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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파수를 맞추고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것: 동감

같은 시그널을 읽는 것

by 마음꽃psy

나에게는 고리짝적 자격증이 하나 있다. 지금은 국가자격증 리스트에 아예 자격증 자체가 없어졌을 것 같다. 아마추어 무선기사 2급. 대학 때 아마추어 무선 동아리방에 가입하고, 무전기를 취급하려면 국가자격증인 아마추어 무선기사 2급을 시험 보고 자격증을 취득해야만 했다. 나름 국가고시인지라 공부를 했고, 대전까지 가서 1번 탈락, 2번째 시험에서야 겨우 합격을 하고 얻은 첫 자격증이었다.


지금은 무전기를 거의 취급하지 않지만 당시에는 많은 대학에 무전기 동아리방이 있었고, 나도 택시 기사님들이나 타 대학의 동아리 학생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는 무전기 호출법. 첫 시작 시 CQ, CQ, CQ와 마지막에 ~롸줘! 발음으로 혀를 굴리며 마무리를 했던 것만 기억이 난다. 김하늘, 유지태 주연의 [동감]이라는 영화가 그 무전기가 매개가 되는 영화여서 매우 반가웠고, [시그널]의 이재한 형사의 무전기 매개체도 반가운 소재의 드라마였다.

시그널(출처: 핀터레스트)

무전 통신 대화는 주파수가 맞는 상대와 가능하다. 라디오 수신 채널을 돌리듯 채널을 찾다가 그 시각 나처럼 누군가와 맞아떨어지면 소속을 이야기하고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다.

하지만 대화 시 중요 약속사항이 있었다. 정치, 종교, 성적인 대화는 하지 않는 것이다. 보통 날씨나 식사, 그날의 주요 사건 등 일상적이고 간단한 대화 몇 마디로 끝을 맺곤 했다.


무전기로 모르는 사람과 주파수를 맞추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처음에는 그리 재미있지 않았다. 친하지 않은 사람과 공통점을 찾고 대화를 이어가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러다가 몇 번 만나게 되면 알게 되는 것이 생기고 이야기거리가 만들어진다. 그러나 열몇 번 정도 무전기를 사용해보고 나는 그다지 흥미가 없어져 무전기 사용보다는 사람들을 만나러 동아리 방에 가곤 했다.




요즘 뉴스를 보기가 두렵다. 행여나 지지하지 않는 후보가 대통령이 될까 봐 겁이 난다. 생각보다 지지율이 높고 결집층은 견고하다. 아무리 많은 가족의 비리와 불공정이 밝혀져도 수사도 하지 않고 언론도 파헤치지 않는다. 편파적이고 불공정한 여러 사회적 모순에 화가 난다.


난 정치적 발언을 공공연히 하지 않는다. 몇 번 그로 인한 인간적 관계의 벽이 생기는 것을 경험했다. 상담사 일을 하면서 많은 분들을 경험했지만, 아주 가끔은 정치적 의견을 피력하시는 분을 만나기도 했다. 종교보다 정치에 대한 중립적 생각으로 내담자와 이야기를 하는 것이 더 어렵기도 했다.


대학 때는 나름 좋아했던 언니가 지지하는 대통령 후보가 나와 다른 것을 알고 조용히 마음에 벽이 생겼다. 대학 졸업 후 직장 생활을 하며 알게 된 회사 근처의 국어 선생님은 내게 꽤 호감을 가졌고 친구들과 함께 만나 몇 번 맥주를 마시기도 했다. 대선 시기였고 그 당시 나는 좀 더 적극적으로 지지하던 후보를 위한 활동을 재미있게 하던 시기였다. 그런데 그 선생님은 내가 지지하던 정당에 대한 비판을 했고, 그 후 나는 그분의 연락을 받지 않았다.


부모님과도 선거철마다 지지하는 정당이 달라 가끔 언성이 높아질 때도 있었기에 그냥 서로 그것에 대해 말을 하지 않는 것이 평화를 지키는 것이라 생각했다. 지난 대선 때는 시댁 모임에서 우리 부부는 어떤 시어른으로부터 빨갱이라는 소리까지 들었다. 별 이야기를 하지 않고 복지정책에 대한 이야기를 좀 했을 뿐이었다. 요즘 시대에 빨갱이라는 표현을 하다니 실소가 나왔고, 그 후 난 그분과의 대화 자체가 불편해졌다.


친한 사람이나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혹시 나랑 지지하는 사람이 다르면 나도 모르게 벽이 생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논리적으로 상대를 설득할 자신도 없고, 사실 용기도 없다. 가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와 다른 가치관이나 정치관을 가졌다는 것을 알게 될까 봐 두렵다. 다름을 수용하고 싶은데, 희한하게도 정치적인 관점에 있어서는 그게 잘 안된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정치를 잘 안다거나, 정치인을 잘 안다거나 시사정치에 엄청난 관심을 갖고, 정치적 활동을 하는 것도 아니면서.


정치적 이야기를 소신 있게 드러내고 용기 있게 하는 분들을 보면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하다. 지지하는 정당을 떠나 한 표라도 더 지지하는 분을 위해 애쓰고 노력하는 열정에 감동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분들은 나와 같은 생각으로, 나와 같은 곳을 바라봐 주길 기도한다. 무전기를 사용하듯 나와 주파수가 맞는 분들을 많이 만나고 싶고, 충돌이 생기지 않기를 바라게 된다.

영화 : 동감 (출처: 핀터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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