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가격리와 지원서 쓰기
자가격리를 하면서 온라인 세상이 내가 접하는 세상의 전부가 되다 보니 온라인에서 접하는 정보가 내 하루 기분과 생각을 쉽게 좌지우지하여 조금 힘들기도 했다.
그래도 최대한 진정하고 균형을 맞추기 위해 노력했다. 아령으로 팔 운동도 좀 하고. 영국에서 온 지 이제 고작 이주가 지났는데 너무 빨리 한국 현실에 휩쓸려서 그런지 그때의 경험이 예전처럼 느껴진다.
계절도 들어야 하고 영국에 있는 동안 들어가지 않았던 학교 커뮤니티를 다시 들어가면서 열심히 사는 사람들, 원하는 직장에 취업한 사람들의 글을 읽으면서 아주 빠르게 한국에서 내가 있었던 자리로 돌아왔다. 이렇게 빨리 적응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여기에 휩쓸려서 그런 것은 아니지만 나도 이제는 내가 뭘 하고 싶냐에 초점을 두는 게 아니라 실질적으로 내가 지금껏 쌓아온 것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분야를 구체적으로 정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어떤 분야에서 일하고 싶은지는 대충 알겠으나 어떤 직무를 맡을지는 정말 모르겠다.
연계전공도 이젠 정말 정해야 하고 진로 상담도 받으며 내 앞길을 책임질 때가 온 것 같다. 자가격리 기간 동안 마지막 주에 런던 여행한 얘기도 쓰고 이런저런 얘기를 써야겠다 싶었는데 영국 얘기를 쓸 마음도 잘 들지 않았다. 내가 귀국했을 때는 대부분 친구들이 시험기간이었고 자가격리를 해야 하는 상황이니 집으로 돌아온 느낌이 별로 없었다. 여기 내가 사는 곳은 이런 얘기를 나누기엔 너무 바쁜 곳이라는 걸 다시금 깨달았다. 이게 한국에 온 나름의 환영식이었던 것 같다. 너 이제 한국이야 정신 차려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아무튼 나도 이런 한국에서 다시 내 자리를 찾아야지 하며 이것저것 보다가 몇 군데에 지원서를 썼다. 취업까지는 아직 준비할 것들이 많은 것 같고 내가 우선 일해보고 싶은 분야와 관련된 대외활동이라도 해보자 싶어서 지원해보았다. 지원서를 쓰면서 자연스레 내가 지금까지 어떤 활동을 주로 했고 어떤 걸 얻었는지 되돌아보며 적는데, 내 대학생활을 쭉 돌아보니 기분이 이상했다. 이렇게 나는 곧 대학을 졸업하게 될 거고 또 뭘 하며 지내야 할까. 정말 이상하게 들리지만 나는 지금 대학에서 내가 느끼고 경험하는 것들이 내 인생의 끝이란 생각을 은연중에 해온 것 같다. 근데 생각해보면 아직 너무 많은 시간이 남았고 (어떤 날엔 너무 짧다 생각하지만) 그 긴 시간 동안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
지원서를 쓰며 순간 막막했는데 그 이유는 내가 너무 뜬 구름 잡는듯한 경험들을 해온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교환학생과 사진동아리도 그렇고 나는 지금껏 본전 공을 제외하고 복 전할 분야를 여러 번 바꾸며 거쳐왔기에 더 그런 것 같다. 남들은 한 분야 딱 잡고 가는 것 같은데 나만 이랬다 저랬다 하는 느낌. 지금 내가 마지막으로 정한 이 전공도 졸업하고 나서 후회가 될까 봐 잠시 두려웠다. 그렇지만 지금은 이런 생각을 정리했고 아주 두렵지만은 않다.
나는 내가 원하고 맞다고 생각한 대로 선택해왔고 내가 그려온 과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곳에서는 어차피 나는 일할 수 없을 것이다.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곳에서 애초에 어떻게 일을 하겠는가. 그러면 나는 내 생각과 내가 가진 능력을 인정해주는 곳에 가면 되는 거다. 내가 갈 곳이 하나도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자연스레 꼬리를 물고 찾아오긴 했으나 그건 내가 끝까지 가보기 전에는 알 수 없는 거니까 더 이상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마침 오늘 지원한 두 군데 중 한 군데에서 합격 소식을 들었다. 정말 간사하게도 합격을 하면 아주 기쁠 것 같았는데 내가 맡을 책임과 이 일이 지닌 특성 때문에 금방 걱정이 몰려왔다. 그래도 난 잘 해낼 거라 생각해야지. 나머지 한 군데는 서류 합격 여부를 기다리고 있는데 된다면 참 좋겠다.
영국에서 돌아오자마자 현실을 가득 담은 찬물 바가지를 제대로 맞은 것 같아서 얼얼했지만 지금은 또 적응한 것 같기도 하다. 오늘은 드디어 격리가 해제되어 종로를 걸어 다녔다. 저녁에는 가족과 함께 오마카세를 하는 일식집에 가서 먹어보았다. 이젠 밖에 나갈 수 있으니 더 건강한 생활과 건강한 생각을 하고 기운을 받으며 살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