하다고 하셨다. 내게 교복에 대한 기억은 추억이 되지가  않는다. 커다랗고 초라한 옷은 외모에 민감했던 사춘기에 내 자존감마저도 약해지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였을까? 꽤나 보수적인 엄마는 내가 대학생이 되고 성인이 되었을 때, 핫팬츠를 입어도, 배꼽티를 입어도, 민소매 옷을 입어도, 다 찢어진 청지를 입어도 분명히 눈으로는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모습이으나 내가 입는 옷에 잔소리를 하지 않으셨다. 언니에게 하던 잔소리나 간섭이 내게는 없었다. 분명 우울하고 속상했던 교복의 기억 덕분이리라.


딸아이의 교복을 맞추며 나의 여고시절 헐렁하고 초라한 교복 입은 내 모습이 떠올랐다. 아이들이  교복을 입고 좋은 추억을 만들기를 기도한다. 그 옛날 어른들이 말했던 좋은 때와 예쁠 때는 교복을 입고 행복하고 예쁜 추억을 많이 만들라는 의미였 것이다.

출처: 핀터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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