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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베이킹랩 이성규 Mar 31. 2020

Aamanns의 smørrebrød

노르딕 요리의 인기가 하늘을 찌른다. 노르딕 요리 전통의 현대적 해석, '채집 활동'으로 형상화되는 자연 그대로의 식재료에 대한 집착을 특징으로 하는 새로운 노르딕 요리로,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은 전 세계 미식가들과 요리사들의 주목을 한 몸에 받는 미식도시가 되었다. 인기의 중심엔 르네 레드제피(René Redzepi)와 클라우스 메이어(Claus Meyer)가 설립한 노마(Noma)가 있다. 이들이 세운 노르딕 음식 연구소(Nordic Food Lab)는 다양한 음식 관련 연구로 노르딕 음식의 새로운 장을 열어가고 있다.


Aamanns Deli. 새로운 노르딕 요리로 주목받고 있는 코펜하겐에 있는 식당이다. 스뫼르브뢰드(smørrebrød)가 이곳의 주 메뉴이다. 스뫼르브뢰드는 스뫼르(smør, 버터)와 브뢰드(brød, 빵)가 결합된 말로, 얇게 썬 호밀빵 위에 갖은 재료를 올려서 먹는 일종의 오픈 샌드위치다. 


유럽에는 다양한 형태의 오픈 샌드위치가 있다. 오픈 샌드위치의 기원을 따라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중세 시대의 트렌처(trencher)와 만나게 된다. 식탁에 접시를 쓰기 전, 중세 귀족의 식탁에선 얇게 자른 빵 조각을 접시 삼아 그 위에 음식을 올렸다. 접시 대용으로 사용한 이 빵 조각을 트렌처라고 불렀다. 구운 지 3~4일 된 빵을 잘라 사용하였다. 귀족들의 만찬이 끝나면 음식의 즙이 자연스럽게 스며든 트렌처는 하인들의 식사가 되었다. 


유럽엔 다양한 오픈 샌드위치가 있다. 프랑스의 타르틴(tartine), 이탈리아의 브루스께따(bruschetta), 스페인의 따파스(tapas)가 남부 유럽을 대표하는 오픈 샌드위치이다. 북부 유럽에는 덴마크의 스뫼르브뢰드, 스웨덴의 스뫼르고스(smörgås), 노르웨이의 스뫼르브뢰드(smørbrød)가 있다. 모두 빵 조각 위에 다양한 식재료를 올려서 먹는 음식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북유럽과 남유럽 오픈 샌드위치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북유럽에서는 호밀빵을, 남유럽에서는 밀빵을 사용한다는 점이다. 이는 북쪽에서는 호밀을, 남쪽에서는 밀을 주로 재배하게끔 만든 기후의 영향이 반영된 자연스러운 결과이다.


중세 시대 트렌처가 하인들의 먹거리였듯 스뫼르브뢰드는 전통적으로 블루칼라와 농부들의 간단 점심식사였다. 하지만 아담 오만(Adam Aamann)의 혁신을 거친 스뫼르브뢰드는 완전히 새로운 음식이자 새로운 노르딕 음식 운동을 대표하는 요리로 탈바꿈하였다.


스뫼르브뢰드는 우리가 가장 큰 강점을 가지고 있는 우리만의 점심 식사 전통이다. 덴마크인들에게 당신들 고유의 저녁 음식 10개를 대보라 하면 대부분 잘 답변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질문이 오픈 샌드위치에 관한 것이라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진다. 비록 지금은 더 이상 먹지 않더라도 가장 인기 있는 재료와 그들의 조합에 대해 모르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마치 DNA에 새겨져 있는 것처럼.  
-아담 오만


동네 빵집을 준비하면서 샌드위치는 꼭 해 보고 싶었다. 샌드위치 메뉴를 고민하던 중 아담 오만의 오만스를 알게 되었고, 언젠가 꼭 한번 가보리라 맘먹었다. 기회는 금새 찾아왔다. 빵 수업을 듣고 있던 곽지원 빵 공방에서 수업의 일환으로 기획된 유럽 빵 투어를 가게 된 것이다. 나는 하루 시간을 내서 홀로 코펜하겐 당일치기 여행을 다녀왔다.


