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난 네가 싫어' 공개고백을 받았다

모든 사람이 나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by 마음꽃psy

"난 네가 눈이 슬퍼 보여서 싫어."

대학교 1학년 때 어떤 남자 선배에게 들었던 말이다.

친구들과 웃고 떠들고 있던 나에게 뜬금없이 말을 했다. 나보다 5살이나 많았고, 키가 190 가까이 유난히 크고 말랐고, 백인처럼 하얀 피부를 가진 사람이었다.

그림출처: 핀터레스트

어린 나는 '네가 싫다'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대놓고 내 앞에서 툭 던지듯이 한 그 말이 충격이었다. 그리고 눈이 예쁘다는 소리만 들어봤지 '내 눈이 슬퍼 보인다'는 말은 더 충격이었고 게다가 내가 싫다고 했다. 나도 모르게 귀까지 빨개졌고 어이가 없었다. 민망함에 눈물이 날 뻔했지만 그런 말에 가만히 있을 내가 아니다. 지지 않고 나도 앙칼지게 한마디 했다.

"저도 선배님 키 크고 희멀건해서 싫어요"


그 선배와 친하지도 않았다. 가끔 동아리방에서 인사를 했고, 목소리가 '솔톤으로 까랑까랑하고 까불었던 나'는 선배들과 동기들과 두루두루 잘 지내는 편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갑자기 사랑고백도 아니고 '네가 싫다'는 공개고백을 들었다.

그다음부터 나는 멀리서 그 선배가 보이면 돌아갔고, 동아리방에 그 선배가 있으면 불편했다.

내가 무슨 잘못을 한 것도 아니고 눈이 슬퍼 보여서 싫다니 기가 막혔다. 그 후로도 그 선배와 별로 친하지 않고, 말도 많이 안 해보았는데도 나는 그가 진짜로 싫어졌다.


나도 그 선배를 좋아하지 않았고, 자주 마주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희한하게 갈라진 손톱처럼 자꾸만 걸리적거렸다.

왜 그는 나를 싫다고 했을까?

그냥 마음으로 싫어하지 왜 공개적으로 여러 사람 앞에서 그렇게 말을 했을까?

나를 싫다고 한 게 농담일까? 진담일까?

공개적으로 싫어하는 어떤 연예인에게 악플을 달 때 그런 마음일까?


상담을 공부한 이후 이상하게도 그 선배가 종종 떠올랐다.

사람이 누군가가 이유 없이 좋을 수도 있는 것처럼, 이유 없이 싫을 수도 있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해 준 사람이다. 차라리 네가 시끄럽고 선배들에게 까불어서 싫다고 했으면 내가 받아들이기가 쉬웠을 것 같았다.

그런데 슬퍼 보이는 내 눈 때문에 내가 싫다고? 그건 내가 잘못한 게 아니잖아. 정말로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 선배가 나에게 큰 가르침을 주었던 거 같다.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귀여움 받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해 왔었다. 그런데 그 이후 나는 누군가는 나를 그냥 싫어할 수도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인정받고자 하는 건 나의 욕심이고 그로 인해 내가 소모되는 에너지가 많았다. 그런데 나를 싫어하는 사람을 인정하고 수용하니 편해졌다. 나를 싫어하는 사람을 신경 쓰기보다 나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집중하는 게 더 재미있고 행복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때로 내가 집중하지 않아도 될 것에 신경 쓰며 나를 힘들게 한다. 사실 누군가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정보가 기분이 좋을 리는 없다. 하지만 그가 나를 싫어한다는 정보로 내 감정이, 내 생활이 휘둘려서도 안된다. 하나의 정보로 처리하고 받아들이는 연습도 필요하다. 모든 사람이 나를 좋아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란 사실에 대하여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나중에 그 선배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 선배는 흰 피부에 큰 콤플렉스가 있었다. 그가 내게 내 눈이 슬퍼서 싫다고 한 건 그의 생각이고, 난 늘 내 눈이 예쁘고 좋았다. 난 콤플렉스가 아니었지만, 나는 그가 싫어하는 약점을 이야기해버렸다. 그에게 그냥 웃으며

"네. 알겠어요. 선배님은 내 눈이 싫지만, 전 제 눈 엄청 좋아해요"

편하게 말했다면 4년 내내 불편하게 그를 피해 다닐 일도 없었을 텐데..... 하지만 나는 겨우 스무 살인 그때, 그런 것을 수용하기에는 너무 어렸고, 누군가 나를 싫어한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이야기를 들은 것에 대한 충격이 너무 컸다.


나중에 다시 생각해보니 그 사람이 '나라는 사람'을 싫어한 게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냥 내 '슬퍼 보이는 내 눈'이 싫다고 이야기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저 조그맣고 까부는 나란 아이가 싫었는데 슬픈 눈이 싫다는 다른 이유를 붙였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기억이라는 것이 사실이 아닌 왜곡된 정보를 내가 간직하는 것일 수도 있으니.


나이 들며 눈가 주름도 많아지고 쳐지는 눈꺼풀을 보며, 갑자기 슬퍼 보이는 내 눈을 보니 갑자기 이름도 가물가물한 그가 떠올랐다.


닮고 싶은 분위기♥ 사진출처: 핀터레스트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