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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의 흔적

삶의 증거

by 마음꽃psy

물을 주어야 하는 시기를 놓 우두두 잎이 떨어졌던 녹보수는 새 잎이 건강하게 많이 잘 나왔다. 하지만 물이 부족했었던 잎들은 여전히 그 흔적이 남아있다. 군데군데 마른 흔적으로 줄기에 매달려있다. 물을 줄 때마다

"얘네들이 얼마나 목이 말랐을까?"

생각이 들곤 한다. 감사하고 다행스럽게도 떨어지지 않고 잘 붙어있었 흔적은 남았지만 다른 새 잎들과 잘 자라고 있다.

그 잎사귀들은 고통의 흔적으로 내가 까먹지 않고 물을 주도록 만들어주었다. 더 자주 화초들을 살펴보고 제대로 크고 있는지, 환기를 해야 하는지 신경 쓰게 해 주었다.


브런치 글 속에 내 고통의 흔적을 글로 남긴 적이 있다. 누군가에게 말하지 못했던 십여 년간 같은 날에 찾아오는 슬픔을 적었다. 나의 흔적으로 누군가가 치유를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흔적의 글을 보시고 생활 성서 편집부 선생님께서 내 글을 생활 성서에 실어 주셨다. 그 고통의 경험으로 나는 나와 삶, 죽음에 대해 다시 돌이켜보게 되었고 새로운 인생의 길을 선택하게 되었다.

흔적 지나간 자리에 남은 자국을 말한다. 흔적이 있다는 것은 강력한 증거가 된다. 며칠 전 가족관계 증명서를 떼어야 할 일이 있었다. 가족관계 증명서를 떼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볼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그 기분은 아직도 익숙하지가 않다. 둘이 내게 왔다 갔지만 흔적은 한 아이만 남겼다. 인큐베이터에 있던 큰 아이를 보내고, 설마 출생신고를 안 해서 하느님이 데려간 걸까 두려운 마음에 서둘러 작은 아이를 출생신고를 했다. 이 아이가 내 아이임을 나라에 기록까지 했으니 제발 잘 자라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하지만 한 달 후 아이는 나를 떠나갔고, 가족관계 증명서에는 딸아이의 이름 위에 이름으로 흔적이 남아있다.


두 아이 다 출생신고를 하던가, 두 아이 다 하지 말았어야 하는 건가. 이름을 마주할 때마다 내 마음은 여전히 아프다. 한 아이의 이름은 내 기억 속에만 흔적으로 남았다. 그리고 어쩌면 이렇게 이름으로라도 흔적을 남겼기에 두 아이를 잊지 않고 가끔 떠올려보게 되는 것일까.


나는 살아가며 울고 웃는다. 심지어 아이가 하늘나라에 갔어도 잠을 자고, 밥을 먹었고, 티브이를 보며 웃었고, 그러다가 엉엉 울었다. 그렇게 세월은 흐르고 심장이 찢길 것 같았던 아픔도 고통도 이제 흔적으로 남아 전처럼 많이 아프지 않다. 고통이 흔적이 되어준 게 감사하다. 고통의 흔적이 있기에 때로는 내가 나를 다시 보게 되고,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고 어떤 부모가 되고 싶었는지를 잊지 않게 해 준다.


녹보수에 물을 주며 여러 번 망설였다. 저 마른 상처가 있는 잎사귀들을 떼어낼까 말까. 그러다가 줄기에 강력하게 붙어있는 그 느낌에 다시 손을 치운다. 다른 새 잎이 아무리 예쁘게 많이 올라와도 고통의 흔적이 남아 있는 잎사귀들이 저절로 떨어지기 전까지 내 손으로 떼어내지 않기로 한다.

고통의 흔적은 내가 만든 것이고, 나에게 가르침을 주는 것이다.

나의 녹보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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