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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달래 Jun 05. 2020

'나' 사용 설명서

제품사용설명서, 이경


 매년 3월 2일이면 반드시 하는 것이 있다. 처음 만나는 아이들에게 '선생님 사용설명서'를 읽어주는 것이다. 선생님을 잘 사용하려면 선생님을 잘 알아야 한다는 말을 꼭 덧붙이며.


 지금에서야 생각해본다. 나는 나를 얼마나 알고 있는가, 나를 제대로 사용한 적이 있는가. 선생님으로서의 '나' 말고 27살 전다송으로서의 '나'의 사용설명서를 읽어본 적이 있는가.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사용했다. 이것저것 눌러대며 안되면 때리고 방치했다. 고장은 빈번해졌고 버벅거리는 것은 일상이 되었다. 처음부터 사용설명서를 잘 읽고 제대로 사용했다면 좀 더 나은 내가 되었을까. 그 처음은 어디서부터 일까. 오작동이 처음 시작되었던 시점을 찾아본다.


 아는 척하지만 밝혀진 것은 없다. 누가 이것에 대해 잘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오십 년을 살면 제대로 작동할 수 있을는지 아니 죽기 전에 단 한 번이라도 확실하게 알고 사용할 수 있을는지. 뒤늦게 사용설명서를 찾아 읽어보려 해도 찾을 수 없다. 오직 한 사람만 쓸 수 있는 사용설명서는 아직 쓰여지지 않았다.


2018. 6.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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