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영화를 정말 싫어한다. 영화든 책이든 결말을 알고 시작한다. 주인공이 죽는다던가 헤어지고 끝나는 작품은 시작조차 하지 않는다. 오랜만에 알고도 시작했다. 태풍 때문에 비행기가 결항 됐고 그래서 갑자기 휴일의 일정이 텅 비어버렸고 왓챠가 나의 예상 평점으로 5점을 줬고 남자 주인공 정원의 생일이 나와 같은 8월이고 같은 별자리였기에 이 영화를 보는 건 필연적이라 생각했다. 죽음의 고통은 남겨진 자들의 몫이다. 그래서 나는 항상 떠나는 사람보다 남겨진 사람을 생각한다. 정원이 떠나고 아버지는 혼자서도 비디오 플레이어를 잘 사용했을까, 다림은 정원이 차마 전하지 못한 편지를 언젠가 읽게 되었을까. 그리고 동시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떠나고 남겨질 나를 생각했다. 아빠와 언니는 3년 전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부터 수시로 일상의 장면을 영상으로 남겨둔다. 엄마가 미오를 안아드는 장면이나 아빠가 송순이와 달리는 모습, 명절에 햇볕 드는 산소 앞에 돗자리를 깔고 함께 과일을 먹는 순간 같은 특별하진 않지만 찍어두지 않으면 금방 기억에서 희미해질 아주 사소한 시간들. 엄마와 할머니는 종종 할아버지의 생신날 찍어둔 영상을 틀어서 봤다. '고오~맙다' 할아버지만의 말투가 들리면 영상을 보지 않고도 그 순간의 할아버지가 떠올랐다. 아빠와 언니는 남겨질 사람들을 위해 미리 준비를 하는 걸까? 남겨질 사람이 누가 될진 모르겠지만 너무 아파하지 말고 허무해하지도 말라고. 역시 슬픈 영화는 힘들다. 하지만 본 걸 후회하지는 않는다. 자극이 일상이 되어버린 요즘 시대엔 희귀한 영화니까. 제주도 여행이 취소되었으니 조만간 군산 여행을 가 볼 생각이다. 초원사진관 앞에서 남겨질 이들을 위한 사진 한 번 찍어야지.
2019. 10.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