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추고 나서야, 비로소 내 방향이 보였다

포기인 줄 알았던 선택이 멈춤이었음을 깨닫기까지

우리는 끝까지 해내지 못한 일들을 너무 쉽게 '포기'라는 이름표를 붙여 서랍 속에 밀어 넣곤 합니다. 그 단어를 입 밖으로 내뱉는 순간, 우리가 밤잠을 설치며 쏟았던 열정과 진심은 순식간에 '실패한 과거'로 변질되어 버리죠.

저 역시 오랫동안 붙잡고 있던 박사 논문을 내려놓으며 스스로에게 그 가혹한 단어를 던졌습니다. "결국 포기했구나." 하지만 그 뾰족한 말에 찔려 아파하던 시간을 지나와 보니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나를 놓아버린 포기가 아니라, 나를 살리기 위한 '전략적 멈춤'이었다는 것을요.

오늘은 우리가 무언가를 내려놓는 순간 마주하는 죄책감의 정체, 그리고 '포기'라는 단어를 '멈춤'으로 바꾸었을 때 비로소 시작되는 새로운 항해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나는 한동안 내 선택을 ‘포기’라고 불렀다. 그게 가장 쉬운 말이었기 때문이다.

“그냥 포기했어.”

이 말이면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아도 됐다. 하지만 마음은 늘 불편했다. 포기라는 말 안에는 내가 쏟아온 시간과 노력, 그리고 그 과정에서의 진심이 너무 쉽게 지워지는 느낌이 있었기 때문이다.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논문을 써야 할 시점에 나는 멈췄다. 아니 써야 할 시점이 아니라, 논문을 쓰며 거의 다 온 시점이었다. 사실 멈췄다는 말도 그때의 나에게는 쉽지 않았다. 여기까지 온 게 아깝고, 억울하고, 여기서 돌아서면 그 몇 년간의 시간과 노력이 모두 실패처럼 느껴질 것 같았다. 하지만 계속 가는 길은 점점 나를 말라가게 했다. 논문을 쓰고 강의를 이어가는 삶이 내가 정말 원하던 방향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멈췄다.

정확히 말하면, 지금의 방식으로는 더 이상 나를 앞으로 보내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잠시 멈추었다. 그 선택 이후 삶은 아주 극적으로 바뀌지는 않았다. 다만, 숨이 많이 편해졌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다시 생각할 여유가 생겼다. 그리고 지금, 나는 출판사를 만들고, 신문을 만들었다. 글로 사람들의 선택과 커리어를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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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그건 포기가 아니었다. 나를 놓아버린 것도 아니었다. 그저 나에게 맞지 않는 방식에서 한 걸음 물러난 것이었다. 우리는 자주 멈추는 것을 두려워한다. 끝까지 가지 않으면 실패한 것 같아서. 하지만 어떤 길은 끝까지 가야 의미가 생기는 게 아니라, 제때 멈췄기 때문에 다음 길이 열리기도 한다.


혹시 지금 무언가를 내려놓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 있다면 이렇게 물어봐도 좋겠다.

나는 지금 포기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내 방향을 다시 찾기 위해 멈추고 있는 걸까.


나는 이제 이렇게 말한다.

포기한 게 아니라, 멈췄다고.

그리고 멈췄기 때문에

비로소 나의 다음 방향이 보였다고.



우리를 가장 힘들게 하는 건 '그만두었다'는 사실 그 자체보다, 그 선택을 실패라고 정의하는 우리 자신의 날카로운 언어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기억하세요. 직선으로 뻗은 길만이 정답은 아닙니다. 때로는 가던 길을 멈추고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주변을 둘러볼 때, 이전에 보이지 않던 울창한 숲과 새로운 갈림길이 비로소 눈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저에게는 출판사와 신문이라는 새로운 세계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죠.


만약 지금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싶어 망설이고 있다면, 스스로에게 너무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지 않았으면 합니다. 여러분은 지금 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도약을 위해 잠시 발을 멈춘 것뿐이니까요.

여러분이 용기 내어 멈춘 그 자리에서, 어떤 새로운 풍경이 보이기 시작했나요?


[박소영] 매주 수천 명의 직장인에게 커리어 인사이트를 전달하는 <커리어온뉴스>의 발행인입니다. '성장하는 사람들의 언어'를 이곳 브런치에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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