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아는 분이 강의에서 스스로의 성장에 대하여 말씀하시며 '계란을 스스로 깨고 나와야 병아리가 된다고, 남이 깨 주면 프라이가 될 뿐'이라고 하셨다.
인간은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종족이기에 타인의 도움을 받고, 나 또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은 행복하고 감사한 일이다. 그러나 도움이라는 것이 늘 그 상대에게 플러스가 되는 것은 아니다.
잘 커준 화분들
화초를 예쁘게 잘 키우지는 못하는데, 테이블야자와 행운목은 나 같은 화초 초보자도 키우기 좋은 식물이다. 물을 많이 주어도, 깜빡하고 잊고 지내도 큰일이 나지 않는다.
작년부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몇 개의 화분을 들이기 시작했다. 많은 화분 중에 무관심과 혹은 지나친 관심으로 말라죽은 아이도 있고, 썩어 죽은 화분도 여러 개다.다육이들을 누가 키우기 쉽다고 했는지... 나의 다육이 화분들은 이제 빈화분이 되었다.
지나친 관심으로 다육이들은 다 죽었다.
특히, 행운목과 테이블야자는 작은 식물에서 새로운 싹이 나오는 것이 너무 신기하고, 기특하여 매일 바라보기도 하고, 물을 주기도 하고, 나름대로 관심을 주고 사랑을 많이 주었다. 그러나 사랑도 제대로 주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테이블야자는 키우기도 쉽다 하고 멋스러운 잎사귀가 좋아 여러 개의 화분을 샀다. 요 아이는 새로운 싹이 뾰족하게 꼬챙이처럼 쭉~~!!! 올라온다. 매일 바라보고 있자니 이 식물이 빨리빨리 자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물도 자주 주고, 자주 바라보며 사랑해 주었다.
테이블 야자는 새잎이 꼬챙이처럼 올라온다.
어느 날은 바라보고 있자니 꼬챙이 같은 새싹이 빨리 잎을 좀 쫙~! 펴주면 좋겠는데 너무 더디 떨어지는 것이 답답하단 생각이 들어서 아주 조심조심 붙어있던 잎사귀를 떼어주었다. 꼬챙이 같은 잎들을 하나하나 떼면서 날개를 펴준 기분이 들어서 기분이 좋아졌다. 그리고 이 테이블 야자들이 빨리 더 잘 자랄 것을 기대하고 마치 내가 뭔가 큰 도움을 준 것처럼 뿌듯해졌다.
그런데 이건 아주 큰 착각이었다. 며칠 뒤부터 두 개의 화분에 어린 새잎들은 잎이 말라가기 시작했고, 상태가 별로 시름시름하더니 어느 순간 새잎부터 죽어갔다. 5개의 테이블야자 화분 중에 두 개의 화분은 그렇게 말라죽었다. 처음에는 왜? 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살아있는 세 개의 화분은 내가 새 잎사귀를 건드리지 않은 것들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때 퍼뜩 떠오른 말이 '남이 깨면 프라이, 스스로 깨야 병아리'가 된다는 말이었다. 새가 알에서 깨어 나올 때는 엄청난 고통과 에너지를 쏟고 스스로 견뎌야만 홀로 살 수 있는 힘이 만들어진다. 안타까운 마음에 어미가 도와준다면 그것은 새끼를 죽게 만드는 결과일 뿐이다.
테이블야자도 스스로 잎사귀를 펼치고 클 수 있도록 그냥 바라보고 놔두었어야 하는데, 어리석은 주인이 도와준답시고 하나하나 잎을 펴준 것이 결국은 말라죽게 만든 것이다.
도움이라는 것이, 상대에게 꼭 좋은 결과를 만들어주는 것은 아니었다. 때로는 그냥 바라보는 것도, 기다려주는 것도 상대에게는 지지대가 되기도 한다.
알을 밖에서 남이 깨 주면 너무 편하지만, 결코 새가 되어 날아갈 수 없다. 그것은 프라이가 될 뿐이다. 멋진 잎사귀가 될 나무도 억지로 펴주니 말라죽을 뿐이었다.
그냥 바라보는 것도, 기다려주는 것도 사랑이고 응원이다.
엄마인 나도, 내 아이가 스스로 알을 깨고 나오도록, 그저 바라보고 기다리고 할 수 있도록 응원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함께 있으니 잔소리가 많아진다. 문득 테이블야자에 물을 주다가 기다림을 다시 떠올린다. 도와준답시고 한 행동이 내 아이가 프라이가 되도록 하는 건 아니었을까 돌아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