남들 모두 잠든 새벽, 조용히 숙소를 빠져나와 택시에 몸을 실었다. 오를리 공항에 도착하여 탑승수속을 마치고 탑승게이트 앞 벤치에 앉아있자니 탑승객들이 하나둘 나타났다. 잠시 후 탑승 수속이 시작되었고 승객들이 줄을 섰다. 그 많은 승객 중 동양인은 나 혼자였다. 길쭉길쭉한 팔다리, 갸름한 얼굴, 금발머리를 한 북유럽 사람들 무리 속에 파묻혀 있는 나, 작은 키는 더 작아 보였고, 얼굴은 더 넙데데해 보였고, 머리칼은 더욱더 검어 보였다. 


잠시 기절해 있는 사이 비행기는 코펜하겐 공항에 도착하였다. 간단한 입국 수속을 마치고 지하철을 찾았다. 시외구간의 지하철은 지상을 달렸다. 창 밖으로 펼쳐진 하늘은 눈부시도록 파랬다. 매일같이 휴대폰에 방독면이 뜨던 서울 하늘을 생각하면 너무도 비현실적인 하늘이었다. 뾰족한 지붕을 이고 있는 나지막한 주택들을 구경하고 있자니 지하철은 금세 코펜하겐 시내에 도착했다. 


점심시간까지는 시간이 있었기에 로열 코펜하겐 도자기 공장 아웃렛을 찾았다. 도자기를 사고 싶었다. 언젠가 내가 만들게 될 코펜하겐의 오픈 샌드위치 스뫼르브뢰드는 로열 코펜하겐에 담고 싶었다. 접시, 홍차 잔, 에스프레소 잔을 샀다. 도자기는 국제 택배로 발송해준다. 택배 발송을 선택하면 세금을 제한 금액만 결재하면 된다. 매니저가 명세를 보여주며 면제된 부가가치 세액을 강조한다. 무려 25%! 면세액을 보는 순간 좀 전에 그냥 내려놓았던 도자기가 눈에 아른거리며 그 앞으로 당장 달려가 들가고 싶은 충동이 솟구친다. 나 같은 관광객을 수도 없이 맞았을 매니저의 상술이 참 좋다.


다시 지하철을 타고 오만스로 향했다. 식당은 조경이 잘 된 공원 북쪽 큰길 가에 위치하고 있다. 점심시간이 살짝 지난 터라 테이블은 거의 비어 있었다. 메뉴판을 쓱 훑어보고 종업원을 불렀다. 맛도 모양도 궁금했던 몇 가지 스뫼르브뢰드가 눈에 들어왔다. 그중에서 네 개를 골랐다.


"두 개만 주문하세요."

"네? 저는 이 음식 먹어 보겠다는 일념으로 여기까지 온 건데요."

"그래도 두 개면 충분할 거예요. 많이 시키면 배불러서 다 못 먹어요."


종업원의 말을 듣기로 했다. 정성 들여 만든 음식을 다 먹지 못하고 남겨선 안되니까. 청어 절임과 베이컨을 주문했다. 


잠시 후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화려한 색채와 다양한 형태의 재료가 조합된 음식이 접시에 올려져 있다. 화려했다. 보는 것만으로도 군침이 도는 비주얼이었다. 언뜻 봐서는 오븐 샌드위치처럼 보이지 않는다. 얼른 포크와 나이프를 집어 들고 한쪽 끝을 잘라 보았다. 토핑을 썰고 내려가자 호밀빵이 칼에 닿았다. 덴마크의 식당에선 스뫼르브뢰드를 손으로 잡고 먹지 않는다. 포크와 나이프를 쓴다. 물론 테이크 아웃일 경우엔 손으로 들고 먹겠지만. 


