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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꽃psy May 20. 2022

엄마는 체리를 좋아해

최애 과일을 꼽으라 하면 난 주저 없이 체리를 꼽는다.  신토불이라는 말을 듣고 자란 농사꾼의 딸이 수입과일을 좋아할 때마다 여전히 묘한 불편감이 생. 그래도 나는 귤보다 미국산 오렌지가 맛있고, 영동포도보다 칠레산 청포도가 맛있는 걸ㅠㅠ. 


초등학교 시절 뉴스나 시사프로그램에서 나오고, 시골 동네에서 어른들의 이야기 속에서 우루과이 라우드가 체결되면 우리나라 농업과 식량에 엄청난 큰일이 일어나는 줄 알았다. 농업에 종사하는 어른들에게는 어떤 수입의 변화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내가 느끼는 큰 변화는 없었다. 내가 기억하는 건 우루과이 협상 이후로 좀 더 다양한 과일을 먹을 수 있게 된 점이다.


오랜만에 아들의 운동화를 사 주기 위해 대형마트에 갔다. 팔이 부러진 아들은 혼자 샤워가 어려워 씻는 것만 도와주면 되었다. 팔이 부러진 것도 모르고 아파하는 아들에게 참으라고, 엄살 부리지 말라했던 게 내내 미안했다. 그래서 물건을 잘 사달라고 하지 않는 아이가 새운동화를 신고 싶다 하여 가볍고 편한 여름 운동화를 빨리 사주고 싶었다.  


운동화도 사고 이것저것 간식거리도 더 사, 나를 위해 체리 한팩을 샀다. 참외나 수박 같은 과일은 사기 전에 망설여다. 껍질을 까고 써는 과정이 번거롭고 내가 챙기지 않으면 아무도 먹지 않는다. 그래서 씻어서 바로 먹을 수 있는 방울토마토나 포도 같은 과일을 집어 들곤 했다. 굳이 내가 일일이 챙기지 않아도 씻어만 두면 그나마 먹을 수도 있고, 남은 과일 보관도 가장 용이하다. 


그중에 빨간 체리는 색깔도 모양도 맛도 매력이 넘친다. 수입과일이 많아졌고 가격도 국산 과일과 큰 차이가 없지만 여전히 내게 체리는 비싼 과일처럼 여겨진다. 양껏 먹어본 적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임신했을 때 홈쇼핑에서 3kg을 주문하여 눈치 보지 않고 혼자 다 먹었던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 양껏 정말 배부르게 체리를 먹었던 날이다. 퇴근 후 눈치 없는 남편은 임신한 아내에게 그 많은 걸 혼자 다 먹었냐고 한 소리하여 짜증이 확 났었다. 십여 년이 지난 지금도 생각하면 감정이 올라오는 걸 보면 그때 감정이 많이 상했던 모양이다.




나를 위한 체리 한 팩을 산 것이 참으로 오랜만이다. 보통 장을 볼 때면 아이들이 먹고 싶다는 것들 위주였다. 오늘은 파인애플을 먹고 싶다는 아들에게 파인애플은 까기가 너무 불편하고 어려워 사지 않을 거라 단호히 말하고 체리 한팩을 카트에 담았다.


나는 엄마가 되어도 아이들에게 무조건 양보하고 희생하는 엄마가 되고 싶지 않았다. '어머니는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어머니는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하던 그 노래를 듣고 난 눈물이 났었다. 늘 바쁘고 고생하는 불쌍하고 가슴 아픈 우리 엄마의 모습이 함께 떠올랐다. 그리고 생각했다. 내가 엄마가 되면 내 아이들에게 불쌍하고 희생하는 엄마의  모습을 떠올리게 만들지 않겠다고. 


지금은 예전과는 다른 시대이고, 먹을 것이 넘쳐나는 시대이다. 그래도 나는 아이들과 함께 무언가를 먹을 때면 알려주었다.  크고 맛있는 건 엄마 거라고. 그다음 크고 맛있는 건 아빠 거라고. 그러면 아이들은 크고 맛있는 것을 골라 엄마 입에 가져다주었다. 나는 그것을 내가 먹기도 하고 아이 입에 넣어주기도 한다. 짜장면이 싫다고 하는 엄마의 모습이 아닌, 맛있는 걸 함께 먹는 행복한 엄마의 모습을 만들고 싶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갈치의 몸통을 주고 엄마는 머리가 더 맛있다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엄마는 갈치 가운데가 제일 맛있지만 너희들을 사랑하니까 양보하는 것이라 알려준다. 그러면 아이들은 사랑하니까 같이 맛있는 것을 나누어 먹자고 예쁘게 말해주고 나에게 나누어주는 것을 맛있게 먹는다.


자식을 사랑하는 방법으로 나는 희생을 선택하고 싶지 않.  어릴 때부터 우리를 위해 늘 고생하고 희생한 부모님께 감사하고 죄송하고 그러면서도 빚진 기분이 들곤 했다. 뭔가 더 효도를 하여 고생을 덜어드려야 한다는 책임감이 들곤 했다. 희생하는 부모는 위대하지만 나는 그저 내 아이들에게 편안한 부모가 되고 싶다. 나는 부모님에게 효녀가 되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자랐지만, 내 아이들은 그냥 자유롭게 자라주길 바란다.


마트에서 내가 좋아하는 체리 한팩을 사며, 좋아하는 홍시도 제대로 사 먹지 않던 우리 엄마가 떠올랐다. 엄마가 홍시를 좋아한다는 것을 나는 마흔이 다 되어서야 알았다. 또 엄마에게 미안해졌다. 나는 왜 엄마는 무슨 과일을 제일 좋아하는지 묻지 않았을까? 그래서 나는 묻지 않는 내 아이들에게 엄마가 좋아하는 것을 일찍 알려주었다.  엄마는 체리와 만두를 좋아하니까 나중에 만두 맛집 가면 사 오라고. 과일은 예쁘고 싱그러운 체리를 사 오라고. 그러면 엄마는 언제든 기분 좋고 행복해질 것 같다고 알려주니 아이들은 엄마를 행복하게 하는 거 너무 쉬운 방법이라고 좋아다.


아이의 운동화를 사러 가서 맛있고 예쁜 체리를 사며 중구난방 여러 생각이 떠오른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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