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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꽃psy Nov 11. 2021

걱정의 실체

생각보다 쓸데없는 걱정을 많이 한다.

문득 20년 전이 떠올랐다.

그때는 라식수술을 하기 전이라 매일 콘택트렌즈를 끼고 다닐 때였다.

대학교 4학년 어느 날, 술이 잔뜩 취해 집에 오자마자 잠이 들었다. 목이 말라 눈을 떴는데 어머나! 앞이 보이지 않고 형광등이 켜져 있구나만 보이는 것이다. 술이 취해서 불도 안 끄고 잠이 든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데 앞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가슴이 엄청 빨리 방망이질 치기 시작했다. 일단 빛이 있으니 감각으로 화장실로 들어가 거울을 보는데 거울 속에 내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안방에 소리가 들릴까 봐 소리도 내지 못한 채 거울을 보며 눈물만 흘리다가 렌즈를 빼지 않은 것이 생각났다. 왼쪽 눈 오른쪽 눈 번갈아 보다 보니 왼쪽 눈에는 그래도 형태가 보인다는 것이 느껴져 손가락을 넣어 살살 렌즈를 빼어 보이지도 않는 채로 렌즈케이스에 렌즈를 담아두고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누워 하염없이 눈물만 흘렀다.




'난 이제 시력을 잃은 채로 살아가야 하는구나, 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왜 내가 시력을 잃게 되었을까?  

내가 무슨 죄를 그렇게 많이 지은 걸까?

왜 하느님이 나에게 이런 벌을 주는 거지?

난 취직은 할 수 있을까?

눈이 먼 나랑 누가 결혼을 하지?

세상을 잘 살아나갈 수 있을까?

앞으로 누가 날 보살펴야 하지?

이 사실을 엄마 아빠가 알면 충격이 너무 클 텐데 어떡하지?

친구들에게는 뭐라 이야기를 하지?

내가 술을 많이 마셔서 벌을 받았나?

내가 전에 00에게 상처를 주어서 그걸로 벌을 받는 건가?'


정말 별의별 생각과 걱정들이 꼬리를 물며 눈물만 나오는데 소리조차 낼 수가 없었다. 숨죽이며 이불 속에서 꺼이꺼이 울음을 삼키다다가 어떻게 잠이 들었나 모르겠다.

다음 날, 퉁퉁 부은 채로 눈을 뜨니 희미하게나마 사물이 보였다. 분명히 어젯밤에는 빛만 보였는데 시계자리도 보이고 물건들이 희미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들이 보였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얼른 일어나 거울을 보니 눈이 퉁퉁 부었지만 내 모습이 보였다. 시곗바늘을 가늠하니 아직 9시가 안되었고, 준비를 하고 있다가 병원 문을 열자마자 가야 하니까 대충 씻고 옷을 입고 병원에 갈 준비를 했다. 부모님은 일찍 나가셔서 내 상황을 모르시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잘 보이지는 않지만 희미한 형체들로 감을 잡으며 집을 나서서 가장 가까운 안과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았다. 각막에 상처가 많이 나서 일시적으로 시력이 나빠졌다는 것이었다. 하드렌즈를 제때 빼지 않은 점, 왼쪽 오른쪽을 바꿔서 낀 거 같다고도 하셨다.

며칠 안약을 넣고, 치료를 하면 바로 좋아질 수 있다고 한다. 병원에서 나오면서 계단에 주저앉아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어젯밤에 얼마나 많은 걱정을 하고, 자책을 하고, 하느님을 원망을 했는지 감정이 북받쳐 오르며 다시 "감사합니다"를 되뇌며 천천히 집으로 돌아왔다.




마음이 안정되고 나니 어젯밤에 한 별의별 걱정들이 뭔 헛생각과 쓸데없는 걱정으로 내 미래까지 희망을 버리고 있었나 싶어 져서 마음이 안타까웠다.

하룻밤 사이에 한 걱정이 수백 가지는 된 듯하다. 불안감과 두려움으로 걱정이 가득했는데, 불과 몇 시간 차이로 그 걱정들이 눈 녹듯 사라졌다. 세상을 대하는 나도 하루 밤사이 달라졌다. 어젯밤에는 원망과 자책이 가득했는데 이제는 감사함이 가득했다.


세상은 달라진 것이 없었다. 그저 세상을 보는 내 마음만 달라진 것이다.

나에게 온 갑작스러운 고통으로 인해 난 세상을 원망했고, 하느님을 원망했으며, 나 자신을 자책했다. 그러나 그 시련이 해결이 된다는 것을 알고 나니 세상에 감사했고 하느님께 감사했다. 그리고 그 몇 시간은 나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게 된 시간이 되었다. 다시 벌을 받게 될까 두려웠고, 혹시나 나로 인해 상처를 받는 사람이 있을까 봐 나의 말과 행동을 조심하게 되었다.


시련과 걱정은 고통스럽고 힘든 것이지만 나를 돌아보게 하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

혹시 지금 시련으로 인해 고통스러운 시간과 걱정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면 차분히 시련과 걱정의 실체를 바라보고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 천천히 보다 보면 내가 생각하여 미리 겁먹은 것보다 실제로는 그토록 크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된다. 밤새 눈이 멀 것을 걱정하고, 이미 내 눈이 멀었다고 생각하여 걱정이 꼬리를 물어 수백 가지 걱정으로 고통스러웠다. 빼지 않은 렌즈를 생각하고 병원에 가 본 다음, 걱정을 하든 방법을 찾든 해도 늦지 않았을 것이다.




심리학자 어니 젤린스키는 저서 <모르고 사는 즐거움>에서 우리가 일상적으로 하는 걱정에 대한 연구결과를 이야기합니다.


“걱정의 40%는 절대 현실로 일어나지 않고, 걱정의 30%는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한 것이고,

걱정의 22%는 사소한 고민이고, 걱정의 4%는 우리 힘으로는 어쩔 도리가 없는 일에 대한 것이고, 걱정의 4%만이 우리가 바꿔놓을 수 있는 일에 대한 것이다.”


즉, 우리가 걱정하는 96%는 불필요한, 쓸데없는 걱정이라는 말이다. 걱정해도 해결할 수 없는 것이니 걱정으로 내 마음을 힘들게 하며 시간을 보내지 말고, 너무 많은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다. 불필요하고 쓸데없는 걱정으로 현재의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지 않으련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해결되는 일이 생각보다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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