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보다 성실히 커리어를 쌓아왔다고 자부했는데, 예상치 못한 탈락이나 이별 통보를 마주하면 우리는 길을 잃습니다. 그때 가장 먼저 입술 끝에 맺히는 말은 대개 이 한 문장입니다. "왜 하필 나야."
며칠 전 저 역시 오랫동안 근무했던 기관에서 탈락하며 이 날카로운 질문에 베여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 '왜 하필'이라는 말은 답을 주는 문장이 아니라, 나를 무력하게 만드는 선언문에 가까웠습니다. 오늘은 제가 그 절망의 언어를 어떻게 다른 문장으로 바꾸어냈는지, 그 과정에서 발견한 '언어의 힘'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살다 보면 예고 없이 무너지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 순간, 마음속에서 가장 먼저 튀어나오는 말은 대개 이 한 문장이다. 며칠전 나도 그랬다. 몇년간 근무했던 기관에서 탈락했다. 생각지도 못한 결과에 가장 먼저 내가 되뇌인 말은 왜 하필 나야...
“왜 하필 나야.”
말은 짧지만, 그 안에는 많은 감정이 겹겹이 쌓여 있다. 억울함, 무력감, 두려움, 그리고 스스로를 향한 조용한 비난까지. 누구도 알아채지 못하는 사이, 그 말은 마음 깊숙한 곳에서 자신에게 칼끝을 겨눈다.
“나는 왜 이런 일에 자꾸 끌려다닐까.”
“왜 좋은 일은 언제나 나를 비껴갈까.”
“왜 하필 지금이야.”
그 말이 흘러나오는 순간, 우리는 이미 상의 중심을 ‘나의 잘못’에 두고 있다. 나 역시, 어떤 상실의 순간마다 이 문장을 속으로 조용히 되뇌곤 했다. 문제는 ‘왜 하필’이 사실 사건을 설명하는 문장이 아니라, 나를 무력하게 만드는 선언문이라는 데 있다. 그 문장은 답을 찾지 않는다. 상황을 분석하지도, 나를 위로하지도 않는다.
그저 마음을 무겁게 가라앉히고, 시야를 흐리게 만들 뿐이다. 그리고 그 말과 함께 눈앞의 사건보다 더 큰 슬픔을 스스로 만들어내며 구덩이로 들어간다.
실업자 상담을 하던 어느 날, 한 내담자가 말했다.
“선생님, 제가 뭘 그렇게 잘못했길래 이런 일이 자꾸 생기는 걸까요?”
그 질문을 들었을 때 나는 그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보다 ‘왜 하필’이라는 말이 그의 삶에서 얼마나 큰 그림자를 만들었는지를 먼저 보았다.
사람은 자신에게 납득되지 않는 일이 생기면 마음의 빈틈을 ‘자기비난’으로 채우려 한다.
엄마가 되는 순간, 직장인이 되는 순간, 어떤 역할이든 짊어질수록 이 문장은 더 날카로워진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된다. ‘왜 하필’이라고 부르던 순간들이 사실은 나를 다른 방향으로 데려가기 위해 먼저 찾아온 신호였다는 것을.
내가 아주 깊은 슬픔을 통과하던 시절, 나는 매일 스스로에게 이 질문을 했다.
“왜 하필 나지?” "왜 하필 내게 이런 일이 생겼지?"
그 문장은 나를 단단하게 하지 못했다. 다만, 나를 더 깊은 곳으로 끌어내렸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다른 문장이 마음속에서 떠올랐다.
“이건 나에게 어떤 의미일까.”
그 문장은 이상할 만큼 나를 흔들지 않았다. 상황을 바꾸지는 않았지만, 상황을 바꿀수도 없었지만 신기하게도 마음을 붙잡을 작은 손잡이를 하나 만들어 주었다. ‘왜 하필’이 절망이라면 ‘어떤 의미일까’는 나를 조금 앞으로 이동시키는 미세한 발걸음이 되었다. 그 발걸음은 작아서 잘 보이지 않지만 그 작은 움직임이야말로 사람을 다시 살아가게 만든다.
“왜 하필”을 떠올리는 날이면, 나는 이제 이렇게 다시 묻는다.
“이 순간이 나를 어디로 데려가려는 걸까.”
그 질문을 던지면 저절로 고개가 조금 들리고 어둡던 마음에 틈 하나가 생긴다. 그 틈이 숨을 쉬게 하고, 내일을 바라보게 하고, 나를 버티게 만든다.그리고 때론 새로운 희망을 꿈꾸게 한다. 삶은 종종 이유 없이 아프지만 대신 어느 날엔 아주 작은 이유로 다시 우리를 일으켜 세우기도 한다. 그러니 오늘만큼은 ‘왜 하필’이라는 말 안에서 나를 더 깊이 심판하지 않기를...
우리는 모두 견디며 배우고, 버티며 자라온 사람들이다. 그리고 때때로 성장은 질문 하나에서 시작된다.
“왜 하필”이 아니라,
“그렇다면 나는 어디로 가고 싶은가.”
“지금 이일은 내게 어떤 의미를 주는가”
그래서 난 이번에도 나의 상실에 대해 다시 질문한다.
나는 어디로 가고 싶은가?
우리는 흔히 사건이 삶을 바꾼다고 믿지만, 사실 삶을 바꾸는 건 그 사건을 설명하는 우리의 언어입니다.
'왜 하필'이라는 비난의 말을 거두고 '어디로'라는 탐색의 말을 심는 것. 그것이 무너진 자리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품위 있는 반격일지도 모릅니다.
상실의 끝에서 다시 질문을 시작하는 모든 분을 응원합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박소영] 매주 수천 명의 직장인에게 커리어 인사이트를 전달하는 <커리어온뉴스>의 발행인입니다. '성장하는 사람들의 언어'를 이곳 브런치에 기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