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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베이킹랩 이성규 Jun 27. 2019

우리밀 길을 찾다

2019년 밀 수확 축제와 우리밀 워크숍

매년 이맘때가 되면 맘이 괜스레 바빠진다. 밀 수확철이 다가오기 때문이다. 밀밭엔 익어가는 밀들이 황금색으로 넘실댄다. 밀밭은 잘 차려진 잔치상에서 삼시 세 끼 하는 참새들과 비둘기들의 즐거운 재잘거림이 가득하다. 이 불청객들에게서 밀알을 한 톨이라도 더 지켜내려면 수확을 서둘러야 한다. 남녘에서 전해져 오는 장맛비 소식 또한 농부의 맘을 급하게 한다.


밀 수확을 목전에 둔 밀 농부의 맘이 급한 것과는 다른 이유로 내 맘도 급해진다. 누렇게 잘 익어가는 밀밭을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줄 밀 수확 축제를 열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밀 베이킹 연구소 더베이킹랩과 공주 버들방앗간의 황진웅 농부가 공동으로 개최하는 행사이다. 밀 수확 축제는 올해가 두 번째이다. 작년 밀 수확 축제는 일반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한 밀 수확 체험과 빵 등 밀로 만든 요리를 먹는 행사였다. 반면 올해 밀 수확 축제는 형식과 내용에 큰 변화가 있었다.

우리밀 길을 찾다의 두 주최자와 취재기자(사진 마르쉐@ 제공)


2019년 밀 수확 축제, 우리밀 길을 찾다

올해 밀 수확 축제는 단순한 밀 수확 체험이 아닌 우리밀 산업의 발전 방향과 과제를 논의하는 자리로 만들고 싶었다. 우리밀 길을 찾다라는 제목을 붙인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올해 밀 수확 축제는 작년과는 여러모로 차이가 있다. 우선 형식을 밀 수확 체험에서 워크숍과 빵 테이스팅으로  바꾸었다. 워크숍은 4개의 주제 발표와 자유토론으로 구성하였다. 축제 공동 주최자인 공주 버들방앗간의 황진웅 선생, 완주 대성팜 신도현 대표, 안동 맹개소주의 박성호 대표, 우리밀 베이킹 연구소 더베이킹랩의 대표인 내가 주제 발표를 하였다. 황진웅 선생은 우리밀 농사 이야기를, 신도현 대표님은 밀가루 제분 이야기, 박성호 대표님은 직접 기른 밀로 소주 만드는 사례 발표를, 나는 우리밀 특히 토종밀과 고대밀 품종 소개와 우리밀의 제빵 특성에 대해 발표하였다. 주제 토론이 끝난 후 참가자들 간의 자유토론이 이어졌다.


워크숍 중간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식사를 겸한 빵 테이스팅을 진행했다. 공주 황진웅 선생이 기르고 있는 3종의 토종밀과 1종의 고대밀로 만든 시골빵을 맛보았다.


참가자에도 큰 변화가 있었다. 올해 수확 축제 참가자는 우리밀 관련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 한정하였다.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했던 작년 축제에 비하면 근본적인 변화이다. 올해 밀 수확 축제에는 밀 농부, 제분업자, 프로 베이커, 홈 베이커, 빵 선생 등 우리밀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과 농부시장 마르쉐 운영자, 슬로푸드 상생상회 매니저 등 로컬푸드 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단체, 우리밀 관련 취재를 하는 기자분들도 참가하였다.


워크숍에서 주제 발표하고 있는 버들방앗간의 황진웅 농부(사진 마르쉐@ 제공)


토종밀, 고대밀 빵 테이스팅

황진웅 농부의 논과 밭에는 4종의 밀이 자라고 있다. 우리 토종밀인 앉은뱅이밀, 캐나다 토종밀 레드 파이프, 프랑스 토종밀 보르도 레드, 그리고 고대밀인 스펠트. 품종 하나하나가 재밌는 역사와 이야기가 있는 사랑스러운 밀들이다. 이중 레드 파이프와 보르도 레드는 2014년 여름 프랑스와 미국에서 어렵게 들여온 토종밀 품종이다. 충남 청양 고향 동네 밭에서 4년간의 증식을 거쳐 2018년 가을 공주 황진웅 농부에게 종자를 건넸고 그 밀들이 올해 처음으로 수확된다.  


4가지 밀을 더베이킹랩에서 맷돌 제분기로 제분하여 통밀빵을 구웠다. 같은 배합, 같은 제빵 공정으로 만든 빵임에도 불구하고 4가지 빵은 서로 다른 식감과 풍미를 가지고 있다. 밀만 달라졌을 뿐인데 빵이 이렇게 다를 수 있다는 사실에 워크샵 참가자들 모두 한편으로 신기해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놀라워했다.


단순히 빵을 굽는 것을 넘어 밀에 대해 더 애정을 가지고 깊이 알고 싶다는 욕망이 들게 하는 시간이었어요. 다양한 밀에 대해, 건강함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게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빵 식탁에서 토종밀, 고대밀 빵 테이스팅 중인 참가자들(사진 마르쉐@ 제공)


우리밀, 아직 갈 길은 멀지만...

연간 밀 수입량 220만~240만 톤, 밀가루 수입량 6만 여톤, 그리고 우리밀 자급률 0.8%. 우리밀의 현실을 이보다 더 잘 설명하는 자료가 있을까. 앞으로 나아지리라는 어떠한 희망도 계기도 나에겐 잘 보이질 않는다.


하지만 이런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올해에도 누군가는 우리밀을 수확하고, 제분하고, 누군가는 그 밀가루로 빵을 굽고, 또 다른 누군가는 소주를 빚을 것이다. 그리고 또 누군가는 그 밀과 밀가루와 빵과 소주가 소비되는데 도움을 주고자 장을 열 것이다.


자유토론에서 공기 중으로 퍼져나가던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 그냥 감내하고 가야 하는 것 아니냐는 힘 빠지는 이야기들 속에서 난 오히려 그들의 강력한 의지를 읽을 수 있었다. 상황은 힘들지만 힘이 닿는 데까지 해나갈 것이라는, 멀리 가기 위해 서로 조금씩 양보하고 힘을 모아보자는.


그래 힘을 모아 보자. 그런데 어디에, 어떻게 모아야 하지...


*소중한 사진을 기꺼이 공유해주시고 사용허락도 해주신 마르쉐@ 이보은 대표님과 고작가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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