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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가락이 안 닮았다

중요한 것은 발가락이 아닌 부부의 사랑이다

by 마음꽃psy

중학교 때 김동인의 소설 [발가락이 닮았다]를 보며 어린 마음에 마음이 참 복잡했다. 문란한 과거를 가진 남자 M이 결혼을 하며 아내가 불륜을 통해 낳은 아이를 보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합리화를 통해 발가락이 닮은 것을 찾아내는 모습이 안쓰러우면서도 마음이 이상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아내의 불륜을 이야기하기엔 자신의 망나니 과거까지 들춰내야 한다. 남자가 택한 것은 외면과 수용, 합리화였다. 어쩌면 그것이 서로에게 가장 현명한 선택이 아니었을까 혼자 생각한다.


우리 속담에 "피는 못 속인다"는 말이 있다. 어떤 집의 자식이 훌륭한 일을 해도, 혹은 망나니짓을 해도 그 말을 사용한다. 부모의 평소 행동이나 가풍이 포함된 말이기도 하고, 유전이 포함된 말이기도 하다. 비슷한 속담으로 "씨도둑은 못한다" 말이 있다.

예전 우리 엄마는 가끔씩 남동생의 행동이나 말투를 보고 '씨도둑은 못한다더니...' 하는 속담을 말하는 것을 몇 번 들었다. 그 씨도둑이 아빠의 정자를 의미하는 것이었겠지. 아무튼 씨도둑은 긍정의 의미일 수도, 부정의 의미일 수도 있다. 어릴적 들은 내 느낌은 부정의 의미였으리라.

출처: 핀터레스트

씨라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 어떤 씨를 심느냐에 따라 수확이 달라질 수 있다.

농사꾼의 자식인 나는 어릴 적 아빠나 엄마가 수확한 농산물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골라 씨앗을 골라두는 것을 보았다. 옥수수도 가장 이쁘고 알이 실한 것을 골라두었고, 콩도 이쁘고 땅땅하고 좋은 것만 골라두었다. 그 씨앗은 내년의 농사를 위한 재산이다. 좋은 씨를 심어야 내년에 좋은 수확을 할 수 있다. 씨도둑질을 한다는 것은 단순히 그것을 훔치는 것 이상으로 내년의 수확량까지 훔치는 것을 의미하므로 아마도 그 옛날의 도둑들도 그 정도의 양심은 저버리지는 않았나 보다. 그래서 씨도둑질은 못한다고 했을까? 그건 아닌가?


씨도둑은 못하든, 피는 못 속이든, 부전자전이든, 부모의 유전과 행실이 자녀에게 그대로 전달된다는 사실이다. 어머니는 손주들을 보시며

"아이고 씨도둑질은 못한다더니..."

몇 번 이야기를 하시곤 했다. 아이들의 행동을 보고 말씀하신 적도 있으나 아이들의 유난히 못생긴 엄지발가락과 엄지발톱을 보며 말씀하셨다. 두 아이의 발톱이 모두 올갱이 눈 모양으로 발톱이 약간 들린 모양이었다. 아이 아빠도 어릴 적 발톱이 그렇게 올갱이눈처럼 생겼었다고 했다. 나는 어머니에게 곧장 발톱을 보여드리며

"어머니 저는 발톱이 이렇게 이뻐요. 애들은 아비 닮은 거 맞나 봐요. 저를 닮았어야 하는데요."

하며 웃었다.


사람마다 자신의 몸에서 좋아하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나는 내 발을 좋아한다. 요즘 많은 분들이 페디큐어? 같은 것을 발톱에 붙이고 바르고, 예쁘고 화려하게 여름을 보내는 것을 보았다. 나는 가지런한 내 발톱이 마음에 들어 매니큐어도 바르지 않고 여름을 보낸다. 하루 종일 내 무거운 몸을 지탱하느라 고생하는 발에게 감사한 마음을 담아 발을 씻을 때도 꽤 오랜 시간 정성을 들이기도 한다.




어제 나는 예민했고 남편의 행동이 마음에 안 들었다. 치킨을 가지러 누가 갈것인가 같은 사소함으로 시작되어 나도 모르게 말도 퉁퉁거리고 행동도 친절하지 않았다. 치킨을 먹던 아들이 은근히 눈치 보며 물었다.

"엄마 기분 안 좋아? 아빠 마음에 안 들어?"

"아닌데~~? 그렇게 보였어?"

말로는 아니라고 했지만 아이들은 눈이 아닌 오감으로 다 느끼고 있을 것이다.

부부 사이가 한결같이 좋은 부부도 많겠지만 사소함으로 투닥거리는 우리 부부, 특히 뭔가를 기대할 때 생기는 실망감과 서운함을 내려놓자고 여러 번 스스로에게 되뇌면서도 까먹는 날이 많다.


딸아이는 엄마 발은 예쁜데 자신은 아빠 발과 발톱을 닮아 못생겼다고 발은 엄마를 닮았으면 더 좋았을 거 같다고 속상하다고 말한다. 엄마 발을 닮든 아빠 얼굴을 닮든 아이들의 유전들은 어디서 온 게 아니라 우리가 물려준 것이다. 또한 아이의 행동이나 습관도 부모의 영향이나 환경에 큰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중요한 것은 유전적으로 물려준 엄마 아빠의 발가락이나 키나 얼굴크기보다 엄마 아빠가 서로 얼마나 사랑하고 존중하는지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우리 집의 중요한 씨앗을 아이에게 물려주는 것이다.


씨도둑은 못한다. 내 아이들에게 키 크고, 이쁘고, 엄청 똑똑한 좋은 유전적 씨를 물려주는 것은 글렀고 늦었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좋은 부부의 모습을 보여주고, 행복한 가족의 모습을 함께 만들며 좋은 씨로 보강해 가는 것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아이에게 예쁜 내 발가락을 물려주지 못한 것은 아쉽지만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자!

예쁜발 출처: 핀터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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