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나는 늘 효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초등시절 일기장의 많은 날에 꼭 '효도를 해야겠다'라고 마무리를 지었다. 나는 왜 이렇게 효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지금 나의 딸을 보면 초등시절 나와는 많이 다르다. 라떼를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지만 효라는 것도 학습과 경험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도 크다는 생각이 든다.
그림출처: 핀터레스트
어릴 적(지금도) 내 눈에 비친 엄마, 아빠의 모습은 불쌍하고 안쓰러웠다. 고작 열 살도 안 되는 어린아이의 눈에도 엄마는 힘들고 불쌍했다. 선머슴아 같던 둘째 언니와 달리 늘 착하다는 소리를 듣고, 에니어그램 2번 타입, 홀랜드 S 성향, 성격유형검사 규범-이상형인 기질 때문인지는 몰라도 엄마 아빠에 대한 마음 쓰임이 언니보다 더 컸다.
농사일이 시작되는 2월부터 추수를 마치는 11월까지 우리 엄마 아빠, 특히 엄마는 더 바쁘고 분주했다. 동도 트기 전, 새벽 4시 전부터 하루 일과가 시작되고, 밭에 나사 농사일을 하다 말고 집에 와서 밥을 해서 우리 4남매를 키우고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모시며 엄마는 바쁘고 힘들고 억척스럽게 모든 걸 해냈다.
옛날 어머니들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 출처: 핀터레스트)
제주도에서 막내딸로 자라 아무것도 할 줄 몰랐다던 엄마는 갓 스물에 제주도에 놀러 온 잘 생기고 과묵한 충청도 산골 남자와 사랑에 빠져 축복도 못 받고 결혼생활을 시작했다.
어릴 적엔 성격 급하고, 화가 많고, 손이 빠른 엄마가 무서웠다. 삼십 대 중반이 되고 나서야 나는 아이 둘과 씨름하고 살림에 치이며 엄마가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늘 할 일이 많고 바쁘고, 도와주는 이도 없는 곳에서 친구도, 친정 가족도 없이 힘든 생활을 버티려면 엄마는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만일 부드럽고 여렸던 사람이었을지라도 이런 환경에서 살아가려면 성격도 성향도 억척스럽고 급하게 바뀌었을 수 밖에 없을 것이라 감히 생각한다.
나는 가까이 언제든 달려 와주는 언니가 살았고, 언제든 수다 떨 수 있는 전화와 친구들, 책과 인터넷, 시어머니가 함께 살림을 하고, 온갖 가전제품으로 살림을 하면서도 육아와 가사가 힘들었다. 그러나 스무 살에 남편 하나 믿고 아무도 없는 충청도 산골에 왔으나, 힘도 위안도 되지 않는 어린 남편과 넷이나 되는 아이들, 시골농사와 시집살이 살림까지 했던 엄마였다. 물론 그시대 많은 엄마들이 그렇게 살았고, 이야기를 들어보면 우리 엄마뿐 아니라 더 기구하고 힘든 삶을 살아내신 수많은 엄마들이있지만 난 우리 엄마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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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어린 내 눈에 비친 엄마 아빠는 농사일로 바쁘고 피곤하고 힘들고 지친 모습이었고, 엄마 아빠를 웃게 해 드리는 건 내가 뭔가 잘하고 상을 받고,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난 어른이 되어 엄마 아빠가 더 이상 고생하지 않고 행복하게 해 드리기 위해 성공해서 돈 많이 벌고, 힘든 농사꾼의 삶에서 벗어나게 해 드리고 싶었다. 그게 내가 생각하는 어릴 적의 효도였다.그것이 고생하시는 부모님의 사랑에 보답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결론적으로, 나는 효녀가 되지 못했다.
돈을 많이 벌어 편안하게 해 드리기는 커녕 마흔 중반에 내 앞가림하기도 버겁다. 오십까지만 농사짓고 싶다던 엄마의 바람은 제주바다보다 더 멀리 가버리고, 칠순이 훌쩍 넘은 아직도 두 노인네는 시골에서 젊은 농사꾼에 속하며 여전히 새벽부터 몸을 움직인다.
우리 엄마아빠도 이렇게 젊은 날이 있었는데...
초등학교에 다니는 나의 두 아이들은 효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궁금하다. 작은 아이가 7살때였나? 효녀 심청을 읽어주는데 아이가 물었다.
"엄마, 우리가 아프지 않고 건강한 게 제일 중요하다고 했는데 청이는 왜 죽어요? 심청이 아빠가 불쌍해. 나는 엄마를 위해 죽지 않을꺼야."
어릴 적 나는 이런 책을 읽으며 나도 심청이처럼 부모님을 위해 죽을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그러나 부모가 된 지금 나의 아이가 나를 위해 죽음을 선택한다면 그건 나를 위한 선택이 아닌 나를 죽이는 선택이 될 것이다.
그림출처: 핀터레스트
나의 아이들이 '제가 효도할게요~' 하는 말을 들어본 적도 없고, 일기나 편지글을 본 적이 없다. 그냥 '사랑해요, 고맙습니다'가 다다.
아이에게 효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 내 아이들은 엄마 아빠가 밖에서 어떻게 일을 하는지 모른다. 내가 보기에 우리 아이들은 나처럼 엄마 아빠를 불쌍하거나 안쓰런 마음으로 본 적이 없는 거 같다. 엄마 아빠를 위한 효도라는 것을 나와는 다른 개념으로 생각하는 듯 하다. 그래서 다행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엄마아빠가 고생한다는 것을 좀 보여주는 교육이 필요한가 싶기도 하다.
효는 아이가 부모에게 표현하는 사랑이다.
어린 날의 나는 '효도를 해야 한다'는 책임감과 부담감이 있었지만, 내 아이들은 책임감이나 부담감이 아닌,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부모에게 사랑을 표현해주며 건강하게 자라기를 바란다. 그게 엄마인 내가 아이들에게 바라는 효이다.
비록 내가 어릴적 생각했던 효녀가 되지는 못했지만, 이제는 좀 더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부모님을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