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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달래 Jun 05. 2020

아빠와 고양이 미오 사이의 거리


  얼마 전부터 아빠 몸에 원인불명의 두드러기가 나기 시작했다. 자신의 몸에 있어선 누구보다 넓은 아량과 관대함을 가진 아빠는 느릿느릿 병원을 찾았다. 검사 결과는 고양이 알레르기였다.


 처음 미오를 본가에 데려가던 날, 아빠는 절대로 고양이를 집 안에서 키울 수 없다며 데려오면 밖으로 쫓아버리겠다 선언했고 나는 만약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다시는 집에 오지 않겠다 맞서며 팽팽한 신경전을 벌였다. 물론 아빠와 내가 한 발언들은 모두 실현 가능성이라고는 전혀 없는 속빈 허세였다. 본가에서 미오와의 역사적인 첫날을 지내고 잠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채 몽롱한 정신으로 눈을 감고 있던 이른 아침. 살며시 방문이 열리고 '미오야- 미오야-' 굵고 낮은 목소리가 문틈으로 흘러들어왔다. 무뚝뚝한 아빠가 있는 힘껏, 최대한으로 다정함을 담았을 때 나오는 목소리였다.


 의사는 알레르기가 심한 편이니 조심해야 한다고 주의을 줬다. 언니와 내가 머리를 싸매고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아빠는 미오와 계속 같이 살겠다 선언했다. 이번엔 허무맹랑한 허세가 아닌 의지로 무장한 진심이었다. 집에서 아빠는 큰 방에서만 생활하게 되었다. 미오는 유유히 거실을 비롯해 큰 방을 제외한 모든 곳을 돌아다녔다. 아빠가 내린 결정이었다. 아빠와 미오는 일정 거리 이상 가까워지지 못했다. 말수가 적은 미오는 아빠를 향해서만 수다스러워지곤 했는데 멀찍이서 장난감으로만 장난을 치는 아빠를 향해 미오가 냥-냥- 말을 거는 모습을 볼 때면 이 서글픈 비극이 안타깝기 그지없다.


 작년 미오의 첫 생일날, 아빠는 자체 제작 캣타워를 미오에게 선물했다. 그리고 방금 언니에게서 온 사진 한 장. 현관 창가에 앉아 마당에 있는 송순이와 날아드는 새, 흔들리는 나뭇잎, 길을 걸어가는 사람을 지켜보는게 취미인 미오를 위해 아빠가 자체 제작 2호 캣타워를 만드는 중이라며 보내온 것이었다. 그 사진을 보는데 문득 심장이 먹먹한 게 마음이 뭉클해졌다. 아빠가 참 많이 변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많은 사람들이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고, 사람은 고쳐 쓰는 거 아니라고 말하지만 나에게는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 있다. 사람은 변할 수 있다. 사랑이 사람을 변화시킨다는 말을 믿는다. 고양이를 싫어하던 아빠는 이제 누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먼저 미오 자랑을 하는 팔불출 집사가 되었다. 이런 긍정적인 변화들로 하여금 세상은 한 걸음, 반걸음, 반의반 걸음... 그렇게 조금씩 아주 조금씩 더 밝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기분이 좋아지는 사진 한 장 덕에 오늘의 내 세상은 조금 더 밝아졌다.


2017. 9.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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