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영화 해보고 싶어요
작년 여름 비가 쏟아지던 7월에 상상마당에서 열렸던 ‘영화를 사랑하는 두 번째 방법’ 수업을 들었었다. 김현민 영화 기자님께서 강사로 수업을 해주셨고 약 6주간 일주일에 한 번으로 진행되었다. 오늘은 그때에 썼던 첫 번째 과제인 짧은 영화 리뷰를 올려보려 한다.
그전에 먼저 작년부터 시작된 나와 영화의 관계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 싶다. 돌이켜보면 작년의 나는 연초부터 연말까지 영화로 할 수 있는 것들은 거의 다 해보고 싶어 했고,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범위의 것들은 다 해보았다. 팬데믹이 시작되면서 영화관을 찾는 사람들은 줄어들었으나 내 인생에서 영화관에 가장 자주 찾아가고 자주 보았던 시기는 팬데믹이 시작하고서부터이다. 그나마 팬데믹 중에 할 수 있는 집 밖 활동 중 가장 안전하다는 생각이 들어 내가 사는 곳 근처에 있는 작은 독립영화관에 자주 다녔다. 대부분 나를 포함하여 관객은 5명에서 7명이 최대였다. 평일 오후의 애매한 시간에 가면 나 혼자서 관람하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마스크를 쓰고서 조용히 앉아 영화를 보는 순간들이 그나마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고 지겨운 일상으로부터 구제해주었다. 무언가라도 느껴야겠다 싶은 마음이 계속 들었다.
그렇게 자주 찾아가던 독립영화관 커뮤니티에서 봄 동안에 정가영 감독님이 강사로 오셔서 진행된다는 영화 시나리오 써보기 수업을 발견했다. 영화 시나리오는 커녕 소설도 제대로 써본 적 없었는데 자꾸만 마음에 밟혔다. 내가 해볼 수 있을까 싶다가도 너무 허무맹랑한 이야기들만 쓸까 봐 걱정이 되어 그냥 못 본 척할까 고민을 많이 했다. 하지만 일단 해보기로 했다. 그 결과로 나는 내가 상상도 못 한 이야기를 써볼 수 있었고 앞으로 내가 영화라는 끈을 계속 붙잡는 데에 힘을 줄 것 같은 인연들도 만났다. 이때 쓴 시나리오 중 내가 정말 아끼는 한 편을 꼭 직접 단편영화로 제작하는 것이 내가 30대가 되기 전까지 이루고 싶은 목표 중 하나이다.
그렇게 달콤한 봄밤의 향기를 맡으며 영화 시나리오 수업은 끝이 났다. 여름에는 영화 비평글을 써보고 싶었기에 김현민 기자님 수업을 들었는데 수업 가는 날마다 비가 내렸던 그때가 생생히 기억난다. 그리고 생각보다 너무 어려운 비평글 쓰기에 당혹감을 느꼈던 나의 모습도 생각난다. 내가 너무 못쓴다는 것이, 그리고 글을 진지하게 끝까지 붙잡고 정리하며 쓸 의지와 탄탄한 정신이 나에게 너무 부족하다는 것이 들통나는 시간이었다. 그래서 한동안은 영화 글도 잘 안 쓰고 읽지도 못했던 것 같다. 나는 역시 창작을 더 잘해 라고 말도 안 되는 위안을 하며 그저 그렇게 보냈다.
남은 여름 동안에는 24초 영화 공모전에 출품을 한답시고 친구와 허접한 24초 영화를 만들기도 했다. 예전에 내가 사진 동아리에서 전시회를 할 때에도 모델로서 도와준 친구인데 그 친구의 연기는 역시 좋았지만 내 스토리가 별로였다. 내 방에서 갖고 있는 디에세랄 카메라로 찍느라 연출도 영상 품질도 별로였다. 그렇지만 일단 영화 제작에 손톱이라도 담가봤다는 것에 의의를 둔다.
