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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꽃psy Feb 04. 2022

내겐 너무 소중한 테라스 공간

편백나무 방으로 아파트에 운치를 만들었다.

새로운 동네에 이사를 한지 딱 2년이 지났다.

모델하우스 구경을 갔다가 얼떨결에 계약한 신축 아파트. 같은 평수 다른 아파트들에 비해 널찍한 구조좋았다. 신축 아파트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비쌌고, 15년을 살던 우리 아파트는 가격이 너무 떨어졌고, 가전제품과 인테리어 등 이사를 하며 애초 내가 계획한 금액의 두 배의 빚이 생겨 버렸다. 이걸 평생(?) 갚아야 한다는 게 마음에 무겁게 남아있다. 이사와 매매 타이밍이 안 좋았다.


하자보수를 점검하던 날, 나는 일이 있어 가지 못하고, 남편과 언니를 보냈다.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여보, 우리 리모델링할까?"

엥? 처음에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새집에 왜 리모델링을? 돈이 넘치는 상황도 아닌데? 도대체 왜?


일을 마치고 부랴부랴 남편과 언니를 만나 자초지종을 들었다. 남편은 정리정돈에는 신경 쓰지만 인테리어에는 큰 관심 없는 사람이다. 그런 남편이 리모델링을 하는 게 좋겠다고 하니 나도 해 볼까 하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기 시작했다. 다른 동네 가서 그 업체가 했다는 인테어를 보고 나니 더 하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모델하우스와 실제 집은 생각보다 차이가  컸다. 고급스러운 가구, 소품 덕에 모델하우스는 훨씬 더 좋아 보였나보다. 아무것도 없는 다 지어진 아파트를 보니 이전 살던 집과 큰 차이가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15년 된 아파트에 살며 체리색 몰딩이 너무 싫어서 언니와 함께 셀프 페인팅을 했었다. 몰딩과 문만 바뀌었는데도 집의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져 5년간은 새로운 느낌으로 기분 좋게 살았다. 마음에 드는 인테리어는 삶의 기분을 더 만족하게 해 주고, 집에 대한 느낌을 다르게 한다는 것을 어설픈 셀프 인테리어만으로도 이미 경험을 했다.


인테리어 업체에서는 일명 <구경하는 집> 제안을 하셨다. 집의 구조가 홍보하기에 좋은 형이라 꼭 우리 집에 인테리어를 해보자 하신다. 우리가 이사하기 , 2주 정도만 하자고 제안하셨고, 리모델링 비용도 다른 업체에 비해 정말 파격적 조건이었다. 경험이 많은 인테리어 실장님과 사장님의 조언, 그리고 나의 의견을 적극 반영하여 이왕 은행 빚을 내는 거 조금 더 무리를 하기로 했다. 어차피 한번 이사를 하게 되면 최소한 10년 이상은 살 계획이었기에 나도 한번 내 마음에 들게 예쁘게 꾸며진 집에 살아보자 하는 마음이 커지고 있었다.


어두운 것을 너무 싫어하여 대낮에도 불을 켜고 있어야 하는 나의 조건은 깔끔하고 많은 조명이 필수 요소였다. 업체에서 우리에게 제안한 것은 안방 테라스의 파격적 변신이었다. 아파트의 특징이 테라스가 거의 방만큼 커서 아파트 이름도 <000 더 테라스>였다.  나는 커피도 잘 모르면서 어디서 본 건 있어서 테라스를 유행하는 홈카페 형식으로 하고 싶었으나 사장님은 우리 집의 입지(집 뒤가 )로 보건대 편백 마루방으로 만들면 사계절 펜션처럼 느껴질 것이라 하셨다.


알아들을 수 없는 인테리어 용어 뒤로 하고 진짜 진짜 큰마음먹고 계약을 진행했다. 인테리어를 하는 동안 나는 어떻게 되어 가는지 큰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저 실장님과 사장님을 믿고 기다렸다. 어느 날 주말 따뜻한 커피를 사 들고 어느 정도 진행이 되었는지 와보니 사장님이 나 같은 입주자를 처음 보았다고 하신다. 수십 번도 더 전화하고 와 보는 분들이 대부분인데 이렇게까지 믿고 맡겨주는 게 감사하다고 하셨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집의 인테리어는 더 만족스럽게 진행되고 있어서 오히려 내가 감사했다.




결과적으로 인테리어는 약속된 날짜까지 완료되지 못하고 <구경하는 집>도 오픈하지 못했다. 공사기간 중 사장님 아버님의  갑작스러운 부고로 인해 사장님이 몸과 마음의 상실감으로 한동안 공사를 하지 못하셨다. 겨우 우리 이사 전날까지 완료되었고 소소한 마무리는 이사 후에 끝났다.

약속한 <구경하는 집>을 오픈하지 못해 인테리어 업체에 너무 죄송했다. 물론 우리 집에서 잘못한 것은 아니었으나 사장님은 개인적 사정으로 인해 어쩔 수 없던 일이니 괜찮다고 하셨지만 파격적인 가격으로 해 주셨고, 무엇보다 보물 같은 공간을 마련해 주셨기에 나는 죄송하고 감사한 마음이 컸다.


테라스는 내가 아주 좋아하는 공간이 되었다. 비록 날이 추워지는 계절에는 창고처럼 쓰이지만 봄부터 가을까지는 그 공간은 새로운 곳이 된다.  높은 마루와 편백나무 방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그곳에서 차를 마사거나 책을 볼 때면 기분 좋은 향과 함께 바깥의 산 풍경으로 인테리어 사장님 말씀처럼 마치 숲 속 펜션으로 놀러 온 기분을 느끼게 해 주었다. 산속의 새소리도 좋고 계절의 변화를 매일 보는 것도 좋았다.


오늘 매우 춥지만 절기상으로는 입춘이다. 이제 곧 뒷산의 나무에서 예쁜 연둣빛 새 잎들이 나올 것이고,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이 테라스에서 차를 마시며 책을 보고, 평화롭게 산을 바라볼 것이다. 그리고 소중한 시간을 즐길 것이다. 


나만의 소중한 공간이 있다는 것은 참 감사한 일이다. 무리한 이사를 하며 생각지 못한 빚은 커져버렸고 어깨가 버겁기도 하다. 올해도 열심히 일해서 은행지분에서 벗어나 조금이라도 우리집으로 만들어야다. 하지만 매우 합리적인 비용으로 마음에 드는 인테리어를 했고, 편백나무 방 테라스와 계절을 한눈에 담으며 조용하고 평화로운 뒷산을 갖게 되는 이런 집을 다시는 만나지 못할 것 같다. .

나의 가장 소중한 공간이 지금은 너무 춥다. 봄부터 나의 공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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