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라는 이름
“엄마 그렇게 눈치보지마”
왜그렇게 눈치를 보며 사시는지 혈기왕성하고 아무도 당해낼수 없던 당찬 엄마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엄마는 40대에 홀로되 사남매를 키우면서도 누구하나 엄마를 얏잡아보는 이가 없을 정도로
당찬 여장부처럼 행동하셨다.
작은몸집에 어디서 그런 당돌함이 나올수 있는지 지금의 나는 (엄마의 홀로된 시기보다 지금의 내 나이가 더 많지만)
상상도 할수 없다.
여린몸으로 시골 맏며느리.. 사남매의 엄마로써 아이들을 지키려면 어쩔수 없이 강해졌어야 하지만 지금생각해도 나의 엄마는 너무나 강하고 멋진 엄마셨다.
때론 강하고 당돌함으로 나는 힘들었지만 지금의 엄마는 “나도 어쩔수 없었어. 아빠도 없는 데 혼자서 너희들 키우려니 그럴수 밖에 없었잖니”
이말이 나에게는 당연하고 이해해야 하지만.. 아니 이해할수 있지만
그때는 그게 짐이였다.
나의 엄마는 항상 아빠대신 많은 걸 하느라 집안일과 동생들 돌보는 일은 온전히 내 차지였으니까.
“엄마.. 내 바지는 어디있어요? 엄마 내가 지난번에 썼던 모자는 어디있어요?”
나는 항상 눈앞의 것도 제대로 찾지 못하는 아들들을 챙기느라 목이 아플때도 있다.
사춘기가 되면 나사를 하나씩 빼놓고 다닌다는 사춘기 아들들… 정리를 해도 정리가 안되는 방에서 자신들의 물건을 나에게 물어 본다.
“엄마.. 엄마는 내생활을 보지도 않는데 어떻게 나를 잘알아? 내가 한거 어떻게 알았어?”
“엄마니까…”
엄마니까…. 나도 어쩌다 엄마가 되었고 어른이라는 타이틀을 얻게 되고 두 아들의 엄마라는 이름이 또 주어졌다.
그리고 아들엄마는 당연히 이렇게 해야한다는 사회적 고정관념으로 좀더 조심하고 아들엄마라서 혹시 내 아들이 다른 아이들에게 혹시나 피해를 주지 않을까
오히려 피해를 당해도 참고 그자리를 그냥 물러섰다.
나의 엄마는 사남매를 지키려 강해 졌지만.,, 나는 두아들을 지키기 위해 오히려 강함은 속으로 품고 겉으로는 너그럽게 이해하려 애를 썼다.
그래야 하는 것으로 알고…
나도 아이들이 커서 출가를 하면 아이들의 눈치를 볼까?
“2호야 엄마가 너 결혼했을때 잠깐 여행가도돼?”
“엄마 여행가도 되가 뭐야 당연히 와야지.. 자주와”
그건 니생각이고 … 엄마가 엄마이다 보니.. 그리고 너의 엄마이다 보니… 그것또한 물어보고 눈치를 보는게 맞는것 같기도 하다.
나의 엄마는 강한 엄마였지만… 삶을 살아가는 지혜가 생겨 며느리를 생각하고 며느리와 함께사니 아들의 눈치도 보게 되는 것 같다.
며느리의 아이들을 모두 키워 장성한 어른이 되었지만 그건 엄마라서 해준것이고.. 지금의 엄마는 한없이 약하고 작아진 나의 엄마이다.
나는 어떤 엄마일까?
나는 어떤 어머니가 될까?
아이들이 어릴적부터 나는 엄마와 어머니에 대한 기도를 계속 해왔다.
삶을 살며 아니다 싶은 것은 피하고 지혜롭게 사는 엄마와 어머니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 져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