가을에는 영국으로 교환학생을 갔고 대면과 비대면을 번갈아 가며 이루어졌던 영화 제작 입문 수업을 들었고 그렇게 가을과 겨울 동안에는 처음 보는 영국 친구들과 함께 네 명이서 3분짜리 단편 영화를 만들었다. 고맙게도 친구들이 내가 썼던 이야기를 좋아해 주어서 내가 쓴 극본이 당첨이 되었다. 돌이켜 보면 참 무모할 만큼 용기 있었고 내가 쓴 이야기로 영화를 만들어야 하니 그만큼 속이 벌벌 떨릴 만큼 무섭고 그 책임감에 잠식되기도 했다. 더욱 환장스러웠던 것은 어쩌다 보니 영화 주인공도 내가 연기를 하게 된 것이다. 코로나 때문인지 영화가 별로인지 아무도 오디션 영상을 보내지 않아서 우리 넷 중 한 명이 해야만 했다. 나는 그 주인공이 꼭 20대 여자였으면 했고 남은 건 나와 남은 여자 친구 한 명이었다. 처음에는 그 친구가 하는 것이 낫겠다 싶었지만 내가 시나리오를 쓸 때 생각해둔 인물은 자연스럽게 동양인 여성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미친 척하고 내가 해봐야겠다 싶었다. 물론 그 친구가 하기 싫어하기도 해서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기도 했다. 이틀간 세 시간씩 촬영을 하면서 집에 돌아오자 마자는 기가 빨려서 저녁까지 누워있었다. 하면서도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되물었다. 코로나도 감수하고 영국에 와서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영화 제작에 연기까지 하고 있는 내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전공생도 아니면서 넌 뭐 하고 있니 싶었다. 하지만 또 언제 영화과 친구들과 영화를 만들어볼 수 있을까 싶기도 했고 그때의 나는 꼭 이 일을 했어야만 했다. 나는 시간이 흐르면서 꼭 지금 해봐야 할 것 같은 일들이 이유 없이 찾아왔고 그 일을 위해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보며 살아온 것 같다.
올해 2021년의 나는 다시 사진으로 돌아왔다. 사진 또한 내 전공이 아니지만 원래 내가 하던 것이라는 느낌이 든다. 이렇게 전공과 전혀 관련 없는 것들만 해온 내가 불안하기도 하고 이런 걸 누가 알아줄까 싶다. 그렇지만 하고 싶은 건 해봐야 하니까. 조금만 더 이렇게 살아볼게요.
그럼 작년 비평 수업에서 첫 번째 과제로 썼던 리뷰를 남기며 오늘 글은 여기서 마쳐보도록 하겠다. 영화는 프란시스 하,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이며 앞으로 나이를 먹어가면서 느끼는 바가 달라질 것 같은 영화이다.
뉴욕에서 예술가로 살아남기, <프란시스 하>
“직업이 무엇인가요?” “음.. 설명하기 좀 복잡해요. 사실은 실제로 하고 있진 않거든요.” 이 대사를 처음 듣는 이는 고개를 갸우뚱할 것이다. 하지만 영화 <프란시스 하>를 보고 나면 이 대사를 들었을 때에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노아 바움백 감독의 영화 <프란시스 하>의 주인공 ‘프란시스’(그레타 거윅)는 부유한 이들만이 예술을 할 수 있다고 여겨지는 뉴욕에서 무용수 생활을 근근이 하며 살아가는 27살 여자다. 프란시스는 영화 내내 정착하지 않고 방황을 한다. 무언가를 했다가, 하지 않았다가를 반복하는 삶이다. 반쪽과도 같은 친구가 갑작스럽게 이사를 가면서 프란시스는 뉴욕에서 혼자가 된 후 예술가 친구가 사는 집의 작은 방에서 살다가 금방 다른 친구에게 신세를 지고, 임시 무용단 생활을 했다가 잘리고, 친구와 다툼을 한 뒤 무작정 파리로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생활을 하지만 그럼에도 관객들은 프란시스가 어딘가를 향해 울퉁불퉁한 길을 걸으며 계속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는 프란시스가 자신의 꿈과 사람과의 관계를 사랑하고 그것들을 이어나가기를 원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영화를 보는 이들은 프란시스가 무엇을 하든 그를 응원하게 되고 프란시스는 ‘이렇게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삶이 힘들고 지겹다고 하지만 사실은 삶을 너무 사랑해서 힘든 사람들을 응원한다. 흔히 ‘청춘 영화’로 불리는 <프란시스 하>는 뉴욕을 주요 배경으로 한 흑백영화이다. 흑백의 레이어를 통해 브루클린과 중간에 잠시 나오는 파리의 풍경을 따라가다 보면 프란시스가 도시에서 홀로 겪는 외로움은 잠시 잊고 그의 삶을 부러워하게 될지도 모른다. 흑백의 화면 위에 입혀진 사운드 트랙들 또한 영화를 보는 재미를 더해준다. 조르주 들르뤼의 음악이 자주 나오는데, 프란시스의 상황에 맞추어 나오는 이 음악들은 마치 옛날 모노드라마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최근 ‘작은 아씨들’ 영화의 감독으로 주목을 받은 그레타 거윅의 연기를 통해 뉴욕으로 잠시 떠나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