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만난 내 아이의 보조개

몇 년간 나를 무겁게 짓누르던 딸아이의 사춘기가 드디어 조금씩 풀리고 있다.

집 안에서 좀비처럼, 귀신처럼 소리 없이 다니던 아이는 요즘엔 재잘거리며 문을 쾅 닫기도 하고, 밥을 먹으면서도 나에게 쓸데없는 이야기들을 늘어놓는다. 나는 그 소리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다시, 그 아이의 보조개를 보고 있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아주 긴 터널이었다. 유리조각처럼 날카롭던 눈빛, 아무 말에도 닫혀 있던 마음. 그 아이를 보며 전전긍긍하고, 울고, 화나고, 답답했던 시간이 불과 얼마 전인데 요즘엔 그런 때가 있었나 싶다. 사람 마음은 참 간사하다. 고통의 시간이 지나면 그 시간을 버틴 나를 돌아보는 대신 마치 원래 아무 일 없었던 사람처럼 굴게 된다.


아이의 사춘기를 지나오면서 내 안에서 가장 크게 흔들린 건 ‘부모로서의 자존감’이었다. 아무리 좋은 말을 해도 닿지 않고, 어떻게 해줘도 불편하다고 하고, 때론 밥을 먹고 숨 쉬는 것조차 아이에게 거슬린 날이 있었다.

그럴 때면

“내가 뭘 그렇게 잘못 키운 건가”

라는 말이 저절로 마음속에서 피어올랐다. 그런데 시간이 조금 흐르고 나니 나는 그 시절을 너무 ‘내 탓’으로만 돌리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아이의 사춘기는 내 잘못의 결과가 아니라 그 아이가 자기 세계를 만들어가는 통과의례였을 뿐이다. 마치 씨앗이 흙을 헤집고 올라오기 위해 잠시 어두운 땅속에서 몸부림치는 것처럼. 그래, 머리로는 알았다. 그러나 현실에서 내가 마주하기엔 너무 버거웠다.


요즘엔 그 아이가 내게 다가와

“엄마, 나 요즘 이런 생각이 들어”

라며 조심스럽게 말을 건넬 때가 있다. 그 목소리가 예전보다 더 깊고, 더 단단해진 걸 느낀다.

나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아이의 사춘기를 견딘 것이 아니라 아이와 함께 성장한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든다. 그리고 문득 이런 질문이 남는다.

'우리는 왜, 변화의 한가운데 서 있을 땐 그 시간이 영원할 것처럼 느껴질까?'


아이의 사춘기도, 내 불안도, 우리 사이를 가로막던 불편한 침묵도 결국엔 흘러가는 것들인데 말이다.

어쩌면 부모의 역할은 아이의 어두운 터널을 끌어내는 것이 아니라 그 터널 끝에서 다시 아이를 맞아 줄

내 마음의 자리를 지키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오늘 딸아이의 재잘거림을 듣고, 웃음을 보며 나는 그 자리가 조금 더 단단해졌다는 걸 느낀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우리 사이에 다시 빛이 들어오고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 역시 사춘기는 영원하지 않다. 이 또한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안착하지 못하는 마음이 나를 데려다준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