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2학년인 딸아이는 공부를 하지 않았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심각했고, 급기야 1학기 중간고사가 끝나고 한참 뒤, 담임선생님의 호출이 있었다. 여러 이야기 끝에 선생님께 조심스럽게 물었다.
"선생님, 설마 00 이가 꼴찌일까요?"
선생님은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대답하신다.
"네."
"아, 2학기에는 제가 조금 더 신경 써 보겠습니다."
담임선생님과 상담을 마치고 차 안에서 한참을 울었다. 내가 운 것은 성적 때문이 아니다. 내향적인 아이는 교실에서 친구가 없었고, 수업도 듣지 않고, 급식도 먹지 않는 날이 많다고 하셨다. 그저 무난히 공부는 잘 안 해도 학교 생활은 하고 있으려니 막연히 기대했지만 아이는 여전히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었다. 다 내 탓인 거 같아서 마음이 아프고 미안하고 화가 났다.
갑작스러운 이사와 전학, 코로나로 인한 온라인 수업, 직장생활을 하며 내 공부와 일 때문에 작년까지 아이에게 제대로 신경 쓰지 못했다. 그냥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게끔 해 주었고, 그것만으로 내가 엄마로서 괜찮은 역할을 다 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위안했다. 학교에 친한 친구는 없어도 그럭저럭 지내고 있을 것이라 기대하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아이는 중학교 친구를 사귀지 않았고, 수업조차 듣지 않았나 보다.
담임선생님께 물어보니 반에 내 딸과 같은 아이들이 서너 명 정도 된다고 하셨다. 하지만 그 아이들끼리도 친하려고 들지 않았고 선생님도 여러모로 신경을 많이 쓰고 계신 듯했다. 그저 나는 내가 내 딸에게 더 관심 갖고, 공부와 학교생활에 충실하게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상담실을 나왔다.
집으로 돌아와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00아, 학교생활 어때?"
"그냥 그래."
"친구 없잖아. 그래서 재미없어?"
"별로 친하고 싶은 아이도 없어. 혼자가 편해."
혼자가 편하다는 아이. 진심인지 아닌지 모르겠다.
"엄마가 미안해. 너를 너무 놀게 했어. 아무리 엄마가 공부하라 안 했지만 이 점수는 너무 심각해, 그렇지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그래도 국어는 60점 대야. 다른 건 하나도 몰라서 그냥 찍고 잤어."
놀랍다. 늘 모범생으로 지냈던 나는 학교 때 시험을 아무거나 찍고 자는 애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데 그런 이해할 수 없는 그런 애가 내 딸이 될 줄은 몰랐다. 속이 부글부글 끓었지만 참아야 했다.
"엄마 그래도 난 올라갈 수 있는 게 많으니 다행이지 않아?"
이건 또 뭔 소리여. 이걸 긍정적이라고 생각해야 하나? 그래 그렇게 받아들이기로 한다.
"그래, 올라갈 수 있는 점수가 많으니 2학기에는 올라가 보자."
몇 년간 청소년 상담을 했고, 부모교육도 했다. 나름 전문가로 활동해 왔지만 결국 내 아이의 문제 앞에는 무력하고, 답답한 엄마일 뿐이었고, 중이 제 머리 깍지 못하는 격이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답답하고 막막했다.
극내향인 아이의 성향을 밖꿀 수는 없다. 일단 성적부터 신경을 써보기로 했다.
그나마 다른 과목보다 국어 성적은 중간정도는 되는 듯하여 전략을 짜보기로 했다. 학원은 다니기 싫다는 아이와 이야기 끝에 한 시간씩 과외를 해 보기로 했다. 지인분께 과외선생님을 구해달라 부탁드렸고, 자녀들을 서울 명문대에 보내셨다는 과외선생님으로부터 기말시험 3주 전 국어과외를 시작했다.
놀랍게도 아이는 3주 과외수업으로 중간고사가 60점이었던 점수가 100점이 되었다. 선생님의 실력이 뛰어나신 건지, 아이가 잘 이해를 한 건지, 시험이 쉬웠는지 갑작스레 국어점수는 점프를 했다. 그러나 기말고사에서도 다른 점수들은 완전 바닥이었고, 수행평가를 포함한 점수로는 거의 꼴찌이거나 꼴찌에서 두 번째정도 될 것이라 생각만 했다. 화도 나고 답답도 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공부해서 점수를 올린 국어를 위주로 칭찬했다.
