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드는 것: 늘어남이 많아지는 것
행복하게 나이 들기 위하여
웬만해선 잘 체하지 않았다. 얼마 전까지는.
맥주와 고기, 매운 음식을 함께 먹으면 여지없이 설사를 하는 내 체질이 마음에 들었다. 고열량이 몸에 쌓이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에, 온 동네 건물마다 비상시 뛰어갈 수 있도록, 화장실 비밀번호를 밴드에 저장해 두는 우스꽝스러운 습관을 가지면서도 난 내 위장이 소화를 잘 시키는 아직은 튼튼하다고 기특하다고 생각했다.
어떤 건물을 갈 때마다 화장실 비밀번호를 저장해두는 나를 보고 친구 하나는 배꼽을 잡고 웃어댔다. 하지만 모임에서 난 주로 삼겹살과 맥주를 마시고, 그 뒤엔 급×으로 힘들게 한 경험이 많았기에 언제부터인가 난 나만의 화장실 지도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건물 한건물 채워질 때마다 묘한 성취감도 들었다.
그럴 때를 빼고는 내 위장은 작은 내 체구에 비해 많은 음식을 잘 받아들여 주었고, 딱딱한 음식이든 연달아 밀가루를 먹든 소화를 잘 시켜주었다.
그런데 요즘 들어 몸이 많이 달라졌음을 느낀다.
내가 얼마 전 검색창에 '방귀가 자주 나오는 이유'라는 것을 검색했나 보다. 딸이 어쩌다 엄마의 핸드폰을 보더니
"엄마~!!! 요새 방귀 많이 나와~?"
하고 묻는다. 화들짝 놀라
"어떻게 알았어?"
물어보니 엄마가 검색한 창을 보았다고 한다.
그래, 그러고 보니 어릴 때보다 방귀를 자주 뀌는구나 하는 점이 자각되었다. 그리고 오늘, 진짜 오랜만에 체했다. 좋은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을 먹었는데 집에 와서 자꾸 속이 메슥하고 입안에 불편하고 짠 침이 돈다. 혼자 따는 게 무서워 대충 실로 손가락을 동여매고 겉에만 찌르다 말았다.
점심 전, 불편한 전화통화로 스트레스 지수가 급 올라갔고, 그게 내 소화에 영향을 미쳤을까 싶기도 하다. 전에는 울면서 밥을 먹어도 그런 일이 없었는데, 이제 나이 탓인지 성향 탓인지 예민해졌나 보다.
나는 나이가 드는 것에 예외가 있을 것이라 착각하고 살았다. 난 나이 들어도 건강하고, 까만 머리카락을 유지할 수 있는 모습만 생각했다. 하지만 우측 이마 쪽으로 흰머리카락이 점점 늘어가고 있고, 몸도 호르몬이 달라지고 있나 보다. 자연스럽게.
나이가 늘어남에 뱃살도 자꾸 늘어가고, 주름도 늘어가고, 방귀도 늘어가고, 피곤함도 늘어간다. 하지만 나이가 늘어나는 만큼 마음의 크기도 늘어가고, 유연함도 늘어가고, 행복함도 늘어가고, 지혜의 폭도 늘어가고 싶다. 늘어가는 것을 기분 좋게 찾으며 또 한 살을 늘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