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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베이킹랩 이성규 Aug 06. 2020

багет полин(Baguette Pauline)

5일간 머문 푸체즈를 떠나 모스크바에 도착하였다. 모스크바에서는 러시아 빵을 많이 만나볼 심산이었다. 여행 어플을 검색하여 이름 있는 빵집 리스트를 작성하였고 리스트에 있는 빵집을 찾아 모스크바 곳곳을 누볐다.


대량생산, 대량 유통되는 공장에서 찍어낸 산업화된 빵에 대한 반발로 1980년대 미국에서 아티장 브레드를 표방하는 개인 빵집들이 생겨났다. 이 빵집들은 빵 맛으로 큰 인기를 끌게 되었고 이 인기에 힘입어 세계 곳곳에 아티장 브레드를 표방하는 개인 빵집들이 생겨났다. 하지만 다른 한쪽에선 문을 닫는 개인 빵집들이 늘어갔다. 문을 닫은 개인 빵집의 공간은 대량 생산되는 프랜차이즈 빵집이나 슈퍼마켓 빵집들로 채워졌다.


모스크바도 예외는 아니었다. 슈퍼마켓 매대 한쪽은 공장에서 생산한 싸구려 빵들이 가득했고, 거리에서 보이는 빵집은 대부분 프랜차이즈 빵집이었다. 개인 빵집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기가 어려웠다. 하여 개인 빵집 찾기를 포기하고 대신 프랜차이즈 빵집을 찾아다녔다. 모스크바의 프랜차이즈 빵집은 신기하게도 모두 프랑스 체인이었다. 그 중심에는 프랑스 제빵업계의 스타 Eric Kayser가 문을 연 Volkonsky과 식사 공간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는 큰 식탁이 인상적이었던 Le Pain de Quotidien이 있었다. 두 곳 중 내게 더 인상적이었던 곳은 Volkonsky였다.


Volkonsky는  러시와 우크라이나 시장을 타깃으로 만든 Eric Kayer의 빵집 브랜드이다. 모스크바에만 10여 개의 지점이 있다. 프리미엄 빵집을 지향하는 Volkonsky는 인테리어가 고급스럽고 위치도 비싼 동네에 자리 하고 있다. 이른 아침, 간단하게 아침을 즐기려는 동네 주민들이 찾는데 문을 열고 들어오는 이들의 차림새가 참 고급스럽다. 프랑스식 빵과 달달구리들이 진열되어 있고 브런치 메뉴도 있다.


모스크바에서의 첫 번째 빵으로 바게트를 골랐다. 짙은 색과 다이아몬드 모양으로 난 칼집이 눈길을 끌었다. 에스프레소 한 잔을 시켜 매장 한편에 자리 잡았다. 바게트를 뜯어 코에 대고 냄새를 맡았다. 달큰한 향이 났다. 어! 요 녀석 봐라. 얼른 입으로 가져가 한 입 베어 물고 오물오물. 평소에 먹던 바게트와는 완전 다른 맛이다. 약간 쌉소롬하면서 묵직한 달큰함이 끝 맛으로 올라오는 게 신기했다. 겉은 겁나 바삭하고 속은 겁나 촉촉했다. 진짜 바게트다.


손에 들고 있던 바게트를 내려놓고 카운터로 달려갔다. 종업원에게 말을 걸었다. 좀 전에 저 바게트를 샀는데 맛이 기가 막히다. 저거 무슨 바게트냐? 판매를 담당하는 종업원은 빵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듯 매장 안쪽 오븐 앞에서 오븐을 들여다보고 있던 베이커를 불러온다. 똑같은 질문을 던졌다.


나: 이 빵 겁나 맛나는데 무슨 바게트냐?
베이커: 바게트 폴린이다.
나: 바게트는 알겠는데 폴린은 도대체 뭐냐?
베이커: 나도 몰라 그냥 그렇게 불러.
나: 엥? 그럼 여기 들어가는 재료를 가르쳐 줄 수 있냐?
베이커: 물론이지. 밀가루 하고 메밀가루가 들어가.
나: 메밀 가루라. 그거 얼마나 들어가는데?
베이커: 밀가루와 메밀가루가 반씩.
나: 진짜? 메밀가루가 50%나 들어가는데 이렇게 볼륨 좋고 기공이 잘 열린 빵이 나온다구?
베이커: 지금 니가 보고 있지 않냐.


할 말이 없었다. 메밀가루를 50%나 넣고 이런 바게트를 구울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바게트의 이름표를 찍었다. багет полин. 구글 번역기에 넣어보니 baguette polin이라고 번역해 준다. polin이라... 의문은 여전히 풀리지 않았다.


러시아에서 돌아온 후 한참만에 인터넷 서핑을 통해 이 의문을 풀 수 있었다. 이 빵의 이름은 Baguette Pauline이었다. Pauline은 아마도 누군가의 이름일 것이다. Eric Kayser가 Pauline이라 불리는 누군가를 위해 만든 바게트인지도 모르겠다. 그가 모스크바에 문을 연 Volkonsky에서 이 빵을 굽는 건 어쩌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러시아인들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메밀을 먹는다. 한 사람이 매년 15kg 정도를 먹는다. 이는 전체 곡물 소비량의 20%에 달한다. Kasha라고 하는 죽, Blini라고 하는 메밀 전병이 메밀로 만든 대표적인 음식이다. 메밀이 몸에 좋다고 학교급식에도 의무적으로 메밀을 먹도록 한다고 한다니 러시아인들의 메밀 사랑은 유별나다. 바게트 폴린은 Eric Kayser의 프랑스 빵과 러시아의 식문화가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는 지점이 되었다. 바게트 폴린은 Eric Kayser가 러시아인들에게 바치는 헌정이다.


바게트 폴린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그런 빵을 한번 구워보고 싶었다. 러시아 여행에서 돌아온 후 아쥬드블레에서 새로운 빵을 선보였다. 바게트 그레치카(гречиха)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레치카는 러시아어로 메밀이다. 나는 우리 땅에서 나는 금강밀, 앉은뱅이밀, 그리고 메밀로 바게트 그레치카를 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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