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촌의 여름저녁, 한용운
산 그림자는 집과 집을 덮고
풀밭에는 이슬 기운이 난다
질동이를 이고 물 짓는 처녀는
걸음걸음 넘치는 물에 귀밑을 적신다
올감자를 캐여 지고 오는 사람은
서쪽 하늘을 자주 보면서 바쁜 걸음을 친다
살진 풀에 배부른 송아지는
게을리 누워서 일어나지 않는다
등거리만 입은 아이들은
서로 다투어 나무를 안아 들인다
하나씩 둘씩 돌아가는 가마귀는
어데로 가는지 알 수가 없다
한용운 시인의 ‘산촌의 여름 저녁’을 읽으면 평화롭고 고요하고 조용히 슬퍼진다. 내가 아주 혼자가 된 것 같아서다. 처음에는 시를 읽음과 동시에 눈에 그려지는 처녀와 사람들과 송아지와 아이들, 그리고 까마귀가 보인다. 그다음에 다시 읽으면 이 시를 쓰는 사람의 모습이 보인다. 그 사람의 희미한 마음과 잘 읽히지 않는 눈빛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