청어 절임은 새콤달콤했다. 청의 특유의 비린내는 조금도 느낄 수 없었다. 오물오물 씹으니 뻑뻑한 곡물 호밀빵이 절여진 청어의 살과 섞이면서 새로운 맛을 냈다. 접시(?)로서의 호밀빵의 매력이 발산되는 순간이다. 구운 베이컨(베이컨이라기보다는 두툼하게 썬 삼겹살에 가까웠다)이 올라간 스뫼르브뢰드는 독특한 식감이 인상적이었다. 한 조각을 잘라  넣고 오물오물. 호밀빵의 퍽퍽함, 잘 구운 베이컨의 바삭함, 헤이즐넛의 크런치함, 초절임 당근의 아삭함, 마요네즈의 물컹함. 다양한 식감이 입안에서 폭발한다. 아담 오만이 스뫼드브뢰드를 통해 추구하고자 하는 음식이 어떤 것인지 어렴풋이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를 계속 지켜보던 종업원을 향해 엄지 척을 날려줬다. 사실은 나도 스뫼르브뢰드는 이리저리 살펴보고 맛보는 동안 그의 시선을 느끼고 있었다. 만면에 미소를 머금은 그를 불렀다.

"음식 맛이 기가 막히네요. 이거 이름이 스뫼르브뢰드인건 알고 있는데 어떻게 발음하는 건가요?"

"스뫼~르브뢰~"

"네? 한 번만 더 해 주세요."

"스뫼~브뢰~"

"스뫼르브뢰드요? 어렵네요."

"모음 ø 때문일 거예요. 외국인에게는 어려운 발음이죠."


나는 휴대폰을 꺼내 음성 녹음 버튼을 누르며 한번 더 발음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그런 내가 신기한지 씩 웃으며 내 휴대폰을 향해 입을 대고는 천천히 두 번 발음해 주었다. 그의 음성을 담은 스뫼르브뢰드는 내 휴대폰에 남아있다. 그때 먹었던 스뫼르브뢰드가 내 기억 세포 어딘가에 남아있는 것처럼.


또 그를 불렀다.

"실은 나는 빵집을 내려고 준비하고 있고 오만의 호밀빵이 무척 궁금해서 일부러 여기를 찾아왔다. 혹시 호밀빵을 맛볼 수 있을까?"

"당연하지."


잠시 후 그는 나무 도마에 호밀빵 두 조각과 버터 두 조각을 이쁘게 담아 들고 왔다. 스뫼르브뢰드는 이 호밀빵으로 만든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슈납스도 한잔  드릴까요?"

"그게 뭔가요?"

"호밀빵으로 만든 알코올 도수가 높은 술이에요."

"제는 술 마시면 얼굴이 빨개져서 술은 잘 안 마시는 편이에요. 게다가 지금은 벌건 대낮인걸요."

"그래도 멀리서 일부러 시간 내서 오셨는데 한 잔만 해 보세요."


그는 조그만 잔에 슈납스를 한잔 받아 들고 주방에서 나왔다. 맛만 봐야지. 독했다. 향이고 맛이고 확인할 수 없이 입안이 얼얼해지는 독주였다. 그래도 성의를 생각해서 한 잔 탁 털어 넣었다. 


손님도 다 나가고 식당엔 나 혼자만 남았다. 테이블 정리를 마친 그는 나에게 다가와 식사가 어땠는지 물어왔다. 나는 너무 맛있었다고, 여기까지 오는데 들인 시간과 돈이 아깝지 않았다고 극찬을 해주었다. 덴마크의 높은 세율, 덴마크인의 영어실력의 원인 등에 대해 수다를 떨다 보니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슈납스가 벌써 온몸에 퍼진 것이다. 나는 그 얼굴로 오후 내내 자전거가 넘쳐나는 코펜하겐 시내 이곳저곳을 걸어 다녔다. 


Aamanns의 곡물 호밀빵과 스뫼르브뢰드


초저녁 나는 코펜하겐 공항으로 향하는 전철 안에 있었다. 한 손엔 유럽 빵 투어를 이끌고 계신 곽지원 선생께 선물로 드릴 로열 코펜하겐 도자기 잔이, 다른 한 손엔 아담 오만의 씨앗 호밀빵 한 덩어리가 들려 있었다.


https://aamanns.d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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