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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베이킹랩 이성규 Apr 08. 2020

채드 로버트슨을 만나다

2018년 1월, 채드 로버트슨을 만났다. 샌드란시스코에서 타르틴 베이커리라는 유명 빵집의 오너 베이커인 그는 사워도우 빵을 굽는 전 세계 홈베이커들의 우상이다. 현대카드 쿠킹 라이브러리에서 타르틴 No. 3라는 책 출판기념회에 타르틴 베이커리 한국 지점 오픈을 위해 한국에 머물고 있던 그를 초청한 것이다.


아쥬드블레라는 동네 빵집 오픈을 준비하는 동안 현대카드 쿠킹 라이브러리를 동네 방앗간처럼 드나들었다. 안면을 튼 라이브러리 사서가 그의 출판기념회 소식을 알려 주었고 바로 참가 신청을 하였다. 그날이 참가 신청 마지막 날이었다. 꼭 가고 싶은데 안되면 어떻게 하지라며 맘을 졸이고 있는데 고맙게도 며칠 후 초대장이 날아왔다.


그의 책 『Tartine Bread』를 통해 처음 베이킹을 접한 터라 그와의 만남이 무척이나 기대되었다. 책을 읽으며 갖게 된 이런저런 궁금증을 그의 대답을 통해 풀어보리라는 기대도 품고 있었다. 출판 기념회 날짜가 다가올수록 기대감은 더 커졌다. 


출판기념회 당일, 예정된 시간보다 한 시간 일찍 쿠킹 라이브러리에 도착했다. 그와 최대한 가까운 곳에 앉아보겠다는 욕심에서였다. 서가에 꽂혀 있는 책을 뽑아 들고 책장을 건성으로 넘기고 있는 사이 출판기념회 장소 입장이 시작되었다. 나는 저자의 자리 바로 앞에 자리를 잡았다.


잠시 후 청셔츠 위에 커피색 앞치마를 두른 그가 등장했다. 청바지 아래 하얀색 로퍼가 눈길을 끌었다. 구레나룻과 턱수염을 기른 그의 수줍은 듯한 모습은 여러 동영상에서 본 것과 같았다. 동영상 속의 그가 눈앞에서 자신의 빵과 빵에 대한 철학을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게 되다니... 감개가 무량했다.


출판 기념회는 흡사 스타의 팬미팅 행사 같았다. 출판기념회가 진행되는 동안 둘러본 참가자들은 흠모해 오던 우상을 영접하고 있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모르긴 몰라도 나도 그런 표정을 짓고 있었을 것이다. 책에서 그가 소개한 시골빵을 구워 그에게 평가를 요청하는 참가자도 있었다. 빵을 그에게 전해주는 그 참가자의 손은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짧은 강연이 끝나고 질의응답 시간이 주어졌다. 나는 그간 궁금했던 것들에 대한 질문을 쏟아냈다. 질문 리스트는 출판기념회에 가기 전부터 만들어 놓은 터였다. 스티프 르방과 리퀴드 르방의 차이, 빵의 수분율이 높아야 하는 이유, 좋은 빵은 어떤 빵인지, 타르틴 베이커리에서는 어떤 식으로 제빵 스케줄을 진행하는지, 르방 양은 얼마로 해야 하는지 등등. 질문이 너무 많아 행사 진행자에게 양해를 구해야 했다. 많은 질문에도 그는 싫은 기색 없이 성심성의껏 답해주었다. 그의 답으로 많은 의문이 풀렸고 짧은 시간 동안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배움에 있어선 독서보다는 질의응답이 확실히 더 효과적이다. 경험과 지식이 많은 사람과의 질의응답은 특히 더 그렇다. 채드 로버트슨과의 질의응답은 유레카의 시간이었다.


그의 짧은 강연중 가장 인상 깊었던 건 빵과 요리를 통해 미국의 푸드 시스템을 바꾸려는 그의 노력과 관련된 부분이었다. 베이커리에서 사용하는 재료는 모두 100마일 이내에서 구매한다고 했다. 특히 밀가루는 대형 제분소에서 공장 제품처럼 찍어낸 밀가루가 아닌 지역의 중소규모 제분소에서 제분한 것을 사용한다. 이 밀가루는 지역의 농부들이 생산한 밀을 제분한 것이다. 푸드 마일리지를 줄이고, 지역 순환 경제를 실현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또한 토종밀과 고대밀을 최대한 사용하려고 노력한다. 수확량 증대만을 위해 맛과 풍미가 희생된 현대밀의 한계를 극복하고 밀의 종 다양성을 보존하기 위함이다.


한국 지점에서도 그런 노력을 해나갈 계획인지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그는 그렇다고 대답했고, 나는 내가 기르고 있는 토종밀과 고대밀을 소개하였다. 그는 많은 관심을 보이며 '언젠가는 네가 기른 밀로 빵을 구워보고 싶다'라고도 했다. 


나는 그날의 감흥을 이렇게 기록해 놓았다.


언젠가 제가 기르고 있는 밀로 그가 구운 빵을 맛볼 날이 있을 것 같습니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빵을 통해 제가 가고자 하는 길에 대해 더 확신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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