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드라마를 즐겨본다. 스토리가 탄탄한 드라마를 특히 좋아한다. 최근 본 드라마 중 이태원 클래스가 바로 그런 드라마였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20대의 젊은이가 요식업 공룡기업의 총수와 대결해 총수를 무너뜨린다는 게 드라마의 주 스토리였다. 현실에선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지만 사필귀정으로 끝난 드라마를 보며 통쾌함을 느끼기도 했다. 무모한 도전을 이어가는 가게 주인 박새로이와 가게 매니저 조이서라는 두 주인공의 독특한 캐릭터는 드라마를 보는 또 다른 재미였다.
드라마 내용 중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박새로이가 새로 옮긴 가게의 주변 상권을 살리기 위해 힘쓰던 것이었다.
장가 회장의 술수로 첫 번째 가게에서 쫓겨난 박새로이는 근처 골목에 새롭게 가게를 연다. 하지만 장사는 전과 같지 않았다. 박새로이는 가게를 옮기고 장사가 안 되는 건 골목 상권이 죽었기 때문이라 진단하고, 주변 가게를 돌며 간판을 고쳐주는 등 주변 상권 살리기에 직접 나선다. 주변 가게를 돕는 박새로이를 이해하지 못한 이서는 "뭐 하자는 거예요 지금"이라며 불만을 터트린다. 그러자 새로이는 "이 죽어가는 상권에서 우리만 잘해선 답이 없어. 거리를 살려야 돼"라고 한다.
이 드라마가 방영될 당시 나는 빵집에서 손을 뗀 상태였다. 빵집을 동업자에게 넘긴 지 이미 반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빵집을 운영하면서 겪은 문제점에 대해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지났다. 드라마의 이 장면이 내가 운영했던 빵집과 오버랩되었다. 빵집이 있던 양평동의 골목은 드라마 속 주인공이 두 번째로 단밤을 연 골목과 비슷했다. 주위에 카페, 칵테일바, 선술집이 문을 열고 있었지만 골목엔 뭔가 축축하고 음울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어둠이 내리고 인적이 드물어지면 그럼 느낌은 더 강해졌다. 한마디로 죽은 상권이었다.
인테리어 공사를 하며 공사업자에게 특별히 부탁한 것이 있다. 간판 조명을 아주 밝게 해 달라는 것이었다. 어둠이 내리면 간판 조명을 켰고, 영업이 끝난 후에도 켜놓았다. 어두침침한 골목을 환하게 비추어 사람들이 안심하고 걸어 다닐 수 있는 골목을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빵집에선 커피를 팔지 않았다. 커피를 찾는 손님이 적진 않았다. 특히 주위 카페들이 문을 열지 않은 이른 아침에는 커피를 찾는 손님들이 빵집 문을 열고 들어왔다. 커피를 팔아볼까 하는 유혹이 없진 않았다. 하지만 끝내 커피를 팔진 않았다.
빵집 주변에는 카페가 많았다. 빵집을 중심으로 반경 100미터 내에 무려 13개의 카페가 있었다. 프랜차이즈 카페 하나를 제외하면 모두 개인이 하는 카페였다. 이들 카페는 근처 지식산업센터의 회사원과 두 개의 소형 아파트 단지 주민을 상대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우리 빵집의 고객도 이들이었다. 커피로 카페들의 경쟁에 뛰어들고 싶진 않았고, 커피를 찾는 손님이 오면 주변 카페로 안내했다.
빵집을 열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입버릇처럼 이런 말을 했다.
우리 빵집만을 찾아 손님이 오기엔 우리 빵집의 인지도와 빵맛이 한참 부족해. 주변에 뭔가 손님을 끌만 한 게 있으면 우리도 덕을 볼 수 있을 텐데.
당시 나도 골목 상권의 중요성에 대해 인지하고 있었다. 다만, 골목 상권을 어떻게 살려야 할지 몰랐고, 골목 상권을 살리기 위한 특별한 노력을 하지 않았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