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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베이킹랩 이성규 Apr 02. 2020

Kyle의 생애 첫 빵

빵집이 자리한 양평동엔 외국인들이 많이 산다. 특히 영어권에서 온 젊은 친구들이 많다. 이들은 대부분 목동에서 학원이나 유치원 영어 강사로 일한다.


담백한 식사빵을 찾는 이 친구들에게 아쥬드블레는 참새 방앗간 같은 곳이었다. 특히 사워도우 빵, 뤼스틱, 바게트가 이들에게 인기가 좋다. Kyle도 그들 중 한 명이다. 미국인인 그는 한국에 온 지는 이제 8개월쯤 된다. 그도 영어를 가르친다. 


카일은 종종 빵집에 와서 빵을 사 갔다. 올 때마다 빵을 두 개씩 샀다. 하나는 자기가 먹고 다른 하나는 여자 친구에게 준다고 했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빵 두 덩어리를 샀다. 빵 값 계산을 하는데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눈치였다. 머뭇머뭇하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나 빵 굽는 거 배워보고 싶은데 가르쳐 줄 수 있어?"

"빵은 좀 구워 봤고?"

"미국에 있을 때 집에서 사워도우 빵을 몇 번 시도해 봤는데 다 실패했어. 여기 사워도우 빵이 너무 맛있었어 다시 한번 배워보고 싶네. 가르쳐 줄 수 있어?"

"그러지 말고 너 시간 될 때 일찍 나와서 나하고 같이 빵을 구워보는 건 어때?"

"정말 그래도 될까?"

"당연하지. 언제든 시간 될 때 와. 하루 전에 미리 연락해 주면 더 좋고." 


기쁜 표정으로 연신 고맙다는 말을 하고 카일은 빵집을 나섰다. 며칠 후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내일 빵 구우러 가도 되냐고. 


다음날 새벽, 카일이 빵집을 찾았다. 전날 만들어서 냉장 발효한 반죽을 분할, 성형해서 2차 발효하고 굽는 동안 그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평소 사워도우 빵 굽기에 관심이 많았던 카일은 유튜브에서 사워도우 베이킹 관련 채널을 구독하여  빵 만들기 동영상을 보고 있었다. 알고 보니 이 친구 지속 가능한 먹거리, 지속 가능한 삶의 방식 등에 관심이 많았고, 크래프트 비어 양조장에서 5년 동안 일한 경력도 있었다.


눈썰미도 좋고 학습능력도 뛰어난 카일은 여러 종류의 빵을 만드는 건 처음이지만 금세 작업 환경에 적응하는 듯했다.


다음번에는 그의 주 특기인 맥주를 가지고 빵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나는 맥주 빵 레시피를 준비하고, 카일은 맥주를 준비하기로 했다. 향이 좀 강한 종류의 맥주가 좋을 것이라고 했더니 스타우트나 에일 맥주를 준비할 거라 했다.


그와의 빵 굽기가 기대된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 카일은 맥주 두 캔을 들고 환하게 웃으며 빵집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가 선택한 맥주는 에일과 다크 스타우트였다. 에일은 수입산이고 다크 스타우트는 국내산이었다.


빵집에서 판매할 빵을 다 만든 후 그의 빵을 같이 반죽하였다. 르방, 호밀 르방을 같이 사용한 사워도우 빵이고 같은 레시피에 맥주만 다르게 넣었다. 손반죽과 기계 반죽하는 법을 보여주고자 하나는 손반죽을, 다른 하나는 믹서로 반죽하였다. 1차 발효 3시간 동안 접어주기 네 번을 하였고, 2차 발효 30분 후 오븐에 넣었다.


에일과 다크 스타우트 모두 향이 강한 맥주라 반죽에서도 맥주 향이 강하게 올라왔다. 하지만 맥주 향은 1차 발효 3시간 동안 점점 옅어져 오븐에서 나온 빵에는 미미한 정도의 향만이 남아 있었다. 수분량만 적절하게 조정하면 맛도 향도 모양도 좋은 빵이 될 것 같다.


자신의 첫 번째 빵을 오븐에서 꺼내는 카일의 얼굴엔 즐거움이 가득 묻어 있다. 그날 오후 카일이 카톡을 보내왔다.


The bread was excellent. Pretty subtle taste of beer and sourdough but really nice. Thanks for another good day and for being patient with me as I learn.


즐거운 하루다. 누군가에게 꼭 맞는 그만의 빵을 디자인해주는 일, 참 재미있겠다.


카일은 시간이 날 때마다 빵집을 찾아와 같이 빵을 구웠다. 빵을 구우며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특히 사워도우 빵에 많은 질문을 했다. 컬처 키우는 법, 스타터 관리하는 법 등등. 또한, local grain, permaculture, 크래프트 비어 등 공통의 관심사에 대한 서로의 의견을 나누었다.


그러던 어느 날 카일은 미국으로 돌아가게 되었다고 했다. 여기서 빵 굽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일 거라면서. 같이 해 보고 싶은 일들이 많았는데 아쉬웠다. 

 

그동안 즐거웠다. 그와 같이 빵 굽던 시간이 그리울 것이다. 


그날 그에게 카톡을 보냈다. 

Take care buddy. Hope you come back someday. I will miss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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