밤낮이 바뀐 여름방학을 보내고, 2학기에도 아이는 달라지지 않은 듯했다. 여전히 밤엔 잠을 안 자고 그림을 그리는지 뭐를 하는지 문을 잠갔고, 학교에서 낮에는 거의 병든 닭처럼 지낼 것이 뻔했다. 아이와 싸우기도 지쳤고, 잔소리를 하면 서로 마음만 다치기에 부글거리는 내 마음을 누르고 달래느라 힘들었다.
고민 끝에 중간고사 1달 전 다시 지인의 추천으로 대학생 영어 과외선생님을 찾았다. 다행히 아이는 선생님을 좋아하는 듯했다. 영어는 싫지만 선생님은 좋다고 했다. 선생님은 우리 아이처럼 작고, 내향성이 강해 보였고 그저 나는 선생님을 믿어보기로 했다. 그리고 과학은 사촌오빠를 불러 시험 직전 속성으로 교과서를 함께 보게 했다. 역사와 수학은 시험 전날 나와 함께 두어 시간 몇 문제라도 풀어보며 시험에 대한 걱정과 부담을 갖길 바랐다. 아이는 시험에 대한 부담도 관심도 걱정도 없는 아이였고, 그런 상태를 만든 것도 나였기에 나도 조금이라도 시험과 공부에 대하여 함께 해 보기로 했다.
이틀간 다섯 과목 시험을 다 보았고, 시험 결과가 너무 궁금해졌다. 처음으로 아주 잠깐이라도 공부라는 것을 해 본 아이는 역사 시험을 보며 '시험공부를 미리 시작했으면 몇 문제 더 풀 수 있었겠다'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1학기에는 수업시간에도 안 듣고, 교과서를 제대로 본 적이 없어서 시험을 볼 때에도 문제를 푼 것이 아니라 그냥 다 찍었다고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몇 문제를 풀었고, 확신의 답을 찾은 것도 있다고 했다.
내가 너무 궁금해졌다. 아이의 시험 문제를 풀어 보았다.
아이는 놀랍게도 국어는 이번에도 100점을 맞은 거 같았다. 수학은 나도 몇 문제를 풀 수 없었으나 대충 40점도 나올 것 같았고, 과학은 80점대, 영어는 40점대, 사회도 40점 정도 나올 것 같았다. 1학기에 비하면 아주 놀라운 성과다. 과학은 무려 4배나 올랐고, 영어, 수학, 사회도 2배나 오른 점수니까. 아무리 문제가 쉬워도 100점을 받는 것은 어려운 것이라 입이 마르게 칭찬했고, 다른 과목들도 공부하니 올랐다고, 신경 쓰고 문제를 풀어본 것을 칭찬했다. 최소한 꼴찌는 아닐 것이고, 스스로도 공부를 하면 성적이 오른다는 것을 경험했다.
좋지도 않은 점수이지만 아이는 스스로도 뿌듯한 거 같았다. 국어 100점이란 이야기를 수십 번을 했다. 과학은 4배나 올랐다고 좋아한다. 영어, 수학, 사회도 2배나 오른 게 놀랍지 않냐며 만족해했다. 반 평균도 안 되는 점수, 중간도 안 되는 성적이 사실 난 만족스럽지는 않다. 하지만 아이는 조금이라도 공부에 신경을 쓰고, 이제는 수행평가도 아주 조금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기말고사까지 1달, 조금은 더 나아질 것을 기대한다.
나는 내 아이에 대한 믿음, 자율성, 존중이라는 포장 아래, 학습에 대한 무관심과 방치도 있었음을 인정한다. 그저 아이가 알아서 잘해주길 바랐고, 학원이나 과외 없이도 중간 정도는 해 줄 것이라 기대했었다. 그러나 아이는 내 기대처럼 해 주지 않았고, 난 이제 그동안 아꼈던 학원비 대신 한동안 과외비를 지출해야 한다. 아... 부담스럽다.
하지만 아이는 공부를 하면 성적이 오른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성취감을 느꼈다는 것을 안다. 한 번도 공부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는데 엊그제 영어수행평가를 해야 한다고 엄마에게 도움을 청했다. 나는 아이와 함께 영어를 외웠고 여러 번 테스트를 하며 아이가 완벽하게 암기할 수 있도록 시간을 투자했다. 결국 다음날, 영어 수행에서 만점을 받았다고 했다. 조금씩, 한 계단 씩 올라가고 있는 아이를 응원한다. 꼴찌라서 올라갈 수 있는 계단이 많으니 다행이라는 아이의 말에 동감하고 공감해 주며 함께 조금씩 올라가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